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4:22-33 "물 위를 걸으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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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1-20 17:34 조회2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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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으시다!”(마14:22-33)
오늘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물 위를 걸으셨다! 제자들이 탄 배가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맞는 고난 중에 예수님이 걸어오셔서 구해 주신 사건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계획과는 전혀 다르다. 예수님께서 혼자 산으로 기도할 계획을 가지셨다.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무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시고 기도하셨다. 그 시간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었다. 아주 큰 풍랑이다. 어부 출신들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제자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바로 예수님이 걸어서 나타나신 것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유령이다!’밤 사경이다. 우리 시간으로 새벽3-6시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역시 베드로다. “주여, 만일 원하시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했다. 베드로의 장점은 예수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오라!’ 주님의 말씀을 믿고 물 위를 걸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자 ‘빠지면 어떻게 하지?’ 무서워 마음이 들었다. 인간의 약함을 생각하는 순간 물속에 빠져 버렸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역시 베드로다. 이내 주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다. 주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일어나게 하셨다. 책망하신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베드로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았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같은 기적은 한낱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기적 속에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하나는 갈릴리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다.
첫째, 갈릴리 바다는 세상이다.
갈릴리 바다는 세상을 보여 준다. 지형 상 갈릴리 바다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갈릴리 바다와 골란고원 사이에는 1200m 정도 높이의 차이가 있어서 갑작스러운 바람과 풍랑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갈릴리 바다는 평소에는 잔잔하다가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면 전문가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풍랑이 인다. 세상일이 갈릴리 바다와 같다는 것이 이런 이유이다. 폴 틸리히는 인간에게는 3가지 불안이 있다고 했다. 1) 존재의 불안으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2) 목적의 불안으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3) 도덕적 불안으로 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불안은 우리로 두려워하고 낙심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 내 인생은 불안이라는 풍랑을 품고 사는 안전하지 못한 갈릴리 바다이다. 갈릴리 바다는 세상이다.
둘째, 예수님은 선지자이시다.
예수님께서 새벽 3시경에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서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제자들은 유령인가 해서 무서워했다. 물론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여 파선의 위기에서 건져 주셨다. 하지만 이런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 주려고 하시는 것은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 중의 하나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누가복음 4:18에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전파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4:43)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인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떡 5개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오늘 바다 위를 걸어오신 일은 자연의 질서가 아니다. 중력의 법칙을 넘어서는 기적의 이유는 죄로 부패한 세상에서도 선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이다. 제자들은 고백한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난 중에도 평안하고 힘든 세상에서 소망이 생긴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영광을 나타내고 가르치시는 선지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3가지의 믿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이 하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믿음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내가 누구관데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왕의 손에서 건져 내셨다. 반드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물 위를 걸어서 오신 예수님, 바람도 풍랑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평안과 소망이 생긴다. 세상은 갈릴리 바다처럼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코로나로 세상이 뒤집힐 줄 누가 알겠는가?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이 세상이지만 복음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살길이 있다는 하나님 나라를 믿는 것이다. 2) 구하는 자에게만 주님은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찾아오시는 예수님조차도 유령이라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은 고난만 보지 고난 중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확인하는 순간 구했기 때문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기적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물속에 빠졌을 때도 주님께 구하니까 구원해 주셨다. 구하는 자만이 기적의 기회를 갖는다. 3) 평안의 삶을 목표하는 믿음이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예수님으로 하여금 배가 평안해 졌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치니라”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셨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목표는 제자들의 고난이 아니라 평안이다. 평안의 삶을 사는 것이 예수님으로 사는 목표이다. 평안의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 3가지의 믿음으로 세상이라는 물 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나도 걸어갈 수 있다.
하지만 중력을 거슬러 물 위를 걷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마술사나 서커스에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서커스를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가스펠교재의 교리는 ‘하나님의 선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라는 것이다. ‘선’은 히브리어로 ‘토브’이다. 단순히 착하다는 성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법칙이 잘 움직인다는 뜻이다. 죄와 타락으로 세상은 부패해지고 깨졌다. 요즘 우리 지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등의 고통이다. 이상기온으로 겨울이 따뜻해지고 여름은 서늘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런 질서가 깨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달이 뜬다. 봄이 오면 새싹이 나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거둘 것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릴리 바다와 같다. 갑자기 생각지 않았던 바람과 파도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하셨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주님이 물 위를 걸어가신 기적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니 더 큰 일도 하라고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상징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이다. 갈릴리 바다는 세상을 상징한다. 세상에 떠 있는 배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물속에 빠지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생각이나 습관으로는 바다와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제자들처럼 죽을까봐 두려워할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물 위의 배처럼 세상 위에서 세상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교회라는 것이다.
우리 한남제일교회에서의 21세기 사역을 간증한다. 지난 2008년에 교회는 21세기 교회 성장기획안을 발표했다. “지역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선교하는 예수 공동체”라는 비전이다. 비전에는 지금의 세상이라는 물 위를 걸어가는 믿음이 다 들어 있다. 당시의 교역자 중에는 21세기 비전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자괴감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교회 성장 기획을 발표하고 나서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들도 기도했다. “3천 명이 모이는 예배당을 건축하게 해 주세요!” 공허하게만 들렸던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믿음으로 하게 하신다. 1) 하나님이 하신다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믿음 2) 구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 3) 평안의 삶을 목표하는 믿음 등이다. 우리 교회의 비전에 이 같은 믿음이 다 들어 있다. 1) 복음과 2) 지역사회 3)예수 공동체이다. 1) 복음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성경 말씀을 나누었다. 설교의 중심은 언제나 복음 하나님이 하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중심이다. 수요기도회에도 항상 성경 중심이었다. 지금도 가스펠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다 성경 중심이고 복음 중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를 설계하시는 설계자가 새문안교회를 설계하신 분이다. 새문안교회는 세계적인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새문안교회의 예배당 건축에도 복음의 역사가 있었다. 1892년도이다. 새 예배당을 지어야 했다. 돈이 없다. 가난한 교인들이다. 한 달에 5달러 정도밖에 못 벌었다. 그런데 건축비는 2000불이다. 교인들은 공사판에 나가 일을 했다. 150불 정도 모았다. 그런데 콜레라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백성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교인들은 예배당 건축보다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심정으로 나가서 간호와 구호 봉사활동을 했다. 병을 무서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했다.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감동하였다. 구호 활동을 잘한 이들에게 인건비를 주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교인들은 정부에서 받은 인건비를 전부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배당을 짓게 하셨다. 복음을 믿으면 역사하신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놀랐다. “내가 알기로 그들 대부분은 기존 생계조차 꾸려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도 어느 누구도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놀랍다. 복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1천 명이 되면 무슨 일을 2천 명이 되면 무슨 일을 3천 명이 되면 교회건축을 하면서 사람을 믿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만이 살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 우리의 예배당 건축도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절망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 할렐루야! 2) 지역사회이다. 21세기 기획에 들어 있는 사역들 중에는 한남노인요양원, 어린이집, 키움 쎈터 등의 기관을 운영이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님께 구하여 할 수 있었다. 돈이 있어서 한다거나 전문가가 있어서 한 일이 아니다. 당연히 지역사회를 책임지고자 하는 선교적 열정 때문이라는 것은 지역사회가 다 알고 있다. 어린이공부방을 시작할 때이다. 지역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갔다 오면 돌봐줄 곳이 없다, 아직도 이태원이 가까운 우리 한남동에는 학원이 하나도 없다. 방치되어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기도 중에 구청을 찾아갔다. 담당자에게 어린이 공부방을 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쾌히 허락한다. 구청에서 5천만 원을 지원받고 교회가 일부 지원을 하여 지하 2층에 어린이 공부방이 마련되었다. 이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하에는 허가를 내지 않으니까. 첫날부터 어린이들이 몰려왔다. 주변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 동사무소의 컴퓨터 교실에서 학생들은 좋은 강사들로 하여금 컴퓨터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간식은 우가마트에서 지원을 했는데 사장님은 나도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셔서 매일같이 가락시장에 가셔서 그 날 가장 좋고 큰 과일을 구해다 주셨다. 한남동복지관에서는 노인선생님들에게서 붓글씨, 종이접기, 장기두기. 등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크고 좋은 과일을 간식으로 주는 공부방은 처음 봤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하셨다. 그 뿐인가? 교회 옆의 제일기획이라는 세계적인 디자인을 하는 회사 직원들이 찾아와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연극구경도 같이 가고 여름에는 용인에 있는 캐리비안 베이 아주 비싼 수영장도 같이 가서 놀아 주시기도 했다. 또 영어선생님은 지역의 대사관들에 부탁을 하여 영사관 직원 가족들이 와서 가르쳐 주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로 지역사회를 위해 예수 이름을 증거 할 수 있게 했다. 요양원과 어린이집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 한남노인요양원은 처음 운영하던 재단의 재정 문제로, 두 번째는 어느 교회가 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하게 된 것이다. 구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교사를 단독으로 파송한 것도 구하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지금은 미얀마와 칠레이지만 이전에는 동티모르와 필리핀도 있었다. 그 뿐인가? 협력으로 러시아, 몽골, 중국, 북한, 인도네시아도 있고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섬겼다.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할렐루야! 3) 평안의 삶을 목표로 예수 공동체이다. 성령 충만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적은 “가난한 자가 없더라!”“세상 사람들은 칭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다. 여러분, 교회가 친정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는 미국의 타코마에 있는 샤론의 집을 지원하고 있다. 타코마는 큰 군부대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미8군의 군인들이 많이 근무한다. 미군들과 결혼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아픔을 보고 만든 여성쉼터이다. 지금은 청소년센터까지 있다. 친정집 샤론의 집이라고 부른다. 시집을 잠시 떠나 친정에 가면 얼마나 좋은가? 마음껏 쉬고 먹고 자연히 레크레이션이 된다. 아무런 프로그램이 없이 쉬었다 가는 곳이 샤론의 집, 친정집이다! 저는 교회가 친정집으로 평안의 삶이 우리 교회 예수공동체의 목표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평안이 이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점심이 맛있어서 교회에 나오신다는 소문도 있다. 하하 그런데 21세기 성장기획안의 내용들이 거의 다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우리의 계획보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 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할 수 없었다. 믿어야 한다. 세상의 생각이나 인간의 판단을 따라 살지 말라 세상이라는 물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야 승리할 수 있다. 그 중에 새 예배당 건축은 물위를 걷는 것처럼 정말 요원해 보였다. 하지만 1)복음, 2)지역사회, 3)예수공동체이라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비전을 가지니까 하나님께서 물위를 걷게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할렐루야! 세상을 이겨야 한다. 세상을 이기려면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세상이라는 물위를 잘 달려 갈 수 있을 줄로 믿는다. 믿음만이 살길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라는 물속에 빠져 살면 망하는 것이다. 오직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이라는 물위를 걸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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