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3:23-24“예수님의 율법 정신으로 해방하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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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8-14 14:09 조회1,410회 댓글0건

본문

210815

3분설교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예수님의 율법 정신으로 해방하라
본문 : 마태복음23:23-24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설교문
210815 해방기념주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예수님의 율법정신으로 해방하라” (마태복음23:23-24)
오늘은 8.15 해방 76주년 감사주일입니다. 일본제국주의 36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아주 영광스러운 날이고 희망의 날인 것입니다. 이런 해방이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아직도 해방되어야 할 것들이 우리 안에 너무 많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책망하시면서..율법의 정신대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23-24절입니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율법의 정신대로 하고 있느냐? 입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대로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랍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자기 집 마당에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키우고 있었고 적은 양을 채취했지만 십일조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세에 대하여 문제 삼지는 않으셨지만 문제는 율법의 더 중한 정신..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14:29에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도 십일조는 목회자, 가난한 자, 예배당 건물 수리, 그리고 이웃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있습니다. 십일조 등뿐만 아니라 여러 방법으로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 이 3가지 율법의 정신은 점검하고..회복하여 하나님의 축복받는 신앙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야 할 예수님의 율법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첫째, ‘정의’입니다. ‘정의’는 창조의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처음 세상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피조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이 왕이시고 인간은 평등하고 자연을 다스리는 창조의 질서가 세워지는 것이 정의입니다. 정의로움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왕이시고 우리 사람들은 모두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은 인간들이 다스려야 할 자연인 돈이나 배움의 크기를 가지고 서로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정의는 하나님심판의 정의로 심판자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의 잣대로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낙인을 찍어..두렵게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심판의 정의, 정죄하는 정의는 율법의 정신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는 율법의 정의를 잘 설명하고 있는 비유가 있습니다 바로 마20에 나오는 ‘포도원 품군’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일하는 품군을 찾았습니다. 오전 6시, 9시, 12시, 오후3시, 오후 5시..이렇게 5번이나 품군들을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새벽6시에 와서 일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이 능력이 많을 것이고..오후 5시부터 일하는 사람은 능력이 부족해서 늦게 선택을 받아 일을 했던 것입니다. 오후 6시에 일을 마쳤습니다. 주인이 일을 한 일군들에게 품삯을 주었습니다. 1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1데나리온은 당시 품군의 하루 일당입니다. 그리고 3시간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6시간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 9시간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그리고 12시간을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12시간 일한 품군이 불공평하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4..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하나님나라의 정의는 하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주인의 뜻대로 할 때 인간은 순종할 뿐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는 차별이 없는 평등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이해가 되지 않겠습니다만은..하나님만이 주인이시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원칙, 하나님나라의 정의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빈부차별이 없고.. 학력차별..성 차별..지역 차별..인종 차별이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정의입니다. 죄인도 사랑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셨습니다. 재창조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심으로 불의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갈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했습니다. 혈루 병을 고쳐 주심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세리를 불러 제자가 되게 하심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4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심으로 죄에서 지유하게 하셨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하인의 병도 고쳐 주심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만이 세상의 왕이시고 사람은 차별하지 않고 자유하게 하심으로 평등하게 대하시는 율법의 정의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만을 주인으로..왕으로 섬기고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여 차별하지 않는 창조의 정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1:26에“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하신 것처럼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의 권세를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왕의 권세..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갑질하고 살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물론 교회에서는 세상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평등하게 살아야 합니다. 눅4:17-19에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주의 성령이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도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자기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눔으로 서로 사랑하고 차별을 없이하고 평등하게 사는 하나님의 정의, 율법의 정의를 이루었습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차별과 정죄의 잘못된 정의는 버리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평등하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고 이루어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장애인비장애인은 물론 부자나 가난한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율법의 정의, 창조의 정의를 이루어 가는 일을 기뻐하시고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정의는 제사장된 우리가 마땅히 행할 창조질서의 회복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되는 성령공동체..정의로운 창조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긍휼’입니다. ‘긍휼’이라는 말은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서 도와줌’,‘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25: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하시고 “34..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긍휼의 사랑을 하는 자가 의인이고 영생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준비된 나라에 들어 갈 자는 바로 긍휼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입니다. 예수님은 긍휼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14:14) 이런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사랑으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능력이 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소위 치유의 은사가 있다고 병자들에게 함부로 대한 은사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에게는 긍휼의 사랑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긍휼의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예수님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게 하시는 기적 속에는 이렇게 긍휼의 사랑이 있습니다. 결혼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은 긍휼의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것도 역시 긍휼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으셨고 이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하늘보좌에 앉게 하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긍휼의 사랑의 길을 가야 축복도 상도 받습니다. 여러분은 긍휼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눅10:의‘선한 사마리아사람의 비유에서는..강도만나 죽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강도만나 도움의 신음 소리를 듣고도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행사가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인이라고 불리 우는 사마리아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의 몸에 난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발라 주고 주막집으로 데리고 가서 두 데나리온을 내어놓으며 부탁을 했습니다.“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돌아오는 길에 부족한 치료비를 드리겠습니다.”이 이야기를 듣고..율법교사은 ’자비를 베푼 자가 이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이같이 자비를 베풀어라”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긍휼의 사랑으로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교회공동체 안에서..그리고 직장과 학교에서..긍휼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준다면..반드시 긍휼의 사랑으로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땅에서 받지 못하면 하늘에서도 받을 것이고..당대에 받지 못하면 후손들이 받을 것입니다. 이삭은 긍휼의 사랑으로 우물을 양보하니까..하나님께서 거부가 되게 하셨고 결국에는 6개의 우물도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여러분“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3) 경건한척 옷을 입고 윗자리에 앉아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행동 없는 사랑은.. 마땅히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지 않고 배부르게 하라고 하는 형식적인 신앙..버려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사회봉사가 긍휼의 사랑으로 다시 서야 합니다. 기독교는 종교봉사의 75%를 할 정도로.. 다른 종교에 비해 월등하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신뢰도는 다른 종교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왜요? 긍휼의 사랑이라는 율법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동네 분들이 우리교회의 긍휼사역을 좋아하는 이유는 긍휼의 사랑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닙니다. 교회입구에 비치된 자판기는 무료입니다. 무료로 하는 것에는 긍휼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여름에 교회 문 앞에서 하는 냉차 섬김도 더운데 시원한 냉수를 먹을 수 있게 해준다고 기뻐들 하십니다. 교육관 입구에 담장을 헐은 것도 교회가 주민들을 위해 쉴 수 있게 배려한다고 좋아들 하십니다. 그 해에 생산된 햅쌀로 불우이웃돕기를 하고..지역의 유명한 맛 집으로 모시고 가서 대접하는 효도관광을 하고..동네잔치를 위한 바자회를 하니..이런 긍휼의 사랑에 감격하는 것입니다. 기초생활 수급자분들에게 정부에서 매월 4만원을 보조해 드릴 때 우리 교회는 3만원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긍휼의 사랑으로 30여년을 해오고 있고 한 번도 이분들에게 오라가라부담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봉사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돈이 많이 쓴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긍휼의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긍휼정신이고 예수님의 긍휼정신이고 교회가 가져야할 긍휼정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위탁 운영하는 한남요양원이나 한남어린이집이나 한남동 키움센터나..마을공동체인 함께 육아나 영어교실이나 피아노교실..코로나로 멈춰있지만 주민들이 원하면 언제나 교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교회가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긍휼이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실 수 있도록 긍휼의 사랑으로 승리하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23..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14:23) 믿지 않는 것도 죄,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 응답을 받았고, 믿음으로 인내하고, 믿음으로 말씀을 보고, 믿음으로 예배하고, 믿음으로 충성하고, 믿음으로 그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반드시 믿는 대로 역사 하시는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 고난을 받을 때 미스바에 모여서 믿음으로 제단을 쌓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하나님은 천둥번개로 블레셋을 물리쳐 주시고 평안을 주셨습니다. 어린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 앞에서 떨고 있는 사울의 군대를 대신해 믿음으로 나아가서 물맷돌로 골리앗의 큰 칼과 창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일천번제로 믿음으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지혜는 물론 부귀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성령 받은 초대교회성도들은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율법의 정신인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율법의 정신인 믿음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김의원교수는 “지난 세월동안 교회는 성장주의에 매달려 성도의 숫자가 성공의 증거인 줄로 알고 음악과 설교와 연극으로 사람들을 붙잡으려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 동역자를 양육하기 보다는 최고의 예배, 서비스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교회쇼핑을 하는 구경꾼 성도들만 양산했습니다. 교회는 매 주일 더 좋은 쇼를 마련하여 애쓰게 되었고 신자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는 소비자로 전락이 되었습니다.”최근에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을 모시는데..기준이 교인을 몇 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느냐? 그 방법은 무엇이냐? 구체적으로 계획서를 내라고 합니다. 성장을 주장하는 논리는 교인이 늘면 헌금이 늘고 돈이 많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경제적인 논리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깊은 병에 빠져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 축복이고 없으면 저주라고 하는 생각에는 세상보다 더 악한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믿는다면..세상의 기업과 다를 바가 없이 보인다면 누가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믿음을 강조하고 실천해야 할 교회가 돈돈돈하니까..돈이 없으니까..돈 많이 벌지 못하는 목사님을 내 보내고 소위 은혜받게 해서 돈을 많이 벌게 하는 목사님을 모신다는 교회에..청년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돈돈하면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교회와 성도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늘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홀로..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하셨는지..땅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할 때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히 받아..믿음으로 사는 신자가 되었습니다. 믿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바울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여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적 믿음, 복음적 믿음으로 무장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믿음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많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에 세우시는 교회는 믿음의 교회입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철저하게 주님이 구원자이시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세가 있는 교회가 예수님이 세우시는 믿음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은“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교회, 제사장교회입니다. 바울사도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있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삽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로 하여금 하늘 문을 여시는 축복을 충만히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식적인 신앙생활 때문에..종교인구가 줄어들고 있답니다. 2,30대의 젊은이들이 교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율법의 정신으로 살아 다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8.15 76주년 해방절에..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처럼..이 나라가 예수님의 율법정신을 따라 세워지고 교회역시 예수님의 율법정신으로 세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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