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1:1-11“종려주일의 예수님”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328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3-27 19:43 조회2,46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10328 종려주일
*설교문
210328 종려주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종려주일의 예수님” (마태복음21:1-11)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로 지킵니다. 종려주일과 부활 주일 사이에는 고난주간입니다. 종려주일은 우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셨습니다. 많은 다른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 왔습니다. 여리고를 지나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일행이 점점 많아 졌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 벳바게에서 부터는 나귀를 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무리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들을 길 위에 펴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호산나라고 하는 말은“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것은 승리와 축하를 의미합니다. 왕으로 영접할 때 호산나 하면서 종려나무가지를 흔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관심 있게 보려고 하는 것은 종려주일의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과거에는 예수님이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보여주시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입니다. 2가지로 “종려주일의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나귀 주인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1-5절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1-5절에서 보시는 것처럼 나귀의 주인이 나귀를 주님께 내 드렸습니다. 두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주께서 쓰시겠다”하니까..나귀를 내어 드린 것입니다. 간단한 일이 같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놀랄만한 일인 것입니다. 나귀를 내 드리다니요? 나귀 값이 얼마입니까? 요즘 나귀 한 마리에 300만 원정도 하는데 주로 고기나 화장품 용도로 사용될 뿐이기에 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교통과 운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나귀의 값은 결코 싸지 않았습니다. 나귀는 우리나라에서도 양반들이 타고 다녔을 정도니까요. 이처럼 나귀는 엄청난 재산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이렇게 귀한 나귀를..“주께서 쓰시겠다”하는 말 한 마디에..나귀의 주인이 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말에 순종하는 나귀 주인의 모습을 보고 놀란 것은 본문의 저자인 마태입니다...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 졌다고 했습니다.“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을 미심쩍어 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될 까?’‘예수님이 주인이라는 말이 맞을까’그런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는 ‘예수님은 세상의 주인이 맞구나!’‘스가랴 선지자가 말하는 왕이 임하셨구나!’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탄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움직이실 때 세상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귀신들도 내 쫓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보리떡 5개로 5천명을 먹이시고..바다위로 걷고 풍랑도 잠잠하게 하시는 등 전혀 다른 세상,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는 간단한 한 마디 말로 이루어 졌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흑암과 혼돈이..빛이 있으라하시는 말씀 하나로..빛이 생기고 전혀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 것처럼..한 마디의 말씀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악한 영에 사로잡혀 살던 우리들의 아픔도, 영의 문제도, 살고 죽는 것도,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자연환경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인이시기에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상을 다스리심은..‘“주께서 쓰시겠다 하라”이 한마디에 나귀의 주인은 그대로 값비싼 나귀를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주는 자가 되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마28:18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행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는 물론 우리 집도 살게 하십니다. 수 천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요10:10에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한 것처럼.. 즉,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벧후1:10에“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그러면 하나님 나라에도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입니까? 여러분은 주는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을 때, 생명을 얻고 성령을 따라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신자의 풍성한 삶은 성전에 모여 예배하고 집에서 떡을 떼고 교제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나누어 공동체 안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했습니다. 풍성한 삶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교회 공동체의 풍성한 삶은 제자장의 무리까지도 믿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성령을 따르니까..제자들이 주는사람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 도망을 갔지만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는 일에 목숨까지 바칩니다. 돈이나 권력이 없으면 못살 것같이 생각되어 예수님의 좌우편에 누가 있을 것인가를 놓고 다투던 제자들이 주는 자의 복과 섬기는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실 때..성령 안에서 주는 자가 되어 풍성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교사님 한 분이 좋은 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차를 타게 되었는가? 했더니 어떤 분이 렌트를 해줘서 탄다고 감사해 했습니다. 이번에 차선교사님도 떠나기 전까지 차를 타라고 내 주신 분도 있어 가는 날까지 잘 준비해서 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여 주는 자가 되신 분들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위에 기름을 부어 드린 여인...노동자 일 년의 임금에 해당하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드린 여인의 행위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그를 기억하리라”하셨습니다. 나귀의 주인이 주를 위해 나귀를 기꺼이 빌려 드린 행위도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기억되고 영원토록 빛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기억되기 바랍니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영상이나 인터넷뱅킹으로 주일성수하고 십일조생활과 감사와 선교, 장학헌금 등..주님의 몸 된 교회에 기름 부어 드리고 나귀를 드리는 일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여러분의 행위가 기억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미얀마에서 자라는 어린이들과 신학생들..동티모르의 한남제일장학관에서 판사1명, 변호사4명, 이제 검사시험을 앞둔 메리까지..대사관과 교포들의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공무원, 교사, 간호사..까지 더 하고 이번에도 5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2명이 대학생이 되고 새로 3명이 입소한다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희생입니다. 러시아에서 군인들이 예수를 믿고..몽골에서 현지인이 교회를 세우고 한국에서도 몽골교회가 모이고 있고..칠레에서 새로운 선교사역이 시작이 되고..미국 샤론의 집에서 이민 여성들과 청소년들이 쉼을 얻고..중국 연변에서 세워진 교회와 목회자36명이 중국 곳곳에서 사역을 잘할 수 있기..까지 수고하신 여러분의 사랑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주님께 순종하세요! 삼하3:1에 보면“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말1:2,3에는“2..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순종하세요! 예수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6-11절“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6-11절에서 보시는 것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셨습니다. 말은 전쟁에 사용하고 나귀는 평화로울 때 사용하는 짐승입니다. 그러니까..왕이 나귀를 타면 평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제자들이 나귀에게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아 예수님이 타시게 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은 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펴고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깔았습니다. 그리고 소리높이 외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앞과 뒤를 따랐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왕하9:13에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한 것과 같습니다. 유대역사로 보면 마카비가 왕으로 환영을 받을 때도 길에 옷과 나뭇가지를 깔았다고 합니다. 길에 입던 옷을 깔아드림으로 왕으로 모신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은“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9)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외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들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나귀를 타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 성이 입성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고 우셨습니다. 눅19:41이하에 “41..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마23:37이후에도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예수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평화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성전을 세우고 왕궁을 세워 종교와 정치의 중심이 되게 하여 평화를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권력과 세상 권력에 기생하는 종교지도자들로 인해 백성들은 평화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세리들이 세금을 착취하는 것처럼 성전에서도 자행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파는 제물과 유대 돈으로 환전하는 것으로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헤롯이 세운 웅장한 성전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장사로 사람의 욕심만 가득 찬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 사람과 사람의 평화가 없었습니다. 평화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은 기원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망했고 성전역시 무너져 버렸습니다. 평화가 없으면 도시이든 성전이든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귀타고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자기 몸으로 평화를 주셨습니다. 요2:19,21에 “19..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엡2:14,16에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의 평화, 사람과 사람의 평화를 주시는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 사람과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 죄 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주님이 주신 평화가 있기 전에는 세상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돈과 권력이 희망이었고 지식과 경험이 희망이었고 나라와 형편이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둔 희망은 수증기와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그 평화가 나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는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주인 평화가 준 은혜는 예수님처럼..예수님을 닮아 사는 삶, 섬기는 삶의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하시다가 거쳐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한 여성이 우리 교인의 인도로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이미 믿었던 분이었지만 가정생활은 남편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좋은 아파트를 살았지만 정신적으로 우울해 했습니다. 교리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하나님의 평화가 마음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으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나는 천국백성이니 하나님이 나와 내 가정을 다스리신다.”“나는 혼자가 아니라 성령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성령님을 의지한다.”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이 마음을 치유하자..어둠은 사라지고 빛으로 밝혀졌습니다. 남편을 보고 다른 집과 비교를 할 때에는 절망과 한숨뿐이었는데..하나님이 주신 평화안에서 나를 보니..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는 자연이 사람과의 평화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닮아야지..’<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남편을 미워하던 마음이 남편을 긍휼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다 보니 얼굴이..말이..행동이..남편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전혀 다른 가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상 멀리 이사를 갔습니다만 이 가정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주신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평화를 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하셨고 이 사랑으로 부부나 자녀. 이웃까지 사랑하여 살게 함으로 새 세상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죄인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에서 끊을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누리며 살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려주일의 예수님이 보여 주신 것은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 평화를 주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기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감사하고 사는 자에게는 평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으로 새벽기도회를 합니다.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부활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부활주일에는 헌금을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 헌금은 복음전하는 일을 위해 했습니다. 주를 위해 옥합을 깨뜨리고 나귀를 바쳐..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 행한 일이 기억이 되듯이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