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3:1-8"인간의 반역"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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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2-01-15 17:38 조회1,1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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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6 주일예배설교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1-3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인간의 반역
본문 : 창세기3:1-8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설교문
220116 가스펠프로젝트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인간의 반역”
(창세기3:1-7)
가스펠 프로젝트 3번째 시간..죄-인간의 반역입니다. 인간의 반역인 죄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반영하고 보여주는 것의 반대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지 않고 인간의 생각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인간의 반역은 3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을 불신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3가지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라는 하나님의 창조계획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반역인 죄의 영향력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을 불신하게 만듭니다. (창3:1-7)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을 불신하게 했다는 것은..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라는 것에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귀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인간의 반역이고 죄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와에게 교활한 뱀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의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하시더냐?”뱀의 질문에..하와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태서 대답하고 있기를..“..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계시록22:18-19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보태거나 줄이는 자에게는 재앙을 주시고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태니까..뱀은 당장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불신하게 만듭니다.“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리라”하와는 뱀의 말을.. 마음을 두는 순간..눈이 달라집니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 다는 선악과가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같이 된다는 거짓 소망이 생겼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하는 나무”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어떤 분이 큰 사업체를 하시는데..도박에 빠졌어요. 성실하게 사업만 해도 잘 살 텐데..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마귀에 씌우니까..회사도 넘기고 완전 거지가 됐어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중에도 도박에 빠졌다는 것이 알려지니까..사람들의 버림을 받잖아요. 하와가 그랬어요. 선악과자기만 먹은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먹게 했습니다. 아담이라도 하와를 책망해야 하는데..그렇지 않고 같이 반역을 한 것입니다. 죄는 이사야1:2의 말씀대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의 불신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전하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창세기 6:에 의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어마어마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6:22에 노아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하자..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8명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창세기 10:에서 8명이 이었던 노아의 가족은 수많은 자손과 민족을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선생님에게 제자가 되겠다고 두 명의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처럼 에수님을 닮아 거룩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프란체스코 선생님은 두 젊은이에게 배추모종을 심되 뿌리를 하늘로 하여 심으라고 했습니다. 두 청년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아니..뿌리가 하늘로 향하게 심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한 청년은 선생님이 잘못 말씀하신 것이지..‘배추뿌리가 하늘을 보면 어떻게 살 수 있나?’하고는 선생님의 지시가 아닌 자기생각의 옳은 대로 뿌리를 땅으로 하여 심었습니다. 또한 청년은‘선생님의 분명한 뜻이 있을 거야..순종해야지’하면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뿌리를 하늘로 하여 심었습니다.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두 청년이 밭에 배추를 심어놓은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지시가 아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대로 배추를 똑바로 심은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당신은 참 똑똑한 분입니다. 아마도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는 될 수는 없겠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빠른 계산이 아니라 순종이기 때문입니다.”선생님말씀대로 순종한 청년이 제자가 되었습니다. 믿음과 순종만이 하나님이 에비하신 축복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아니 우리 신앙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 하는 것으로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어느 가정의 아내가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에 빠졌답니다. 남편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도무지 통하지 않더랍니다. 급기야 아내는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종말론을 가르치는 교회 곁으로 이사 갔답니다. 어린 자녀까지 데리고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통 교리에 근거한 교리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하심을 불신하는 것은 인간의 반역이고 죄입니다.
둘째,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창3:8-16)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렸다는 것은..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 맺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었다는 것에 대한 인간의 반역입니다. 이런 관계의 깨뜨린 상태가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다는 것으로 보여 줍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음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왜요? 고대근동에서는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는 것을 심각한 수치로 여겼습니다. 노아가 자신의 벌거벗음을 들추어 낸 것으로 아들 함을 저주를 할 정도로 벌거벗는 것은 수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치심은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수치심이 없었습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말로 바꾸기 전까지는 벌거벗은 것이 수치스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정감을 누렸고 필요한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문을 제기하고 하나님이 반드시 죽는 다는 선악과를 따먹자 영광으로 덮여 있던 것이 떠나갔습니다. 영광의 덮음이 떠나자..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죄와 더불어 사람의 자기인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은폐하고 숨었고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치심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양심에 따라 주어진 것으로..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반역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깨졌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하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당신이 주신 여자가 주어먹었습니다.” 하와도“너는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습니다.”책임을 전가함으로 사랑하는 부부관계가 깨져버린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하나님이 아벨의 믿음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믿음 없는 제사는 받지 않으시자..가인은 화가 나서 아벨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냐고 물으시자..하는 말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하나님을 떠난 가인과 그 후손들은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어 자기를 철저하게 보호합니다. 아벨대신 태어난 아담의 후손들은..장수했고 그 중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데려 가심으로 땅에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의 관계..관계를 깨뜨리고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합니다. 창세기 6:의 노아 홍수 당시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네피림이라는 거인들과 용사들이..되는 것이..그리고 바벨탑을 쌓아 이름을 내자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비전이고 삶의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유괴범을 아이의 엄마가..예수를 믿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신 것처럼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사랑으로 용서하리라 다짐하고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면회실에 나온 죄인은 너무도 평온한 얼굴로 하는 말이..“저 역시 감옥 안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회개와 속죄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심어린 사과가 먼저이고 할 수 있는 대로 보상하겠다는 것이 우선입니다. 속건제사가 바로 보상하는 제사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자기가 죽인 아이의 엄마의 아픈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받은 것만을 은혜라고 하는..뻔뻔한 살인범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절망하고 절규합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용서했다는 거야”그리고 그따위 값싼 용서를 베푼 하나님에게 저항합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은 무시하고 신과의 개인적 관계만 중시하는 신앙이 얼마나 왜곡된 거짓 신앙인지를 이 영화는 날카롭게 고발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맺기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선교하는 예수 공동체”가 되자는 것에는 하나님과 관계 맺기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중시하는 목회의 비전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파괴합니다. (창3:17-24)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파괴하는 인간의 반역은..일하고 안식하는 리듬으로 하나님을 반영하고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인간의 반역입니다. 일하고 안식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런데..인간의 반역은..하나님이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은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게 하셨습니다.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생김으로 일의 축복이..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는 노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와에게는 출산의 아름다움이 고통으로 훼손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되었습니다. 생명나무를 먹고 영생하지 못하도록 쫓아내시고 불 칼로 생명나무 길을 지키셨습니다. 인간의 반역이후..하나님의 선한 세상은 파괴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하나님이 선하시다고 하면 선한 것이고 하나님이 악하다고 하면 악하다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과는 완전히 독립된 자기들만의 판단기준을 가졌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창조세계를 다스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뒤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인간에 의해 통치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질서 역시 인간에 의해 지켜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을 하게 된 이상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스림의 권세를 가진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다스림을 받고 굴복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롬1:21에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도 감사하지도 않고..생각이 허망하여져서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져..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동물의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은 돈이고 권력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즘 유명한 영화중에 “위를 보지 말라!”“Don't look up.”이 있습니다. 지방의 천문학 박사 공부 중의 학생이 하늘을 보다가 지구로 돌진하는 커다란 혜성을 발견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6개월 후에는 지구에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런데 대통령에게 말했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선하여 권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재벌들과 손을 맞잡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다가..결국은 혜성이 지구를 충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통령과 부자들은 권력과 향락에의 관심에..혜성이 오는 것은..정보국으로 비밀로 하게하고는 국민들에게는 위를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전했지만..롯의 사위들은 비웃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위를 보는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초대교회공동체는 하늘을 살았기 때문에..세상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식구들로 가난한 자가 없게 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성찬을 나누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었습니다. 포로들을 속량하여 자유인이 되게 해 주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병자들을 돌보는 것을 배웠고 모든 폭력과 살인을 거부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자체로 세상의 대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을 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한 후에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부끄러움을 가려주셨습니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의로 가릴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지어주신 옷으로..예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옷, 거룩한 세마포 옷으로만 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만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건축을 하는 동안..배워야하고 훈련해야 할 일들을.. 파괴된 세상을 회복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파괴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의 반역인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데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셔야 합니다.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교회는 파괴된 제사장예배로 선지자선교로 관계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의 선한 세상을 파괴했습니다. 우리는 섬김의 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피조물을 다스림으로 교회공동체로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 주간도 이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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