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1-13 "교회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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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11-16 18:09 조회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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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주일예배 안내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6 - 9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241117 가스펠프로젝트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교회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알라-(벧후3:10-13)
네비게이션 길을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는데 참 좋아요. 그런데 잘 써야 겠더라구요. 얼마 전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에게 말햇죠.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편하겠어요. 운전기사의 대답은 의외였어요. 네비게이션때문에 다툼도 많습니다. 실시간으로 변하니까 왜 돌아서 가냐고 시비가 붙는데요. 그렇구나 네비게이션도 문제가 있구나. 우리 신앙인들의 네비게이션이 무엇이 있어요? 진리이신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인생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이 베드로 후서는 지난 주일 유다서와 같이 교회 안에 있는 문제 거짓신앙을 가진 자들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11-12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셨습니다.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거룩한 행실이고 다른 하나는 경건함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혼란의 때에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고 안내입니다.
첫째, “거룩한 행실”입니다.
거룩한 행실이란 거룩은 하나님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어요.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가 편을 갈라서 싸우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뇨?”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셨으니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보여 주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을 살아야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도, 친척도, 아비집도 다 떠났어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는 사람을 살잖아요. 조카 롯과 헤아질 때에도 땅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고 헤어집니다. 조카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황불로 멸망을 당할 때에도 어찌하든 구하려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사람들은 비웃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구원하려 하는 것이지요. 노아도 홍수 때를 대비해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하지만 비웃기만 합니다. 지금 베드로사도가 쓰는 편지에도 당시 교회에 하나님의 심판과 주의 재림을 비웃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행실을 보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왕이 주는 전리품도 받지 않아요. 왜냐? 나는 하나님으로만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것으로 복받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신자의 수치라고 생각했어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에도 기꺼이 순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으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씀 안에는 하나님을 보여 주려는 거룩한 행실이 있었습니다. 욥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다 하나님 안에서 해결을 하여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사오니 고난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경건한 행실로 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황당한 것은 전쟁이 나서 적들이 쳐들어 오는데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전쟁을 할 까요 말까요? 더 황당한 것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을 가는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저주와 조롱을 하는데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울왕에게 쫓겨 거의 죽게 되었는데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죽이지 않아요. 부하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하는 거죠.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과 같아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내가 어찌하랴?”다윗의 마음과 행동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있어요. 그래서 다윗의 가문을 복되게 하시고 예수님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도 보세요. 성령을 충만히 받는 제자들이 변하잖아요.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교회 공동체에는 가난한 자가 없어요. 차별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 거룩한 행실로 살아어요. 거룩한 행실은 마지막 때에 우리 신자들이 가야 할 길이고 마땅한 삶입니다.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할수록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를 본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청소년교회가 도시 탐험을 하는 것도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사람들을 만나서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여 주는 마음과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에서 거룩한 행실을 사는 것이 목장모임에서의 야유회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살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의 금수저이다.’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자녀답게 하나님의 사랑받는 금수저 답게 마땅히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찬송가 중에도 ‘나 지금 죄에서 사함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내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거룩한 행실로 살아갈 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고 세상에서 칭찬받고 하나님으로 구원을 더 하게 하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숫자만 줄러서가 아닙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했습니다. 거룩한 행실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심으로 가족을 구원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경건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11-12절을 다시 봅니다.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셨습니다.
경건함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의 두러움이고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예배의 경건함을 의미합니다. 물론 고아와 과부를 도와주는 일도 경건함이지만 여기의 경건함은 예배자의 경건입니다. 예빼자의 경건함을 찾는 것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가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님을 에배하는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을 보세요. 가난하고 어려운 고아와 과부를 도와 주는 일은 없어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하게 하신 일도 하나님을 에배하는 제사법과 성막을 건축하게 하시는 것 아닙니까? 인간이 타락하고 난 후에 가장 먼저 하게 하신 일도 제사이고 예배예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어요. 믿음의 기준입니다. 믿음의 제사만 받으십니다. 타락하면 예배의 형식만 남고 진정은 없어요. 예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하셨잖아요. 마지막 때일수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함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얘배로 하나님을 만났어요. 1)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이사야는 유다를 다스리던 웃시야 왕은 죽었지만 더 높은 보좌에서 이 나라를 지키시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일을 주장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의 죽음과 나라 장래에 대한 큰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옷자락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특별히 돌아보시고 축복하시는 은헤를 받았습니다. 천사들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2)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 앞에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형식적인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이나 기쁨, 감사, 감격이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생활의 염려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욕심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빛에서 자신의 죄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회개는 하나님의 천사가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용서를 받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보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이사야는 사명에로의 초대를 받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명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존재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국의 한 시골 교회에서 아프리카 의료사업을 위한 헌신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소년이 자기 앞에 헌금 쟁반이 돌아오자 그 위에 성큼 올라앉았습니다. 사람들은 놀라며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말했습니다. “저는 바칠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몸을 드린 것입니다.” 이 소년이 훗날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의사 겸 선교사로 활동하였던 리빙스턴입니다.이처럼 예배의 주체가 ‘나’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을 인정할 때, 예배는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통하여 어떤 결단을 하십니까? 3가지 예요.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위로받고 2) 나의 죄인 됨을 용서받고 3) 하나님의 일군으로 다시 세움을 받으시는 능력을 받았습니까? 이것이 경건의 능력이고 예배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배를 통하여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새 은혜도 주시고 새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지난 기독공보에 어느 목사님이 교인으로 은혜를 받은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한 교인이 보이스 피싱으로 돈을 많이 잃었답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니나요?’목사님은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다음 주일이 되자 청년들이 비전트립을 가는데 쓰라고 헌금을 가져 왔습니다. 그 헌금으로 예배당을 짓는데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묵묵하게 성도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집사님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죄에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예배가 목적이고 사명입니다. 우리의 경건함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배를 통한 경건함의 은혜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에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은 거룩한 행실과 예배자의 경건함이라는 두 가지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있습니다. 순종하시고 충성하심으로 영적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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