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5:2-9“다시 할례를 받으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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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5-29 16:33 조회1,65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10530 삼위일체주일
3분설교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다시 할례를 받으라
본문 : 여호수아5:2-9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설교문
210530삼위일체주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다시 할례를 행하라!”
(여호수아5:2-9)
한 사회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은 3000~5000명쯤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중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두 종류라고 합니다. 나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준 사람과 나쁜 기억을 남긴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좋은 기억을 남기는 사람입니까? 나쁜 기억을 남기는 사람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는 세례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갈3:27)라고 한 것처럼 할례나 세례는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다시 할례를 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하나 되는 관계를 새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 요단강을 건너 적들 앞에 진을 치고 있을 때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할례는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나쁜 기억일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광야 40년을 살면서 죽음으로 나쁜 기억이 되었습니다. 다시 할례를 하라고 하신 세대는 광야 40년에 새로 태어난 출애굽 2세대입니다. 출애굽 2세대에게“다시 할례를 하라”는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좋은 기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할례는 하나님 사랑입니다.(2-3)
2-3절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할례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2, 3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습니다.“다시 할례를 행하라!”할례에는 창17:에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번성과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다시 할례를 받으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약속이 있습니다. 장정만 60만 명으로“후손의 번성”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가나안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리빙스턴은 적대적인 원주민에 싸여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어 밤에 도망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14:8)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856년 1월 중순 리빙스턴의 일기입니다. “..내일이면 야만인들에게 목숨을 빼앗길 많은 사람, 그들을 위해 했던 계획이 물거품이 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께서 ‘가서 모든 사람을 가르쳐라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을 읽었다. 이는 가장 강경하고도 성스러운 자의 말씀이었기에 나는 지금 대단한 평온함을 느끼며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타임잡지에 소개된 실화입니다. 한 경찰이 단골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 가깝게 지낸 직원과 함께 복권번호를 적었습니다. “만약 이 복권이 당첨되면 당신에게 절반을 주겠어. 확실히 약속하지.” 복권이 당첨되자 약속대로 70억 당첨금의 절반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타임지의 평은 달랐습니다. “그는 우정이 돈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종업원과의 신뢰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신뢰도 지켜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창46:27) 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 이주 430년 동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출12:37)가 되었던 것입니다. 후손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했습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했습니다. (창17:10) 할례는 남자성기의 일부를 잘라내는 고통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은 며칠 동안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창34:에서 할례를 받은 세겜 사람들은 야곱의 아들들에 의해 그대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적들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할례를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목숨을 드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한 이스라엘입니다. 잠8:17에“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91:14)하셨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고려인 교포들이 넓은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러시아 동쪽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많은 고려인 동포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쫓겨 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포들이 놓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보리, 밀, 쌀, 콩 들의 씨앗입니다. 굶어 죽어도 씨앗은 지켰습니다. 씨앗은 심으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황무지를 개간하고 심은 씨가 많은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심으면 거둔다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지켜졌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32500여 개의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신28:대로‘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지켜 순종하여 살면,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하십니까? 약속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내 감정에 따라, 내 환경에 따라, 혹은 내 생각에 따라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키기도 하면서 믿는 것은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인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오 신실 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나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복음송 오 신실하신 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약속을 지키십니다.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할례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8-9)
8-9절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할례가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할례를 받는 자에게 주시는 존재의 변화 때문입니다. 애굽의 수치가 떠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애굽의 수치라는 것은 애굽의 노예라는 말입니다.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에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 백성이 천국 백성이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변화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자가 가지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우리도 더 이상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할례를 받은 장소를 이름 하여 길갈이라고 했는데..그 뜻은 ‘굴러 간다’입니다. 애굽의 노예라는 수치는 사라지고 영광스런 이름으로 바뀌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은 존재로의 변화입니다.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 것은 부인 힐러리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조크 같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고향을 찾아갔을 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데 주유소 주인이 아내 힐러리의 옛 친구였답니다. 클린턴이 아내 힐러리를 보고 하는 말이 “당신이 저 친구와 결혼했더라면 당신은 주유소 주인의 부인이 되었을 텐데”했답니다. 그랬더니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가 하는 말이 “아니! 내가 저 친구하고 결혼을 했더라면 저 친구는 주유소 주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됐을 거야?” 누구 말이 맞습니까? 중요한 것은 누구와 결혼했느냐? 에 따라 상대방인 내 인생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탈무드에 보면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 “딸아 네가 남편을 왕으로 받들면 왕비가 될 것이다. 반대로 종으로 부리면 너도 하녀가 될 것이다”했습니다. 할례를 통해 하나님과 결혼한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결혼한 신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사54:5)했고 바울 사도는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준비하는 처녀가 되라(마25:)고 하셨고 계시록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하신다(계19:7)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할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할례가 구원이라는 것은 가나안의 주인이 되는 믿음의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창17:7,8)하셨습니다. 기생 라합도 정탐꾼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수2:9)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수5:1에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주시기 위하여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주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40년 전 부모들은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가나안의 주인이 될 만한 믿음은 없어서 원망 불평했고 광야에서 인생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다시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애굽의 수치를 굴려버리고 가나안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로 애굽의 수치에서 가나안의 영광을 받게 하는 믿음의 헌신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할례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사랑과 구원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속에 살아 좋은 기억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제자 전도사님이 목회하는 교회에 설교를 하게 되었답니다. 설교 제목이 뭐냐고 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설교 제목이 부족한 것 같아서 되물었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다음은요?”목사님은 “그거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대답했답니다. 그런데 설교하러 갔더니 주보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됐지 뭐가 필요해!”라고 제목이 되어 있었다는데..그 날 참석한 신자들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그거면 됐지 뭐가 필요해”라는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았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복을 받고 새롭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 그거면 됐지 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과 나 자신 앞에서 좋은 하나님의 기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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