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1:17-3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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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2-17 15:28 조회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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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 사순절 첫번째 주일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세가지 믿음의 요구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토마스 선교사의 생명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2-13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본문 : 요한복음11:17-37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240218 가스펠프로젝트신약2-1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11:1-2, 17-44)

  

오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기적이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표적으로 보여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중심이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 중에 단 3, 회당장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만 살리셨기 때문이다.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리는 능력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표적의 의도는 무엇일까?

나사로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마리아의 오빠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발을 닦아 드린다. 그런데 향유로 발을 닦아드린 것은 왕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이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와 오빠 나사로를 사랑하셨다. 나사로가 죽을병에 결렸다. 마리아와 언니 마르다는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이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병도 없고 고난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다 고난이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사로의 병은 죽은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고난을 당할 때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움이다. 이틀 후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은 나사로에게로 가시려고 나섰다. 이미 나흘이나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네 오라비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줄은 아나이다마르다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게 하실 것을 믿지 않았다. 다만 교리적으로 어느 때인 모르는 종말의 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은 교리적으로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마르다에게서 평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마르다는 예수가 현재의 부활이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했다.

마리아도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급히 쫓아 나왔다. 같이 있던 유대인들도 곡하러 가는 줄 알고 함께 따라왔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말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죽지 않는 것만을 바라고 우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보신 예수님은 비통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셨다. 사람의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결정하는 우리의 생각에 대하여 주님은 비통하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예수가 나사로는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을까?마르다도 마리아도 주님의 기적을 본 사람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죽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아쉬워하기만 하고 있다.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생명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과 마리아의 남매들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부활이요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하시는 것이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을 열자 나흘이 된 시신에서는 냄새가 났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예수님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눈을 들어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것을 내가 아나이다.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신 것을 알기를 원하셨다. 감사의 기도를 하신 것은 신적권한을 부여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이지 간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죽어 무덤에 안장된 나사로를 향해 큰 소리로 부르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예수님의 명령에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 온 몸에 베를 감은 채로 나왔다. 예수님은 베를 풀어 다닐 수 있게 하셨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를 것이 두려웠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에 대하여 네가 믿느냐?”하신 것처럼 3가지 믿음이 있어야 한다. 1) 예수님은 죽음에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요한복음11: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셨다. 로마서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이니라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로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었음을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 요한복음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다. 멸망에서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이다. 예수를 믿는 우리 안에는 영생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준비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어쩌다가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마태복음 20:18-19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예수님은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인지를 분명히 아셨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배반도 제사장과 서기관의 능욕과 군병들의 압제, 그리고 십자가형의 살을 에는 고통도 잘 알고 계셨다. 당연히 회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지시는 십자가가 고난과 고통을 통하여 죄인을 대속하시고 부활을 통하여 새 생명을 주시는 길을 가신 것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보여 주시는 예표가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해 죽음과 부활의 준비된 길을 가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3) 예수님은 현재를 위해 부활과 생명을 주셨음을 믿어야 한다. 요한복음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하셨다. “ 영생을 얻었고는 과거 시제이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는 미래 시제이다. 그리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현제시제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신앙을 교정해 주셨다. 부활이란 현재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구원을 얻었다. 미래에 심판은 없다. 현재는 생명을 누리고 있다. 죽어서 누리는 영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여기에서 이미 그 감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뇌리 속에, 피와 뼈 속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부활은 미래의 확신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으로 와 있는 것이다. 승리는 지금 존재한다. 심지어 부활과 영원한 생명마저도 지금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신앙고백이 부활신앙을 믿는 크리스천들의 공통의 고백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생명과 부활을 현재, 지금, 여기에서누려야 하는 생명과 부활이다. 미래의 삶과 생명이 이미 예수 안에서 가능하게 하신 것이다. 나사로의 기적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이 되었음을 알리는 사인이다. 생명의 시대, 자유함의 시대, 풍성함의 시대, 샬롬의 시대를 가리켜 주는 표적이다. 1866,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 군대는 배를 불태웠다. 조선의 쇄국정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 몇이 붙잡혀 죽게 되었는데 조선어 통역관으로 토마스 선교사가 있었다. 27살의 토마스 선교사는 자기가 가진 성경책을 나누어 주고 순교했다. 조선 군병 박 춘권의 칼에 죽기 전에 성경책을 주었는데 조카가 성경을 읽고 예수를 영접했다. 12살의 최 치량이라는 어린이도 성경책을 받아 관원 박 영식에게 가져다주었더니 성경책을 박박 뜯어 벽지와 문풍지로 발랐다. 그런데 벽과 문과 천정에 붙은 성경 때문에 밥을 먹을 때도 성경을 보고 누워있을 때도 말씀을 보다가 예수를 믿고 거듭나 그 집이 널다리 골 교회가 된다. 후에 널다리 교회는 평양 최초의 장대현교회가 되었고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의 탄생지가 되었다. 토마스 선교사의 사역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토마스 선교사는 성공하지 못한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 파송을 받았지만 다른 선교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출장 중에 임신한 아내가 죽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하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낙심했다. 결국은 선교사직을 사임을 했다. 그런 중에 살리시는 영, 성령께서 꿈과 비전을 다시 보여 주셨다. 시편16:11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다. 10일째 되는 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다. 성령이 하게하시는 말을 했다. 성령이 보여 주시는 꿈을 꿨다. 예언과 환상과 꿈이다.(2:7)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것이다.(1:3) 토마스도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다. 조선에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말을 듣고 조선 땅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다.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조선의 선교사로 가기로 작정했다. 먼저 강화도에 갔다. 성경 2백 권을 전했다. 조선말을 3개월간 배웠다. 부족했지만 조선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지자로 준비된 것이다. 조선으로 가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면호에서 조선말을 하는 통역관을 찾았다. 토마스가 통역관으로 조선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불에 타게 되었을 때 토마스 선교사 역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죽음 앞의 토마스 선교사는 그야말로 왕의 자세로 죽음을 맞이했다. 나중에 예수를 믿은 조선 수군 박 춘권은 칼로 죽임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인데도 인자한 말로 성경을 권하는 토마스 선교사의 호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하신 것처럼 섬김의 왕으로서의 박 춘권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생명과 부활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토마스 선교사는 마치 큰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았다. 연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났던 곳을 찾는다. 맑은 물이 있은 높은 곳을 향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제가 보았던 연어는 자기 몸보다 10배 이상의 높이를 뛰어 올랐다. 예수님의 생명과 부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비전으로 사는 신자는 고난이 와도 꿈을 바라고 결국 승리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현실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토마스 선교사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학교나 병원을 세우는 등 많은 사역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발판이 되었다. 예수님은내 안에 거하고 또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이라”(11:26) 하셨다. 토마스는 죽었으나 죽지 않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게 함으로 다시 살아났다.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께서 토마스의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섬김의 왕이 되는 헌신을 통해 역사 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펼치신 것이다. 제 아버지는 위암으로 피를 토하는 고통 중에도 비전을 놓고 기도하셨다. “ 내 아들 오 목사 당회장 되는 것을 보고 죽게 해 주세요!”그 때가 10월이다. 제 나이 32살이다. 저와 가족들은 아버지의 기도하시는 것을 말렸다. 의사의 말이 3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3개월 안에는 절대 기도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죽으시는 순간에 실망하지 않으려면 기도를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 당회장 되는 꿈을 위한 기도는 계속 되었다. 한 밤중에 통증이 와서 피를 토하면서도 내 병을 낫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꿈을 생존시간인 3개월 안에 죽기 전에 이루어 주셨다. 128일 교회에 부임하고 주보를 받아 보시고 장로님들을 만나시고 아들 목사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9일 수술을 받으시고 13일 금요일새벽에 조용히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꿈을 갖고 기도하는 분들을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해 낼 수 없었다. 바울사도의 꿈도 땅 끝까지 이다. 에베소장로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할 것이니 가지 말라 고 했다. 바울사도역시 같은 성령의 같은 계시를 받았다. 그런데 바울사도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꿈을 따라 고난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리고 붙잡혀서 땅 끝이라고 하는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비록 자유의 몸은 아니었지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가진 자들의 기도와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다. 저는 꿈꾸는 목사이다. 우리 교인들이 세상을 잘 사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요즘 여러분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영광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나누는 목장을 한다. 그리고 말씀을 배우고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 어디가나 섬길 줄 아는 신자가 되어 칭찬을 받는다.’ ‘예수로 행복한 성도들이 꿈이다예배당 건축에도 꿈으로 기도해야 한다. 건물도 잘 지어져야 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 한남제일의 공동체가 보다 행복하고 충성하는 모습의 꿈을 놓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교회에 와서 기쁨으로 새로운 희망으로 발 돋음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회의 꿈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물살에 휩쓸리어 떠내려가는 고기가 있다면 죽거나 죽기 직전의 고기이다. 마찬가지로 세상 물결을 따라 사는 신자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신 생명과 부활로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표적으로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예수님이 주신 생명과 부활이 지금 여기에서 현실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닥치는 고난 등의 상황에 매이지 말고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으로 승리해야 한다. 이런 생명과 부활의 기적이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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