빌레몬서 1:8-22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하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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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10-19 16:12 조회1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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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0 주일예배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예의를 갖춘 사랑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교회는 세상의 희망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6 - 6
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41020 가스펠프로젝트6-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부탁하다”(몬1:8-22)
오늘은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서는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서 빌레몬이라는 그리스도인에게 쓴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편지입니다. 빌레몬서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성도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상황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예의를 갖춘 사랑’을 해야 합니다. (몬1:8-14)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사랑’이라는 것은 예의를 지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막 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하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예의를 갖추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8절에 “사랑으로써 간구한다.”10절에는“네게 간구하노라”, 14절에는“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주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사랑한다고 할 때에 결코 자신이 나이도 많다거나 복음을 전해 주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마땅하게 사랑을 명령하거나 강압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 자신은 겸손하게‘갇힌 자’‘죄인’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빌레몬을 높여 대했습니다. 상대방을 높여 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등 예의를 지켜 대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빌레몬 역시도 예의를 갖춘 사랑을 했습니다. 7절에 바울이 빌레몬을 칭찬하기를“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나도 네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했습니다. 빌레몬의 사랑 덕분에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빌레몬의 사랑을 받았고, 다른 교인들도 그 신분이 종이든 여성이든 가난하든 얼마를 배웠든 상관하지 않고 예의를 갖춘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가 무릎을 꿇고 제자들 한 명 한 명을 차례대로 씻어 주시고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종이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종이 되셔서, 종의 자세로 자기를 낮추시고 상대는 높이는 예의를 갖춘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가 형장에서 잡힌 여인에게도 정죄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보내주셨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잘못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죄인으로 정죄하시거나 사람들처럼 죽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예의 갖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도들과 예의를 갖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까?
신문에서 보았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화가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것은 아내의 친구였습니다. 누구인지도 확인도 하지 않은 남편은 “여보세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욕을 퍼부어 댔습니다. 한참 욕을 하던 남편은 아내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는 실수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답니다. “미안합니다. 난 내 아내인줄 알고 그만..”우리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한테는 아무렇게나 무례하게 대해도 좋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기의 공로나 선함으로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 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마귀의 자녀요 지옥에 있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구원 앞에서 교만할 수 있는 신자는 누구도 없습니다. 내가 가진 이 직분과 경력이나 가진 재물과 지식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격도 없을뿐더러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발을 씻기시고 죄를 지어도 정죄하지 않으신 것처럼 서로 높이고 예의를 갖춰 서로를 사랑할 사명만 있을 뿐입니다.
사도바울이 교인 빌레몬에게 하듯이 빌레몬이 교회공동체의 일원인 교인들에게 하듯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그리고 직장이나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어디에서든지 예의를 갖춘 사랑하세요. 진상노릇하지 마세요. 감동을 주고 멋진 손님들이 되세요. 예의를 갖춘 사랑을 해야 주님의 제자이고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내가 먼저 예의를 갖춰 높여 주고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나누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평등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몬1:15-17)
평등하다는 것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향하여 부탁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평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남녀는 평등합니다. 그런데 당시 세상은 차별하는 사회, 차별이 마땅한 세상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 빚을 져서 종이 된 사람들 등 로마 전체인구의 1/3이 종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가축정도로 대우받는 것이 종입니다. 도망친 종은 죽음밖에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차별이 확실한 세상에서 바울사도는 주인 빌레몬에게 돈을 훔쳐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16절에 “ 종 이상으로 형제로 둘 자라”했습니다. 종을 형제로 대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갈라디아서3:26~28에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회복, 평등하게 태어난 것의 회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게 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탈출하여 로마까지 왔습니다. 붙잡히면 죽임을 당합니다. 로마 황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탈출한 종에 대한 주인의 소유권, 생사여탈권입니다. 주인에게 종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사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고 성령의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바울에게 10절에“아들”이라고 불리었고 12절에는 “내 심복”“내 심장”“내 생명”처럼 여겨졌고 16절에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사회적으로 보면 돈을 훔쳐 탈출한 종이니까 죽어야 하는데, 이제는 예수 안에서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의 피로 하나 된 같은 피를 나눈 한 형제자매입니다. 더 나아가 주의 신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로 가족은 혈연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혈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의 전환을 주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주인의 입장으로 사회적인 법으로 대하지 말고 같이 구원받은 형제로 대하라고 하여 ‘종 이상으로 형제로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주인과 종이 한 형제로 살 수 있답니까?
오늘의 한국 교회는 과연 평등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안디옥교회는 왕족과 노비가 함께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가 함께 백인과 흑인이 함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남성과 여성이 함께 차별이 없이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세상은 평등이 없기 때문에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평등한 교회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연동교회의 역사에 보면, 양반이 자기 집의 노비가 교회로 왔을 때에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형님 어서 오십시오!”스스로 양반의 틀을 깨고 평등을 이루어낸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총회장을 계속 나오고 교회가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유교적인 교회 직분에 있다고 했습니다. 직분은 사역인데도 권력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으로 평등한 교회를 만들어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헌신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몬1:18-22)
사랑에는 반드시 헌신과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사랑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가 불의를 행하거나 빚진 것이 있으면 대신 갚겠다고 합니다. 18절에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강도만난 자를 여관에 맡기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눅10:35) 고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헌신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기쁨과 평안을 얻게 하라고 합니다. 또한 22절에“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부탁도 합니다. 빌레몬은 실질적으로 많은 헌신의 사랑을 했습니다. 부자라고 다 헌신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랑을 받았다는 믿음이 있으면 가난한 것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헌신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로 교회는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최근에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소개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있는데 군인들의 식사비를 대신 내 주는 분들의 미담입니다. 군인들이 굉장히 힘을 얻고 행복했다고 하는데 며칠 전에는 장교들의 식사비를 내 주신 분이 있다고 해서 왜 그렇게 하셨냐고 했더니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시는 것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고 했다는 말에 감동받은 장교가 감사인사를 신문투고를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서로 수고를 알아주고 내 것을 나누어 주는 등의 헌신하는 사랑은 성령 충만을 받은 초기 예루살렘 교회가 하던 일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교회, 자기의 것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돕는 공동체 칭찬받은 교회이고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교회공동체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빌레몬을 빌레몬은 바울을 위해 헌신하고 알아주는 사랑을 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러분은 언제 헌신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귀한 자입니다. 예의, 평등, 헌신하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교회도 존귀합니다. 교회는 시대의 법과 관습을 뛰어넘는 위대한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노력하기를 존귀하게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우리 구역장 권찰들이 가정식 식사를 하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21명의 손님들이 들어가니까 식당 주인이 당황을 해요. 우리가 주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두 종류의 식사를 반 씩 시키고 먹은 그릇은 깨끗하게 정리하여 드리니까 주인부부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우리도 얼굴이 환해 졌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위대한 기독교와 신자들로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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