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11:1-2 "믿음 없던 우리가 믿음으로 충만하게 되다"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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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8-31 17:29 조회2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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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총회주일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5 - 12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240901 가스펠프로젝트5-12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믿음없던 우리가 믿음으로 충만하게 되다”(히브리서11:1-12:2)
개신교회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믿음은 지금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힘이며, 구원받고 천국 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너무 중요하다 보니 오히려 언급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종 믿음이 흔들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는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며,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가?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 목사는 젊은 시절 깊은 영적인 고뇌가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끊임없이 고백했다. 그런데 아무리 회개해도 하나님이 완전히 용서해 주실지 확신이 안 되는 것이다. 고뇌에 찬 진지한 회개에 더욱 열심히 살려고 행동을 정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고뇌 속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는 말씀이 자신 안에 큰 깨달음이 되었다.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인해 고민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할 수 있다.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구원의 인도하심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는 참 믿음으로 이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삶을 살며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될 줄 믿는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믿음이 필요하다. 온전한 믿음의 주이시며 온전한 믿음의 존재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의 방향을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러분, 혹시 우리 중에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이 있는가?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실 때, 갑자기 풍랑이 일고 큰 파도가 쳤다. 그때 제자들은 두려워 놀랐다. 그때 예수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반대로 아이가 귀신에 들려 불과 물에 들어가고 경련을 일으켜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 나아와 자신의 입으로 믿음이 없는 것을 고백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고백하며 예수께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고백하니 예수는 그를 돕는다.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며 다시는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
성경적 믿음은 자신의 마음의 결단이나 생각하는 바가 아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고 말씀하신다. 그 이름을 믿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자, 영접하는 자를 의미한다.
저 또한 다르지 않다. 믿음이 부족한 나 자신을 보며 좌절하고, 스스로를 수없이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 말씀을 마음에 받는 것이며, 오히려 나의 믿음을 드러내기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저희 교단은 독일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학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M.Div) 과정을 졸업한 자들에게 목사 안수를 준다. 대학교 학부에서는 폭넓게 기독 인재를 양성하고, 신대원에서는 교회의 리더를 길러내는 목표를 가진다. 학부는 다른 곳에서 타 전공을 할 수도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학부부터 신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첫 번째로 성경을 배울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누가 기록했을까요?” 하나님이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창세기는 누가 기록했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같이 고민해 봅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믿음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지, 성경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이것이 사람들이 짜맞춘 말이면 어떡하지? 왜 사람들은 제멋대로 살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지’에 대해 점점 더 의심이 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신학교에 이런 농담이 있다. 신학교 1학년 때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로 특송한다. 2학년 때는 ‘아골 골짝 빈들에는 저는 안 가도 되겠지요.’ 3학년 때는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혼자 가십시오.’ 4학년 때는 없다고 한다. 4절은 없다. 사라지지 않으면 다행이라 한다. 아무리 신학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한다고 해도 믿음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된다. 나 또한 신학교를 입학하고 교회의 부름에 응답하고자 신대원에 가기까지 10년 동안 교회 안에서 방황하게 하시며 믿음을 확증하게 하시는 시간을 주셨다.
모든 일을 확증하려면 실상과 증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작아도, 마치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믿음은 결국 사람에게 많은 결실을 준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믿음은 단순히 마음의 느낌이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실상이자 증거이다. 이 믿음에는 사람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 믿음에는 죄에서 구원케 하는 하나님의 의가 있다. 이 믿음은 억눌리고 갇힌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우리가 힘써 얻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이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자꾸 넘어지더라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내가 가장 연약한 그때, 마치 자녀의 문제 앞에 어찌할 수 없는 그가 예수 앞에 나아와 고백하듯, 믿음 있음을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믿음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면 예수에 대한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채워 주실 줄 믿는다.
2. 믿음의 본보기를 보십시오 (히브리서 11:3-40)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그러니 우리 육의 몸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두가지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①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②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16명의 믿는 자의 대표 성경 인물이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아벨은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졌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떠났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을 보면, 그 믿음으로 인해 삶이 변화되었다. 그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다. 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그들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성경의 인물들을 보며 참으로 많은 위로를 받는다.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자랑할 만한 것이 없지만, 그들이 믿음을 잘 지켜냈다는 것에 감동을 받는다. 그 문제의 상황을 당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 그 가운데서 믿음의 길을 택한 것, 정말 잘한 것이다.
믿음의 본보기는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자 상황이 다르다. 그러니 삶의 모양도 다 다르다.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캐나다와 연결된 밧줄 하나가 있었다. 1859년에 곡예사 찰스 블론딘은 그 폭포를 건너는 곡예를 보여주었다. 어느 날 외줄을 타기 전, 그는 군중에게 물었다. “여러분, 제가 이 외줄을 무사히 건널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군중은 열렬히 "믿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블론딘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제 등에 업혀서 함께 건너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한 사람, 그의 매니저였던 해리 콜콧은 주저하지 않고 블론딘의 등에 업혔고, 그들은 무사히 외줄을 건넜다. 그의 내면적인 이유는 이익을 더 크게 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그를 믿었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믿는 자들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확증하며, 눈에 보이지 않던 믿음이 수많은 믿는 자들의 실상이자 증거가 된다. 이 믿음은 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증거가 아니라, 믿는 자 모두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배 때 고백하는 고백의 기도는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옵소서”와 “내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는 믿음의 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믿음 때문에 잠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믿음을 지킴으로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될 줄 믿는다
3. 믿음으로 인내하십시오 (히브리서 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지막 단락인 히브리서 12장은 우리에게 믿음의 경주를 인내하며 달려가라고 권면한다. 이 경주는 인생의 경주다. 이미 우리의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말씀을 믿고, 구원하신 예수를 믿는 자는 되돌아갈 수 없다. 이미 시작된 이 경주에서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주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빨리 가는 경주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하는 경주이다.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고, 기쁨으로 끝나는 준비되어 있는 경주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자.
'개의치 않다'는 ‘마음에 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믿음을 주관하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최종을 보여주신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이 끝나는 그때에도 사람들의 시선과 비방은 들리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죄 많은 한 사람이 고백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라고 말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구약 성경에 보면 '믿음'이라는 명사는 사용되지 않는다. 믿음은 물질이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장 소중한 자식인 이삭을 드린 것이다. 믿음은 그 말씀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행동으로 예배 드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삶에서 예수와 꼭 붙어 있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와 꼭 붙게 하는 접착제와 같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와 함께 행동하게 하고, 걱정과 근심 없이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한다.
내가 신대원 입시를 준비할 때, 정말 성경 말씀으로 과식할 때가 있었다. 하루에 10시간씩 성경을 보며 암기했다. 성경을 매 10장씩 끊어서 바둑판을 그리고 그 내용을 암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집 앞에서 서서 번호를 틀리고 틀리고, 하도 안 되어서 열쇠 기사를 불렀다. 30분 정도 지나자, 기사분이 오셔서 말했다. "제가 이거 열어드리면 3만 원입니다." 그때 정신리 차려지면서, 한번만 더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그대로 문이 열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머리로는, 내 머리로는 말씀을 지식으로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마치 돌판에 글을 새기는 것 같았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어렵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은 다르다. 내게 주신 말씀들을 믿고 그 믿음을 마음에 담는 것은 더욱 확실해 진다. 믿음이 삶으로 나타난다. 하나씩 감당해내며 그 믿음의 경주를 달려나간다면, 누군가에게는 예수께서 주신 이 믿음이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24)”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많은 노력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한 알에 불과하다. 그 한 알, 별것 아닌 것 같은 믿음의 한 알이지만,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 안에서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이 믿음은 많은 열매를 맺어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고, 기쁨이 될 줄 믿는다.
여전히 우리는 부족하고,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에 잘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교회와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개개인의 믿음과 가정과 교회와 총회에 믿음으로 충만하게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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