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7:11-51 "구원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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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3-23 16:51 조회1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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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4 종려주일예배 안내
<고난주간>
* 오늘 예배는 가스펠프로젝트 신약3-5를 배웁니다.
* 예배시간 | 1부 10:00, 2부 11:30 | 유튜브 온라인예배
* 예배장소 |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아가페홀 안내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내가 변하는 신앙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믿는 자의 힘 예수그리스도
240324 가스펠프로젝트신약3-5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구원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마태복음27:11-51)
지난 주간에 여러분의 기도로 은혜 중에 선교사를 잘 만나고 왔다. 한 낮의 기온이 39도가 되니까 앉아만 있어도 찜질방이다. 한국에서는 물을 먹으면 자주 화장실을 가야만 했는데 물을 많이 먹었는데도 땀으로 배출이 되서 그런지 화장실 갈일이 없었다. 선교지의 사역은 크게 4가지인데 1) 유치원사역이다. 제일유치원은 시내 변두리에 25명, 제이 유치원은 2시간 정도 가는 지방도시에 70명이다. 2) 공부방사역이다. 제일공부방은 제일 유치원 맞은편에, 제이 공부방은 선교사님 집에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3) 가정교회 사역이다. 1962년 이후로 교회허가가 나지 않아 가정교회로 모인다. 주일에 예배처소에서 20여명이 예배를 드렸다. 어린아이들도 함께 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찬송, 기도, 헌금 설교를 얼마나 열심히 경청하는 지 설교하는 제가 더 은혜를 받았다. 민주주의 나라가 되면 이런 가정교회들이 불일 듯 이 교회건립의 동력이 될 희망이 있다고 했다. 4) 현지 교회 협력 사역이다. 선교장로교회 교단을 설립되어 43개의 교회들이 도움을 나누고 있었다. 생활비 일부만 보내 드리고 부족한 금액이나 사역은 협력교회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생활이나 사역도 왕성하게 잘하고 계셨다. 현지인으로 한국에서 공부하고 돌아간 선교사님의 양딸도 유치원 책임을 맡아 선교사님의 사역을 인수받을 준비를 잘 하고 있었다. 올해로 27년이 되는데 20년 전에 유치원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자라서 종교개종을 하고 세례를 받고 교사가 되었다. 비전은 예수를 믿은 교사들에게 여러 지역에 유치원을 세워 책임을 맡겨 선교하게 하는 것이란다. 지금 사회주의 국가이고 불교가 생활화된 나라에서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무엇보다 선교사님을 위로하고 감사도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거의 매일 한국음식만 먹었다. 선교사님과 교사 사역자들을 한남제일교회 성도들의 이름으로 대접을 했다. 여러분이 보내 주시고 구입한 반찬도 54Kg을 전하니 감동에 감동을 받아 오랜 만에 한국반찬으로 식사를 즐겁게 한다고 한다. 감사인사를 해 달라고 해서 여러분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
오늘은 고난 주일이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았다. 그의 아내 역시 꿈에 예수를 보았다고 하면서 놓아주기를 원했지만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무리들은 십자가로 죽여 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는 “네 말이 옳도다!”하셨다. 빌라도는 무리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의 판결을 내렸다. 자신은 무관하다고 손을 씻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알고 지은 죄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유대인의 왕이여!”조롱하고 십자가를 지고 못 박으려고 끌고 가게 하셨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대신 하여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졌다. 구레네 시몬은 이 일로 예수를 믿고 믿음의 큰 가문이 되었다. “알렌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막15:21)“시몬의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롬16:13)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 못 박히셨다. 고통을 잊게 하는 쓸게 탄 포도주도 거절하시고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받으셨다. 로마군병들은 예언말씀대로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유대어, 아람어, 헬라어 등으로 쓰여 짐으로 온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보여 주는 일이 되었다. 양 옆에는 다른 죄수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한명은 조롱했지만 다른 한명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기를 원했기에 예수님은 허락하셨다. 믿음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오후12시부터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가득해졌다. 하나님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다. 3시쯤 되어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질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하셨다. 성전의 휘장이 위에부터 아래로 갈라졌다. 대제사장만 들어 갈 수 있었던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가 환히 열린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누구나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히4:1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기도의 힘이다. 지난주일, 고 목사님과 같이 나눈 말씀은 감람산에서의 기도가 아닌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신다. 그리고 메시야의 사명으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하셨다. 이처럼 십자가는 힘이 없어서 억지로 지신 것이 아니라 친히 스스로 지신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목적은 3가지도 우리로 기도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힘으로만 세상을 이기고 주안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 대속제물이 되심으로 기도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 제물로 죄를 용서해 주셨다. 히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하셨다. 2) 왕으로 죽으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길을 만드셨다. 왕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이다. 히브리서2:14-15에 “14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죽음으로 마귀를 승리하시기 위해서 이다. 우리에게 죽음에 종노릇하지 않고 영생의 자유를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팻말이 붙여 있다. “네가 왕이냐?”빌라도의 질문에도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시고 자유 케 하신 왕이시다. 3) 하나님의 아들로 죽으심도 기도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적들을 무너뜨리실 능력이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십자가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것이다. 로마의 백부장과 군병들은 이런 광경을 두려워하면서“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백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심은 사명으로 죽으신 것이다. 우리로 기도의 힘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히4:16) 하시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배하라는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찬송하며 나아가서 하늘로 부터 은혜를 받으라는 것이다. 찬양과 기도는 바울과 실라 의 감옥 문이 열게 하고 발을 묶고 있던 착고가 풀어지는 축복을 받게 했다. 기도의 힘으로만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긴 사람들을 소개하셨다. 엘리야 시대에 3년 가뭄 때에 축복을 받은 사렙다 과부이다. 주의 종 엘리야를 대접할 때, 밀가루 통이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았다. 엘리사 시대에는 나병환자 이방사람 나아만이 주의 종을 찾고 말씀에 순종하여 병 고침을 받는 축복을 받았다. 내일부터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이다.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 기도응답에 목적이 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비전과 사명의 응답을 받았다. 이후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비전으로 살았다. 바울 도 주님이 주신 비전으로 살아서 로마까지 가서 전도했다. 돈으로도 아니고 권력으로도 아니고 지식으로도 아니다. 하나님은 비전으로 사는 자에게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신다. 세상 사람처럼 기도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기준이 언제나 나에게 있다. 내가 복 받는 것에 목표가 있다. 세상고통과 슬픔을 위로 받는 것에 목표가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고통과 슬픔을 위로해 달라고 했는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기준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기도응답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시고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니까 하나님이 부활과 하늘 보좌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확인하고 사명성취를 기도하면 내 소원도 들어주시는 것이다. 어느 학생이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나도 예수님처럼 5천명을 먹이는 CEO가 되게 해 주세요!’ 했단다. 좋은 기도이다. 당연히 사업이 잘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도 필요할 것이다. 평안도 필요할 것이다. 사명을 위해 기도하면 다 주시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에 기도회의 목적이 있다. 이번에 선교지에서 선교사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것은 구원의 교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삶! 어떻게 사느냐? 의 문제라고 한다. 선교지의 기독교선교는 215년, 아도니람 저드슨선교사에서부터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기독교인이 산지 족으로 가난하고 힘없고 더 큰 문제는 부도덕한 생활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능력이 없으니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몸을 팔아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 종족은 불교를 믿는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의 생활도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부도덕하지는 않고 오히려 기부하는 것으로는 세계1위이다. 길에 다니는 차를 보면, 종교인들의 번호판이 따로 있다. 창문 뒤에는 기부한 분의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다. 국민들의 최고의 소원이 혼자서 절을 지어 바치는 것이라고 한다. 선교사님이 비행기에서 그 나라 분을 만났는데 선교사님이 외국인으로 좋은 일을 하신다고 직접 찾아왔다. 코로나 때에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산소호흡을 할 수 있는 산소통 유치원에 기증했다. 나중에는 3시간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도 찾아와서 산소통을 기증하고 갔다고 한다. 그 나라사람들로는 엄청 큰 액수인 1000만원을 기부한 것이다. 불교의 철학으로 단단히 세워진 삶을 실천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에 전도가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기독교는 위기도 이와 비슷하다. 세계에서 큰 교회들이 있어도 ‘개독교’라고 불리면서 교회와 기독교인을 신뢰하지 않는 위기는 바로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가? 하는 ‘삶을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라 고 하셨다. 큰 예배당을 짓는 것으로 다 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회개해야 한다. 선교지의 나라사람들은 가난해도 우리보다 더 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불상과 절을 지을 뿐 아니라 불자의 삶을 사는 자부심이 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자부심이 있는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서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지하철에 타보라! 교회 다니는 분들이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보여 주는가? 오히려 자기 교회목사를 비난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저만 듣고 있겠는가? 교회는 그렇게 비난하고 비판하는 곳인가? 선교지의 백성들은 불교의 스님들에게 길에서도 신발을 벗고 절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승려들은 온전한가? 선교지의 불자들에게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자기십자가를 지는 것일 뿐 승려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교회와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목사에게만 지라고 하지 말고 장로님에게만 지라고 하지 말고 내가 지는 것이다. 내가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나를 내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제자들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니까 내가 변했다. 성전에 가는 베드로가 변하여 앉은뱅이를 고치고 성전에 모이는 내가 변하여 서로의 필요를 나누어 주는 등 내가 변했다. 사도보고 변하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베드로와 사도들의 허물은 크다. 하지만 비판정죄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할 것은 정죄비판을 멈추고 나 자신을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자기를 부인라고 자기십자가를 질 수 사명을 다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기회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훈련으로 예수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기회이다. 이것은 웅장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다음 세대의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 줄 것은 남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우리 한남제일교회는 ‘선교하는 예수 공동체!’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공동체’이다. 내가 변하여 가난한 자가 없도록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예수 공동체이다. 누구도 아니라 바로 나! 목사도 장로님도 집사님도 권사님도 교회를 잘 아는 일군들일수록 내가 변하는 것이다. 남이 아니다. 남이 나를 천국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닌 남을 비판한다고 천국의 상을 받는다면 내가 매일같이 비난비판에 목숨을 걸겠다. 하지만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이 내게로 돌아온다. 예수님 말씀하셨다.“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한국교회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자기를 비판하고 정죄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을 받아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 졌다. 이번 기도집회도 기도에 힘써 기도 응답을 받고 성령 충만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하는 예수 공동체로 우뚝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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