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8:1-15 "탐욕스러웠던 우리가 관대해지다"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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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8-25 11:11 조회2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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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웠던 우리가 관대해지다” (고린도후서8:1-15, 9:6-15)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영적 축복의 원리를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 그대로 회복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깨어지고 상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회복되고 치유된다.
세상에서는 사람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하고 낭비하는 것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고 무의미한 노력에 지치게 된다.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① 구멍을 막고 물을 채운다.
② 물이 빠지는 것보다 빨리 계속 채운다.
③ 항아리를 더 큰 통이나 호수에 담근다.
물이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빨리 채우면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쓸데없는 과한 노력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다 깨진 항아리이다. 하나님은 가장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깨어지고 상하여 그 처음 모습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을 이 모습에서 출발해야 한다. 믿는 자는 내가 할 수 없는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로 회복되어 가야 한다. 내 노력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과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되어 가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듣던 삭개오는 인생의 변화를 마주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던 그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는 모든 과거의 노력과 가진 것을 내려놓고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었다.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의 생각도, 상한 마음도 바뀐다. 명품을 걸치는 삶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명품이 되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첫째. 하나님이 관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관대해야 합니다 (고후8:1-9)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
요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로 카페를 이용한다. 이는 사람을 만날 때 좋은 것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사랑방을 두어 손님을 맞이했다. 대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요한 곳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심지어 사랑방이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도 중요한 손님이 찾아오면 안방을 내어주어 마음을 열고 남을 대접했다. 남은 또 다른 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나누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요일4: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깨어진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관대한 마음으로 먼저 사랑하셨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관대하시며 그 마음은 넓다. 사람은 100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를 기한이 지났다고 질책하고 압력을 가해 그 돈을 갚도록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자에게도 그저 탕감해주신다. 10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00일치의 월급이고, 일만 달란트는 대구와 같은 광역단체의 일 년 예산과 같다. 하나님은 그 사랑이 너무 크시기에 아무리 깨어진 사람이라도 넓은 마음으로 사랑하신다. 게다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가장 아끼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는 디도를 통한 복음의 은혜를 더욱 흘려보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는 흘려보내며 확장되는 원리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하신 원리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축복은 그 사람이 잘되기를 비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고 도와주면 결국 내가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의 원리이다.
고린도 교회에 전해진 소식은, 고린도나 아테네와 같은 큰 성읍이 아닌 마게도냐지역의 교회가 환난과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했고, 가난했지만 복음과 선교를 위하여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헌금은 이 선교를 위한 연보에서 시작되었다. 한 번에 큰 돈을 마련할 수 없으니 예배드릴 때마다 일정한 금액을 모아 나누는 것이 기독교에서 헌금의 시작이다.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를 보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고 표현한다. 풍성한 것도 많은 것인데, 그것을 넘치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알고 그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의 관대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관대해 지기를 축원한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것을 풍요롭게 나누어야 합니다(고후8:10-15)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미 고린도 교회는 충만한 교회이다. 고린도 지역은 지혜를 추구하는 동네로서 지식인들이 많았고, 양쪽이 해안지역이자 유일한 도로가 지나가는 곳으로 물질이 풍부한 곳이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풍족한 중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만 풍족하거나, 어느 한 사람만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축복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었고, 신실한 목회자인 디도를 보내어 교회가 문제 없이 바로 서도록 지도하였다. 은혜는 흘려보내야 한다. 내가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 많이 흘려보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원리이고 확장시키시는 원리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처음에 사도들과 많은 제자들이 모여서 성장했던 교회이다. 그런데 스데반의 사건 이후 박해가 심해지자 흩어지게 되었다. 더 이상 모이지 못하게 되자 예루살렘에 남은 믿는 자들은 떠나지 못하는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었다.
바울은 이 예루살렘교회를 간과할 수 없었다. 복음의 시작지이자 상징적인 예루살렘 교회이지 않는가. 더욱이 그곳에서 복음의 박해로 인해 고통받는 자는 약한 자들이 아닌가.
결국 하나님의 물질의 원리는 쌓아두어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나누어 돌고 돌아 나를 필요할 때 나를 돕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셨다. 그것을 부족하다 말 할 수 없다. 이미 우리에게 풍족하게 주셨다. 믿으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은혜가 풍족하게 있다. 그런데 만약 주위에 실족하거나 넘어져 있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그들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컵이 옆으로 넘어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담아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일으켜 주는 것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것을 나누는 개념이 아닌 흘려 보내주는 것. 우리에게 가득 차고 넘처 흘러가는 그 은혜를 전해주는 것이다.
가나안 여자가 딸이 귀신에 들려 아파하고 있을 때 예수께 찾아와 저를 도와 달라 말한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옳지 않다는 예수의 말씀에 여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15:27)”
하나님이 믿는 자들이 잘 되게 하는 이유는 믿었기에 그 사람만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하기 위함이다. 흘러 넘쳐 또 약한 자들이 일어서도록 하심이다. 서로 돕는 그 상태가 성경에서 말하는 균등이다.
하나님은 이미 풍요롭게 주셨다.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서로가 나누어 풍요롭게 하셨다. 하나님의 원리를 깨닫는 자들은 늘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서로 돕는 사람들을 붙여 주시고, 어려울 때 그 환난을 이기게 하시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공동체 되기를 축원한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나누어야 합니다(고후9:6-15)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드셨다고 한다. '돕는 배필'은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하며, 서로 돕는 짝을 의미한다. 한쪽만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를 돕는 자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하나님은 공동체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지며 흘러가게 하신다.
도와줄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도와주는 사람은 생색내지 말아야 한다. 둘째, 도와주는 사람의 마음은 책임감으로 해야 한다. 셋째, 받는 자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넷째, 도움받는 자도 하나님의 은혜로 돕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저의 아버지가 신학교를 다닐 때 어려운 상황에서 한강에 나가 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와서 먹을 것을 나눠주었는데, 그는 구걸하는 거지였다. 그 거지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자신도 집이 세 채나 있고 아들도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받은 나눔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세상은 우리의 상식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상황도 다양하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고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Give and Take, 즉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이 이치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삶에서는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가 기준이다. 이미 그 크신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져 있다. 우리는 먼저 된 자로서 교회 가운데 서 있다. 이 도움은 나의 것을 줄여 손해 보는 것이 아니며, 억지로 나누는 것도 아니다. 이 나눔과 봉사는 오히려 나를 세우는 일이며, 기쁨이 충만해지는 길이다.
교회의 헌금, 즉 연보는 연약한 교회를 돕고 선교하기 위한 것이 그 시작이다. 헌금의 목적은 감사함으로 함께 나누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받았다면 그 도움을 흘려보내야 한다.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종종 주민센터를 방문해 지역의 필요를 나눈다. 매달 교회가 지역을 위해 구제한다. 여기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교회가 주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늘 돕는 자로서 지역의 필요를 돕는 것이다. 첫째, 도울 자를 교회가 정하지 않는다. 둘째, 추천이 들어오면 다른 이유를 묻지 않고 돕는다. 셋째, 급하게 하지 않는다. 국가에서는 이미 철저한 절차에 의해 많은 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상황은 꼭딱 떨어지지 않는다. 교회의 도움은 그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해 하는지 모른다. 함께 돕는 주민센터 직원은 물론, 이 후원을 받는 가정들에게서도 끊임 없는 감사함을 받는다.
교회는 이 지역사회의 봉사자이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감으로 무겁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흘려보내는 일이다. 우리 교회에 신학생 장학회가 조성되어 장신대 신대원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매우 은혜로운 일이다.
우리가 많이 가져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움을 주었던 그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당연히 도와야 한다. 모른 척하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어도 도와야 한다. 그 이유는 나는 이미 도움을 받은 사람이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도움을 주님께 받은 자이기에 도와야 한다. 혹시 도움을 받게 되면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내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지 말고, 이제 나도 돕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교회는 서로 돕는 자로 목회자를 세우고, 직분자를 세웠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선교지와 늘 도우며 목회하도록 하셨다. 이 도움의 원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하게 여기며, 우리 가정과 우리의 인생에 주님의 축복을 가득 채워 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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