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1-7“터가 무너질 때”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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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3-06 18:03 조회2,54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10307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터가 무너질 때
본문 : 시편11:1-7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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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210307 사순절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터가 무너지면”
(시편11:1-7)
오늘은 시편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려고 합니다. 시편에는 기도 시, 찬양 시..로 150편의 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다윗을 비롯한 많은 저자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시가 가운데 시편11:은 선택한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맞춰서..준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시는 소설이나 수필과는 달리..짧은 글로도 그림으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시를 읽을 때..선명하게 당시의 상황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다윗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고난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할 때 쫓겨 다니는 상황이라고도 하고 아들 압살롬이 왕의 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피신가는 상황이라고도 합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지..다윗이 고난의 상황이 닥칠 때 어떻게 신앙인으로 헤쳐 나갔는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어떻게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터가 무너지면..
첫째 고난은 신자도 흔들리게 됩니다.
1-3절,롬8:26,창1:1,벧후1:6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다윗은 고난이 왔을 때...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하지만..누군가가 다윗의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을 흔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현실을 직시 하라’입니다. 고난의 현실에서..세상은 조언을 합니다.
“일단 피하고 보자!” 입니다. 1절 중반 절에..“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새는 위기의 순간에 먼저 자리를 피하기 위해..“푸드득”하고 자기 피신처와 은신처로 날아갑니다. 다윗에게도 하는 말이..네 산, 네 피신처, 은신처가 있지 않느냐? “빨리 새처럼 은신처로 도망가고 보라”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추격해 올 때에 아둘람굴로 피신 갔습니다. 지금 가서 봐도 600명이나 들어 갈 수 있는 큰 동굴로 사울 왕이 쫓아 들어왔을 때에도 찾지 못하여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아둘람 굴은 이런 자연적인 환경뿐 아니라..다윗을 따르는 400의 군사들도 있었습니다. 이 렇게 일단 피하고 보자 하는 것은..우리들의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어느 병원의 의사가 그 병을 잘 고친답니다.” 사업이 어렵다고 하면 누구를 찾아가 보라고 하고..이민이나 가 볼까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새 같이 네 산으로 피하라는 것 아닙니까? 2절에는..악인이..어둡고 알지 못하는 곳에서 활을 쏜다는 두려움을 줍니다. 고난이 계속 될 것이라는 불안감입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로 불안 해 하고 있습니다. 페스트 병이 돌때에..병으로 죽은 사람보다도 불안감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돌고 있는 때에도..불안감이 더 무섭습니다. 예방하지 말고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불안을 부추길 뿐입니다. 3절에..터가 무너지면..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신앙의 무가치함을 주장합니다. 다 망하고 없어졌는데..하나님을 믿는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아주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합니다. 다윗의 경우, 사울 왕에게 목숨을 잃고 압살롬에게 왕의 자리를 뺏기면..하나님을 믿는 의인이라고 한들..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목숨부지하고 왕의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네 산과 은신처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처방 속에는 하나님은 없습니다. 극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조언하는 것이 세상이고 육신이고 마귀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에 왔을 때..새처럼 네 산으로 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자는 하나님께 피하다가도..현실적인 판단에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롬8:26에 “2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셨습니다. 성경의 첫 장, 창1: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으로 가득 찼던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둠과 혼란의 세상이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봄이 되니까..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의 황량한 모습은 간곳이 없고 아름다고 향기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죄인도 하나님을 만나면..하나님께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지옥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이 올 때에 피하는 하나님은 이렇게 창조주 하나님께서 오늘의 고난을 영광으로 만들어 주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터가 무너지면..
둘째,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바라보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4-7절,마6:33,벧전5:7,수1:9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다윗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성전에 갇혀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무너지는 땅의 터 대신에 하늘보좌입니다.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하늘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을 위해 죽으시자..하나님은 다시 살리셔서 하늘 보좌에 앉아 그리스도인 된 자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사도는 롬8:34에서..“34..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하시면서..우리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과 같은 터가 무너지는 고난을 겪어도 하늘 보좌에서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37..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다윗 역시 하늘 보좌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늘 보좌의 하나님은 사랑의 눈으로 인생들을 감찰하십니다.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통촉’은 눈 여겨 보는 것이고 ‘감찰’이라는 말은 살피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시26:2에서도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단련하소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기도하기를..“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니라/”(애3;50) 인생들을 눈 여겨 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은 살피시고 보호하시지만..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는 미워하시기 때문에..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붙잡듯이 붙잡으셔서..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악인들과 폭력을 행하는 자들의 소득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에스더를 보세요. 하만이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만들어 놓은 사형 틀에 하만이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던 다니엘도..적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만들어 놓은 사자 굴에 자신들이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사위다윗을 죽이려는 사울도 아버지 다윗을 왕의 자리에서 쫓아낸 압살롬도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늘보좌에 앉아 인생들을 통촉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의인은 보살피시지만 악인들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7절에 다윗이 믿는 하나님은..“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했습니다. 터가 무너져 의인이 조롱을 받을까.. 걱정이 됩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터가 무너지는 상황에도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붙잡았기에..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에 스데반이 죽임을 당할 때..예루살렘 교회가 흩어 졌습니다. 적들은 예수의 교회는 다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핍박자가 된 사울은 다메섹까지 가서 예수쟁이들을 잡아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늘보좌에 앉으신 부활의 예수님은 사울에게 나타나셨고 핍박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바꾸어 주셔서 오히려 복음을 더 확장시키셨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빌립집사는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에디오피아 내시도 예수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예수님이 보내신 베드로를 만나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감옥에 갇혔습니다. 유대의 적들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때..죄수들은 들었고 감옥 문이 열려 간수와 그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로마에 죄수로 잡혀 갈 때에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은 더 확장이 되었습니다.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릴 때 무너진 터가 더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6:33에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은 더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한 것처럼 모든 것을 맡길 때..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성전에 계십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의 적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믿고 여리고성을 돌고 소리를 지르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장독을 깨고 횃불을 높이 들어 소리지를 때에 미디안의 군대는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탈렌트 오윤아집사는 자폐아들을 공개하기까지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공개하고 난 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섬기려는 것을 감사할 수 있었답니다. 이젠 장애부모들의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위로가 주는 은혜입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팔 다리 없이 몸뚱어리만 가지고 태어난 닉 부이지치도 8살 이후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나같이 팔도 다리도 없이 몸뚱이로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는 없어’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이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신실한 부모님이 전하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창조주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1:10)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생명의 면류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닉 입니다. 한번은 LA 강연에서..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아이 엄마가 자기하고 똑같이 팔 다리가 없이 몸뚱어리만 가진 아이를 앉고 있었습니다. 막 울더랍니다. 아기에게 팔다리를 갖게 하려고 수많은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께 없는 것이 생기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만 기도했다는 것을 회개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오늘 저에게 비로소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껏 아기의 팔다리가 자라 온전한 육체를 가진 정상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닉 부이지치당신을 보면서 팔다리 없이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바로 기적이라는 것도요.” 진짜 기적은 하늘 보좌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는 기적도..죽게 됩니다. 하지만..하나님의 의로운 일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남길 신앙의 유산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의 미래를 위한 전부가 아니라..하나님이 나의 미래라는 사실을 믿으시는 지요! 베드로 사도는 “1..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벧전5:1) 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니까..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17 자녀이면..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기독교신문에 보니까..예배당이 불이 탄 교회가 새 교회를 지었는데..불 타기 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예배당입니다. 전세 들어 있던 3억을 사기 당한 교회는..땅을 사서 자기건물의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다 잃어버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교인이 있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왜 우리는 못합니까? 하늘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믿는 신자들이..새 예배당을 지을 수 있었다는 그 믿음을 가지시면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히11:1,3에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3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지금도 믿음으로 바라는 자들에게 증거를 주십니다. 의인은 절대로 고난이 온다고 잃어버린 것에 멈춰있지 않습니다. 욥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절대로 하나님의 손을 놓치 않고 있다는 것..결국 하나님으로 더 큰 복을 받으십니다. 눈을 들어..하늘보좌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의인이고 의롭게 사는 자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19) 시33:16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하셨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다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의인만이 잘 살 수 있습니다. 시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유익하게 만드세요. 롬5:3-5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환난을 즐거워하여 성령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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