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9 주일예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08-09 07:45 조회2,17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느헤미야 애국애족의 신앙
본문 : 느헤미야 1:1-10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설교문
200809 한남제일교회 오창우 목사
“느헤미야, 애국애족의 신앙”(느헤미야 1:1-11)
애국자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일화입니다. “나는 밥을 먹어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잤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일본의 실력을 모르는가?”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무력만한 도덕력을 겸하여 갖기를 원한다.” “그건 무슨 뜻인가?”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인 우리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2천만에게 원한을 품게 하는 것보다 우정을 가진 2천만을 이웃으로 두는 것이 일본에게 득이 될 것이다. 내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독립운동이라는 도산선생의 말씀에 힘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는 일본인 검사도 감동을 받았답니다. 도산선생은 진정한 애국애족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의 애국애족의 신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신앙, 좋은 사람, 좋은 이웃으로서의..느혜미야의 애국애족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첫째, 1-4절, ‘긍휼’이 있습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복 받을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느헤미야가 긍휼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1절에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이 제국을 통치하던 때에 느헤미야는 술 관원이라는 높은 사람이 되었지만 한 시도 고국과 백성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2절에 형제 하나니에게 “포로귀환 100년, 백성들의 형편을 묻습니다. 포로귀환 ㅂ00년이 지났으니..나라가 다시 세워지고 백성들은 잘 지내고 있겠지..?” 3절에..고국의 동포들이 극심한 환난 가운데에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다 무너지고 성문은 불에 타서 없어져 버렸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B.C. 722년 앗수르로 흩어짐, B.C. 586년 바벨론포로가 되었습니다. B.C. 539년 바사의 고레스로 5만 명 포로귀환.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입니다. 1차 귀환은 스룹바벨에 의해 49,897명, 2차 귀환은 에스라에 의해 1,754명이 귀환합니다. 그런데..1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4,000명이 무너진 성에 살면서 이방 민족들이 수시로 쳐들어와서 빼앗기는 고통 중에 살고 있습니다. 성은 적들로 지켜 주는데..무너져 있기에 받는 고통입니다. 4절에는 그렇게 살고 있는 내 동포들을 생각하니..듣고 울면서 며칠 동안 아파했고 금식기도 하면서 무너진 성을 수축하는 것을 위해 금식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긍휼한 마음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조국과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이야말로 좋은 사람이고 이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62:12에 “주여 인자함은(긍휼함은) 주께 속하오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엡2:4-5)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긍휼)입니다...”(갈5:22-23)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요일4:17-18) 예수님은 긍휼하십니다. 마15:32에“예수께서..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긍휼의 예수님은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배고픈 사천 명을 먹여주셨습니다.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긍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성령 받은 예루살렘 초대교회도 긍휼의 교회가 됩니다. 행2:44-47에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32-37)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긍휼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자랑할 수 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복의 근원이 되어 축복받는 인생이 되게 하는 긍휼한 마음입니다. 4절에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 나는 부족함이 없어도..한 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라도..이유를 찾지 말고..같이 아파하는 긍휼이 애국애족입니다.
둘째, 4-11절,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는 마지막 때일수록 해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느헤미야의 기도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슬르월(11-12월)에 시작하여(1절) 니산월(3-4월)에 응답받았습니다.(느2:1) 자그마치 4개월 동안 기도했습니다. 기도응답을 꼭 받은 분의 말입니다. “당신의 기도는 어떻게 해서 꼭 응답을 받는가? “예 저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본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1) 4-5, “하나님께 집중하라” 입니다.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4-5절은 느혜미야의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느혜미야는 필요한 성벽을 구축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5절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주를”..“주의”..“주여 간구하나이다”합니다. 예수님도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하실 수 있거든 이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 주십시오.” “하실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21:21) 호세아 선지자도 새벽 빛 같이 임하시는 하나님을 힘써 알라..집중하라고 했습니다.(호6:3) 기도할 때..먼저 하늘의 하나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 집중하고 알기를 힘쓰십시오. 예수님께서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사랑의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어리석은 기도자는 자기의 문제와 형편에 집중하여 불평하지만..하나님께 집중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히7:25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기도자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2) 6-7, “죄를 자백하라”입니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6-7절은 죄의 자백입니다. 사55:6-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다음으로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죄의 자백’입니다. 예수님은 요16:9에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를 지은 것도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육을 쫓는 연약한 육체..를 의지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느헤미야의 죄의 고백도 “주를 향하여 악을 행하여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이 첫 번째..다음이 죄의 자백..믿지 않는 죄에 대한 고백입니다.
3) 8-9,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입니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8-9절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입니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예수님께서도..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9) 하나님께서 절대로 하실 수 없는 3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미 용서하신 죄로 인해 당신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롬 8:1) 3)하나님께서는 절대 당신을 잊어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십니다. 히13:5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님께 집중, 죄의 자백,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는 기도입니다.
4) 10-11, “헌신을 위해 기도하라”입니다.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10-11절은 헌신을 위해 하는 기도입니다. 출32:29 “모세가 이르되..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11절에 “오늘 종이..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2:5에는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은혜를 입게 해달라는 말은..자신을 성을 짓는 일군으로 헌신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11절 마지막에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왕에게 술 따르는 것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 달라..내가 헌신할 수 있게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헌신의 히브리어 ‘마레’는 ‘만족시킨다’ ‘흘러넘친다’ 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 헌신으로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다는 것이 ‘마레’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지금 나라가 코로나19가 헌신의 기회, 축복의 기회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4단계..하나님께 집중하라, 나의 죄를 자백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그리고 헌신하면 응답을 받는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긍휼과 기도를 몸으로 친히 실천했습니다. 제국의 비서실장 자리를 내려놓고 작은 나라 유대의 총독이 되기를 위해 친히 낮아진 것입니다. 반대하는 무리들도 있어도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술 따르는 것밖에 없다”(11)처럼..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100년 동안 못했던 무너진 성을 52일 만에 수축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영광을 버리시고 친히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친히 낮아지는 것이야 말로..진정한 긍휼이고 기도입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인교회에 흑인 예배자가 자리를 앉지 못하고 결국은 강단 앞에 앉았습니다. 아무도 흑인에게 선뜻 자리를 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백인 노신사가 흑인 옆에 찾아가 예배당 바닥에 함께 앉았습니다. 순간 예배당 안이 술렁이더니..많은 교인들이 의자에서 내려와 옆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예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 노숙자가 구걸을 하는데..가끔 동전을 던져주는 것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한번은..돈이 없는 한 여인이 노숙자의 앞에 다가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 드리면 어떨까요?” 노숙자는 그 날, 자기를 사람으로 취급해 주는 것으로 최고의 행복을 느꼈답니다. 지금 이런 마음으로 조국과 백성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돈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하고..권력도 필요하고..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지만..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도산선생은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했습니다. 바라기는..한국기독교가..우리 교회가..좋은 이웃되어 기독교윤리 실천운동본부의 발표에 한국사회에서의 종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월등히 높게 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철학교수 샘 킴은 ‘공중그네를 타는 철학자’라는 책에서 나이 62세에 공중그네 타는 것에 도전하여 공중을 날았습니다. 그런데..높이 나는 사람은..떨어지는 것을 먼저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전보다 잘살고 잘 먹는 우리가 왜 불안합니까? 높이 올라가는 훈련에만 익숙해서 1등만 살아남지..떨어지면 죽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교회가 불안한 이유도 같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만 배워서 그래요..돈이 없으니까..교인수가 줄어드니까..교회가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돈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자들의 교회도 성령의 교회였지..돈과 사람의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공동체가 높임 받는 이유는..섬김이셨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섬김을 그 자체를 배우고.. 떨어지는 법을 배워야 높아질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