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3:8-13 "기다림의 완성을 향하여"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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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12-11 14:28 조회1,4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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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2 대림절3주

 

3분설교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기다림의 완성을 향하여
본문 : 베드로후서3:8-13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설교문
211212 대림절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기다림의 완성을 위하여..”
(베드로후서3:8-13)

     독일나치에 잡혀서 수용소에 갇힌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가스실에 끌려가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망에 휩싸여 있는 수용소의 동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죽음의 포로수용소 안에서..살아날 희망 없다는 이유로 그 어떤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 거지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주변의 상황 속에서도 한 의사는 얼굴은 물론 옷까지도 단정하게 입기를 노력했습니다. 운동자에서 유리조각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이 유리조각으로 수용소에서 하루에 겨우 한 컵 주는 물로 일부는 마시고 일부는 꼭 면도함으로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얼굴만 환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독일군은 매일같이 얼굴을 깨끗하게 다듬는 포로를 보더니..그를 귀하게 여기고 때론 존경까지 하면서 죽임의 순서를 뒤로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독일이 패망하고 의사는 살아났던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입니다. 시편62:5의 말씀처럼 “나의 영혼아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하시는 것처럼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날을 준비하고 사는 신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것과 같은 말씀을 오늘 성경에서 베드로 사도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먼저 8-10절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나 “도둑같이 오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사람으로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무척이나 필요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 사람은 너무 기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만원이 100억 갔고, 100억이 만원 같으시겠네요?  그러니, 하나님 저에게 제발 만원만 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 알았다. 만원을 줄 테니 하루만 기다려라” 하시더랍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의 시간대와 하나님의 시간대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시간 안에 갇혀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그 시간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인 ‘구원’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느니라”하시기 위하여 참으시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멸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에..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문제는 자꾸 하나님의 재림 시간을 알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재림의 시간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4:36절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재림시간에 관심이 있자 바울사도 역시 데살로니가전서 5:2절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신자들은 종교개혁 당시에도..그 날과 그 시로 인하여 패가망신했고 사회적으로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1992년 10월 28일을 다미선교회가 예수 재림의 시간이라고 했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헤프닝으로 끝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르시는 시간에 대하여 당시에 책도 많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수준까지 되었으니까요. 어린아이에게 보여 주신 계시이기 때문에 더 확실 할 것이라고 하니까..열성 있는 분들 중에는 집도 팔고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들은 학교를 자퇴시키고..이민 갔던 분들이나 유학을 갔던 학생들도 다 보따리 싸가지고 왔어요. 마포 한 장소에서 흰옷을 입고 찬송하고 밤새 모였다가..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지상파 방송사들이 동원이 돼서 중계까지 했으니까..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그 당시에는 교회를 다닌고 말한다는 것이 다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주의 재림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분명히 아세요. 무슨 꿈도 아니고 무슨 예언이라고 하면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저희가 어려서는 신앙촌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전도관의 박태선장로가 집 팔고 함께 일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자고 해서 덕소하고 소사에 집단거주지를 만들고 공장에서 일하고..물건을 팔러 다니고..그렇게 살았어요. 거기에 갔던 사람들 가운데..제 친구네 집은 다시 나왔을 때는 완전 거지됐어요. 베드로 사도 당시에도 신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이 되면서, 재림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그대로 있는데 언제 주의 재림이 있겠냐”며 기롱하는 사람들도 있게 돼서 교회도 혼란스럽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이날 이다 저 날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 수가 없어요.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불의 심판으로 그날에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11-13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입니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질문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으로 주님을 만날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하셨습니다. 개인의 변화를 중시하는 말씀입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 어느 주교의 묘비 문에 쓰여 진 글입니다. <내가 젊어서 자유로이 세상의 나래를 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좀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아!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서야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했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하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가족이 변화되고 나라도 세상도 변화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구원을 위한 변화를 하라고 하십니다. 두 가지로 그 날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1) 거룩한 행실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1:14-16에 “14..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거룩하게 된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요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산이고 정체성이고 능력입니다. 교회의 교인 수나 헌금액의 크기를 자랑하는 것은 불시험 앞에서 다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베드로후서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하신 것처럼..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함께 하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이..거룩한 행실입니다.  2)경건함입니다. 하나님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건입니다. 베드로전서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위하여..기도하는 일이나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말씀을 읽고 큐티를 하고 목장 나눔을 하는 일에도 열심을 다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 대접하고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고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경건함입니다. 그래서 14절에 “14..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초기교회의 성도들은 말로 전하지 않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드러내는 도구, 말씀의 해석은 다름이 아님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었다는 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초점은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모집하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서서 전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자신들의 신실한 삶이 전도 그 자체였는데..자신들이 예수님으로 연합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자기들과 연합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로마의 압제 중에서 3세기까지 교회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는데..특별히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을 이어 갔기에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앨런 크라이더는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기른다면,/ 그리고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남자 그리스도인이 그의 이교도 친구 중 오직 한 사람을 확신시키고,/ 여자 그리스도인이 그녀의 이교도 친구 중 오직 한 사람에게 믿음의 진리에 관해 지속적으로 확신시킬 수 있다면,/ 그와 그녀는 처음 3세기 동안에 있었던 교회의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전제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 셈이다.”(감광남 옮김, Ivp, p.221) 신자부모인 우리 자신들이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믿음이 부실한데 자녀의 믿음이 건실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입니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세대들이 없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교회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고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수많은 대안들이 나오고 있지만..가장 중요한 대안은 가정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기르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교회 로마의 핍박 때에도 교회가 성장한 비결은 다름 아닌 가정복음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성전건축을 하면서 가정성전건축과 개인성전건축을 하자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주님이 재림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재림의 날로 현혹하는 이들을 멀리하세요. 교회 안에 다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빅터 프랭크처럼..내가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우리의 자녀들이 이 교회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신앙의 본이 되는 그런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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