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4:1-11“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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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4-24 17:54 조회2,2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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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5 부활절 후 세번째 주일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본문 : 요나4:1-11
3분요약 설교
*설교문
210425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4:1-11)
오늘은 요나서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도망을 쳤다는 것, 벌을 받아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다시 살아난 것, 요나가 40일 후에 멸망을 외쳤을 때에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 등 입니다. 이런 요나의 이야기가 전해 주고 싶은 것은 ‘신앙인의 가치’입니다. 무엇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인가? 돈인가? 출세인가? 세상 사람들도 다 가지는 돈이고 출세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으로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가치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가치있고 지속 가능한 그리스도인만의 신앙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으로의 가치에 관해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나는 여로보암 2세라는 북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이루어 놓은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의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당대에 함께 활동하던 선지자들..아모스, 호세아가 전하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말씀 중심의 예배회복과 헤리츠 땅으로의 회복입니다. 호세아는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관계 맺기의 풍성함이라는 관계적 신앙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요나가 전하고 싶은 신앙인 가치는 무엇인가? 본문을 중심으로 ‘돌이킴’과 ‘구원’이라는 두 가지 신앙적인 가치의 삶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돌이킴” 입니다.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이상하게도 이렇게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을 싫어하고 성을 냈습니다.
1-5절“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 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돌이킨다’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요나는 돌이키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죄를 지은 자에게 재앙을 내리신다는 뜻의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없는 틈을 타..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절하고 춤을 추어 재앙을 받을 때 모세가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12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출32:12,14) 히스기야가 죽을 것이라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 하셨지만 살려달라고 기도했을 때..뜻을 돌이키셔서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심으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살리시는 하나님..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1절에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고도 하셨습니다.(4) 요나가 싫어 성내는 것은 욘3:10에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기도로 하나님께 불평합니다.(2,3) 2절의 불평입니다.“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그렇게 되지 않고 망하도록 도망을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하는 것입니다. 3절에는 더 큰 불평을 합니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 게 나음이니이다/”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나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선지자라는 사람이..죽어야 할 자를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요나의 생각은 죄인은 재앙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하나님이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할 때, 요나는 대꾸도 없이..성읍 동쪽에 나가 초막을 짓고 성읍이 어떻게 하나 보려고 나가 앉았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맞춰 구원을 위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신앙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처럼 항상 내 뜻을 돌이켜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 구원하려는 생각에 맞춰 사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뱃사람들도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믿어 제사를 드렸고 니느웨 왕도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을 믿어 회개 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6,16)“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3:9) 이런 것을 보면..진짜 변해야 될 것은 요나입니다. 요나는 잘못된 선민의식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민은 남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 아니라..죽을 사람도 살리려는 구원의식, 복의 근원이 되려는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몸의 지체들을 보라고 하면서 그 어느 것 하나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체들을 다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사도들 앞에 드려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런 구원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성령 받은 자들이 할 일입니다. 지구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 싱싱한 아귀를 사서 요리를 하려는데 몸 안에는 생수 병이 들어 있어 내장이 다 썩어 있다고 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덜 쓰고 분리수거 등으로 환경보존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은 죽을 사람을 살리는 구원이고 복의 근원이 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 보다 먼저 믿어 구원받은 우리들..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를 구원의 삶과 생각으로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친구사이든..어디서든지 살리는 일을 해야지 죽이고 사기 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의 예수님은 섬김의 삶으로 심판받아 죽을 사람을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처럼 구원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날마다 날마다 주를 찬송하겠네 주의 사랑 줄로써 나를 굳게 잡아 매소서”(찬380)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치 있는 삶은 내 인간적인 생각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버리고 재앙에서 돌이키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따라..구원하는 생각과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내고 있는 요나는 지금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6-11절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
6절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사..”하셨습니다. 예비하사..예비 하사.. 예비하사..하십니다. 박 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신 하나님은 욘1:17에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2:에서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요나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하셔서 니느웨 성에 가서 ‘40일 후에 멸망’이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3가지 구원’이 있습니다. 1)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칭의 구원’, 2) 날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성화 구원’, 3) 나중에 주님과 같은 몸을 가지게 되는 ‘영화 구원’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과거구원, 지금 이뤄가고 있는 것이 현재구원, 앞으로 이뤄질 미래구원입니다. 성경에서는 칭의, 성화, 영화로 구분하고 있지 않고 그저 구원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두 번째 구원이 필요한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을 위해 일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마28:19,20에 예수님은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은 초대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고 스데반이 순교를 해도 굴하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거 했습니다. 교회는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셨고 교회는 구원공동체..성령공동체..나누어 가난한 자가 없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요나의 외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사회적 불의와 부정을 그치게 하여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요나의 승리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구원을 위해 사는 삶이 세상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찌 내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지 않겠느냐?”(4: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니느웨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아닙니까?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으니 구원을 위해 일하는 일군이 되는 것이 요나서가 말하려고 하는 주요 주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박 넝쿨이 잃는 것에 성을 냈습니다. 니느웨 성의 구원받을 12만 명을 구원해야 할 사람이..자기 생각이 옳으니 죽게 해달라고도 했습니다. 니느웨을 구원한 선지자로..자기를 망각하고 사명도 버리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요나가 하는 짓은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고백입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라’“..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갈6:3) 우리는 다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악한 세상에 살고 육체 안에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개구리로 실험한 했답니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에 넣었더니 금방 튕겨나가듯이 도망갔답니다. 그런데 찬물에 넣고 아주 서서히 물의 온도를 높였더니..더운 줄 모르고 있다고 죽더랍니다. 우리 인생도..신앙도..갑작스런 고난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계속되고 반복되는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는 서서히 죽어 간다는 것을 신앙인들도 모른 다는 것입니다. 요나도 지금 영적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모릅니다. 선민의식,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베드로 사도는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사적으로 부흥 성장하여 세계적인 교회가 된 이유에 대해 교회학자들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원인은 바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가치는 구원을 위해 사는 것..남의 구원하여 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는 ‘요놈의 나’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변해야만 삽니다. 요나처럼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 비판하고 정죄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것을 유지하려고만 해서도 안 됩니다. 요나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두 가지를 기억하십시다. “돌이킴”과 “구원”입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맞춰 사세요. 그리고 구원을 위해 사시는 것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질 가치이고 세상을 이기는 삶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5;16,17) 한 주간도 주신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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