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7:51-60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죽기까지 증거하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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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5-25 17:37 조회3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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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삼위일체주일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4-4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죽기까지 증거하다"
본문 : 사도행전7:51-60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240526 가스펠프로젝트신약4-4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죽기까지 증거하다(6:8-15)

  

 모델 일을 아는가? 좋은 모델은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옷을 만든 디자이너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사람이다.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마음을 잘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모델이 되려면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 좋은 성품이나 인격도 요구된다. 그래서 모델 출신들 가운데는 영화배우로 성공한 경우도 있고 예능에도 출연하는 것이다. 단순히 옷을 입고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이 모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옷 하나를 소개하는 것도 이렇게 고도의 훈련과 인격이 필요한 것이다. 외국에 대사가 되는 것도 모델일과 똑 같다. 나라를 대표하고 대통령을 대신 하는 것이 대사이다. 최근에 외국에 대사로 나갔던 분이 얼마 못하고 돌아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한국을 알리는 좋은 모델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좋은 모델이셨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좋은 모델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보았으니 좋은 모델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의 좋은 모델인가? 사람들이 나를 보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야 한다. 예수님을 보여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좋은 모델이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잘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를 소개했는가? 3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거짓 고소를 당해도 예수님을 증거 했다. (6:8-15)

15절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했다. 천사의 얼굴 같더라!”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얼굴이다.

얼굴이라는 말을 분석하면 얼은 영혼이고 굴은 통로이다. 얼굴은 영혼의 통로인 셈이다. 그런데 스데반의 얼굴에서 천사가 보였다는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하나님을 대신한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다. 스데반을 보면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성령이 그 영혼을 충만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영혼은 누가 붙잡고 있는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와 성령 충만하여 종교권력자에게 당당한 모습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영혼을 붙잡고 있는가? 아닌가? 의 차이이다. 스데반도 지금 상황이 대단히 어렵다. 유대인 자유민들이 논쟁을 하는 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유대인 공의회에 고소를 했기 때문이다. 막강한 유대권력의 공의회 앞에서의 스데반은 인간적으로 볼 때 얼마나 두려운 상황인가? 그런데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보니까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하다. 성령의 능력이 그 영혼을 충만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에 천사의 얼굴이 되었고 그 얼굴로 예수님을 증거 했다는 것이다.

독일 민담이다. 어느 마을에 괴물의 얼굴을 하고 추한 짓을 하고 살던 사람이 있었다. 예쁜 아가씨를 사랑했고 성자의 가면을 쓰고 결혼까지 했다. 몇 년 동안 진정으로 부인을 사랑하며 성자처럼 살았다. 하지만 부인은 남편이 성자의 가면을 쓰고 속여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배신감에 남편이 쓰고 있는 성자의 가면을 벗겨 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면속의 얼굴은 괴물이 아니라 성자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성자의 얼굴을 하고 성자의 마음을 품고 성자처럼 살았기 때문에 성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 나이 40이 되면 그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인생은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피부는 4년마다 한번 씩 바뀐다고 한다. 여성들이 얼굴이 예쁘게 보이려고 마사지를 하고 열심히 화장을 하면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영혼 깊숙한 곳에까지는 성령하나님의 능력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여러분이 1년 동안만 울고 찌푸리고 한숨 쉬고 다른 사람 미워하며 살아보라. 피부 색깔도 얼굴모양도 그렇게 찌들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대로 1년 동안만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사랑하고 늘 기뻐하며 살아보라. 모든 사람을 가슴을 품고 한번 살아보는 것이다.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는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또 다른 여러분의 얼굴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스데반처럼 성령 충만한 얼굴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두 번째, 구약예언의 성취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7:44-53)

53절에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하셨다. 천사는 하나님이 보낸 사자이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도 하셨다. 여러분은 어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되는 축복을 받았는가?

부주의맹시라는 실험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운동복을 입은 각 3명씩 3:3 농구대회를 하는 영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흰색 운동복을 입은 팀원들이 공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는지를 세어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실험참가자들이 15회라고 한 사람도 틀리지 않고 정답을 말했다. 하지만 실험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에서 고릴라는 보았습니까?”실험 참가자들은 무슨 고릴라가 나왔냐고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영상을 다시 보니 경기 시작 1분도 되지 않아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나타나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번만이 아니라 화면 정중앙까지 와서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도 있었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선수들의 패스의 회수를 세느라고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부주의맹시라는 이름의 실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내가 보고자하는 것만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각이 약한 인간들이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 유대 자유민들을 비롯하여 성전숭배의 신앙을 가진 자들의 눈과 귀에는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성전신앙만 보고들을 수 있었을 뿐이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보지 않았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으로 믿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령의 권능으로 성경을 본 것이다. 제가 가르친 중국 제자의 초청으로 티벳에 간 적이 있다. 티벳 사람들은 불교를 믿었다. 철저하게 공로로 구원을 받는 다는 신앙이다. 거리는 물론 저 높은 산에도 곳곳에 불교의 경전을 쓴 긴 리본을 줄줄 묶어 놓았다. 절간에 가도 불경을 쓴 노란 빛의 통을 돌리기만 해도 된다고 하면서 돌리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주문을 적은 통도 용도가 여러 가지이다. 돈과 재물을 주는 통, 건강과 장수를 주는 통, 자식들 잘되는 통 가지가지 통을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돌리면 복이 임한다고 믿고 있다. 또 이른 새벽부터 향을 피우는데 작은 향불도 있지만 집채만 한 향불 화덕을 만들어 가지고는 단체로 큰 향나무 줄기묶음을 태운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온 도시가 향냄새로 진동한다. 인간의 공로와 정성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신앙은 거의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은 짐승제물의 피비린내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많은 제물을 드려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공로주의 신앙 때문이다. 7:1-53의 설교는 무엇인가? 첫째는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셨다. 430년을 애굽에 살게 하셔서 큰 민족을 만드셨다. 그리고 모세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했고 솔로몬으로 짓게 하셨다. 두 번째,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갈대아 우르 요셉의 애굽 땅, 모세의 광야에도 게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로 땅을 발등상으로 사람이 지은 집에만 계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부주의맹시적 신앙을 가진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한결 같이 공로주의 신앙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핍박하고 죽였다. 모세를 통해서 우리 형제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37)하셨는데도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공로주의 신앙을 갖게 했고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하셨는데도 의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살인을 저질렀다고,,스데반은 성령으로 저들의 삐뚤어진 신앙을 책망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을 증거 한 것이다. 성경을 구원의 책으로 믿어야 살아있는 신앙이다.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보고 들을 수 있어 구원을 이루어 가는 믿음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세 번 째, 순교함으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7:54-60)

55절에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예수님이 하늘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다.’고 증언했다. 성령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은 하늘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땅에만 소망을 둔 악한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성령으로 하늘 하나님을 보는 스데반 집사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나가서 돌로 쳤다. 하지만 스데반은 예수님과 같이 큰 소리로 부르짖어 하나님께 내 영혼을 받아 달라고 기도하고 무릎을 꿇고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후 영광스러운 순교의 길을 갔다. 성도의 죽음에는 성령하나님으로 하늘로 이어지게 한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죽음은 두려움이 없었다. 환난 중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원수에게라도 긍휼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데반의 죽음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었다. 바로 그 자리에는 나중에 사도가 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 사울의 발 앞에 두니라”“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니라”(8:1) , 누가는 이런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하셨다. 바로 사울에게 스데반은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던 청년사울은 사도바울이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용인에 가면 한국선교백주년순교자기념관이 있다. 우리 한남제일교회는 한국교회를 위한 순교자들의 희생을 귀히 여겨 순교자기념선교회에 거의 30년 간 선교비로 섬기고 있다. 기념관 3층을 올라가면 그곳에 한국에서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순교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알려진 것만 2600여분이 된다. 그런데 순교자 사진 마지막에는 사진박스는 있는데 사진은 없다. 대신 거울이 있다. 거울을 바라보는 순간 그곳에는 내가 들어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있다. “이젠 당신이 순교할 차례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이다.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힘쓰라.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많은 열매로 축복하신다. 순교자의 교회는 기필코 부흥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의 순교에는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스데반집사는 성령 충만의 얼굴로 성령 충만의 예언으로 성령 충만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다. 우리가 가야할 성령으로 예수 증인의 길이다. 한 주간도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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