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24:14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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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2-09-03 18:32 조회8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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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4
가스펠프로젝트 구약3-6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
본문 : 여호수아24:14
설교문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20904 가스펠프로젝트 구약3-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 (여호수아24:14)
오늘은 여호수아서의 4번째 시간으로, 마지막 장인 24:입니다. 24:은 여호수아의 유언이자 고별사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축복이고 지속가능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이후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수고하지 않고도..땅과 성읍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내가 무엇을 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죄사해 주시고 부활로 영생을 주셨습니다. 의롭게 된 우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가나안의 악한 영들이 호시 탐탐노리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는가? 여호수아는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예배하라(수24:14)
여호수아는 예배하는 것에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24:14에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여호와만 섬기라” 섬기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것에 축복이 있고 지속 가능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40대 중년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교회에 가기 싫은 이유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둘째, 성가대원들이 자주 음을 틀려 마음이 아프다. 셋째, 교회 장로님의 기도시간이 너무 길어서 언제 끝날지 몰라 항상 긴장된다. 그 때 어머니의 대답입니다. 네가 교회에 꼭 가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둘째, 주일예배는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셋째,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런 조크에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예배에 대해 흔히 사람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잘 꼬집고 있습니다. 주일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공휴일이니까요. 평일에 직장이나 학교에 가면서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 않은데, 예배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청소년교회 교사나 찬양대가 되면, 학생들이나 교인들보다 먼저 와서 준비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다 보면, 틀린 것만 잡아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성가대가 오늘은 두 번 음이 틀렸네.’ ‘장로님이 오늘은 몇 분 기도했네..’기도시간 재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배와 설교를 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서..설교에 감동을 받으면 ‘오늘 예배 잘 드렸다’고 생각하고, 반대의 경우는 예배를 잘 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설교에 감동을 받고, 찬송을 부르고 들으면서 느끼는 감동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는 “무릎을 꿇는다!”입니다. 세상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기쁨이 예배입니다. “거룩 거룩 거룩 주의 보좌 앞에 모든 성도 면류관을 벗어 드리네 천국천사 모두 주께 굴복하니 영원히 위에 계신 주로다”(8장) 높으신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벗어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것에 예배입니다. 이런 것이 세상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세상 종교에서의 제사는 철저하게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내가 정성을 드리면 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이다!”조건부예요. 삼 천배 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정성을 드리면 신이 감동을 해서 복을 줄 것이다’생각하는 것이 세상종교입니다. 거기에는 신의 뜻이 없어요. 내 생각과 욕심에 따라 신이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이 세상종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예배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좋은 방법은 하나님 자신이 정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어떤 생각이나 의향에 따라서 예배하거나, 어떤 가시적인 물질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사탄의 지시에 따라 예배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계시된 자신의 뜻만을 따라서 예배하도록 정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데..수레에 운반을 하다가 갑자기 소들이 뛰는 바람에 법궤가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운반을 하는 ‘웃사’가 법궤를 붙잡는 순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습니다. 다윗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 두렵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올 수 있을까?’그러다가 다윗이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에는 고리가 달려 있는데 이 고리에 긴 막대를 끼워서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대로 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성령이 주시는 힘과 은혜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라..강 건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세상 종교처럼 내가 주도하는 예배, 내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예배가 아니라.,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축복입니다. 예배의 주체가 ‘나’가 아니고 ‘하나님’임을 인정할 때, 예배는 나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영광 돌리는 예배자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상 제거하라(수24:15-23)
우상을 제거하는 것에 참된 예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여호수아를 따라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자..여호수아는 “너희는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잘못과 죄를 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 죄를 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섬기려면.“우상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우상중에는 송아지 우상, 불상 우상도 있습니다. 물질, 권력, 욕심의 우상도 있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깔뱅은 마음의 우상이 문제라고 합니다. 골로새서3:5에는 “탐심 그 자체가 우상숭배”라고 했는데..위에 것을 찾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3:2)고 했습니다. 우상이란 돌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신들의 형상만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것으로..돈, 성공,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외모, 인기, 명예, 존경, 영향력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를 우상으로 두게 되면 초반에는 삶에 활력과 열정이 솟아오르나, 오래 가지 않아 초조와 불안이 찾아오고 그것이 서서히 자신을 옭아매고 마음을 조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세요. 탐심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떠났던 탕자..어떻게 됐어요. 돈이 없어지니까 결국은 남의 종이 되어 돼지 밥을 먹게 됩니다. 이렇게 탐욕은 사람을 헤치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게 됩니다. 며칠 전에도 27살 된 미모의 영화배우가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을 비관하여..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아직 젊고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는데도 안타깝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내가 선택했던 우상들은 결국 나의 삶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폭군이 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상숭배의 가장 깊숙한 마음의 동기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아담과 같이..결국 스스로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영광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평소에 열심이고 헌신적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교회 안의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될 때가 있어요. 외적으로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고 교회를 섬겨도, 내적으로는 스스로 인정받고 높아지려는 우상이 섬김의 주된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산의 절반을 바치고도 죽임을 당한 경우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와 자매라고 하셨고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 탐심이고 우상숭배입니다. ‘나의 기대, 나의 성공, 나의 욕망이 성취되도록 하나님이 일해주기를 바랍니다.’결국 누가 누구를 섬기는 걸까.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걸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섬기는 걸까요.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 숭배자를 하나님은 질투하시고 노여워하시고, 결국은 음행한 여인처럼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새롭게 된다는 말은 “..편히 쉴 때…”“..유쾌하게 되는 날”입니다.
한국교회 회개해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이 탐심으로 지어낸 말을 가진 이단적 가르침을 주의해야 합니다.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물로 심판하신 것처럼.. 돈, 권력, 명예라는 우상을 섬기는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교인만 많아지면 헌금만 많이 걷히면 많은 일을 해서 하나님이 기뻐할 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런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굳게 하심으로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벧후1:10-11)
셋째, 순종하라(수24:24-28)
순종은 참된 예배이고 구원의 표시입니다. 백성들이“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하자 큰 돌을 가져다가 기념비를 세워 그 증거로 삼았습니다. “청종하리이다”는 전적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요14:21)하시는 것처럼 순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고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시몬은 어부였고, 간밤에는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고기가 전부 숨어서.. 밤에 잡습니다. 너무 깊기 때문에 작은 그물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피곤해서 더 이상은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도 맞지 않습니다. 장소도 맞지 않습니다. 힘들어서 못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출신이요, 시몬은 한평생 고기를 잡은 어부였습니다. 고기잡이에 대해서 알면 시몬이 더 많이 알지 예수님께서 더 아시겠습니까? 핑계를 댈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었습니다.‘내 직업이 어부니, 선생님, 고기 잡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 알아서 할 겁니다. 내가 선생님보다 더 나으니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십시오.’우리 가운데도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목사님, 사업은 내가 전문입니다. 한 평생 내가 이거해서 먹고 살았는데 뭘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하나님,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지요. 내가 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습니까?’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기 경험과 지식과 생각을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때도 맞지 않고 피곤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는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졌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무엇입니까? 왜 교회에 나옵니까? 우리는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요한복음 15:7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체험하자 시몬은 그만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핸드리 페이지는 1885∼1962를 살았던 비행항공술의 선구자요 영국의 항공기설계사입니다. 하루는 그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펴보니 생쥐 한 마리가 전선을 갉아대고 있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쥐가 갉은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가 추락하게 될 것이고,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면 자신의 명예도 추락하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는 빨리 내려가야 추락하는 것은 막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니까..“올라가라. 더 높이 올라가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기도할 때 주시는 말씀은 ‘올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엔진을 놓고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갔습니다. 비행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전선을 갉고 있던 쥐는 산소가 부족하니까 질식하여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높이 올랐던 비행기는 다시 아래로 무사히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우리 생각 속에, 말씀이 내 마음속에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칭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을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을 뿐입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할 때, 아브라함이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처럼..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결실이며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2)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순종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후손이 번성하고(창26:4∼5), 질병에 걸리지 않고(출15:26),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며(신28:1),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신29:9).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요14:21), 기도 응답을 받으며(요15:7), 흉악한 마귀와 싸워서 이깁니다(요일2:14). 순종은 구원받은 자의 표시이고 믿음을 온전케 하는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배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높이고 사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회개,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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