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4:14-22 "예수님과 나사렛 사람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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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10-21 12:58 조회4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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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2 주일예배
<3분설교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된 그리스도인>
<3분설교 |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기적>
<3분설교 | 세상을 이기는 방법>
가스펠프로젝트 신약1-11
“예수님과 나사렛 사람들”(눅4:14-30)
오늘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사람들에게 가르치신 이야기이다. 선지자로서의 사역이다. 히브리서1:1,2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신 것처럼 많은 선지자 중에 예수님은 마지막 날의 선지자이다. 특별한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1)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고 2)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셨고 3) 스스로 세상을 이기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자라고 성장한 나사렛 동네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소문이 나 있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고 가르쳐 주셨다. 유대인 회당은 바벨론 포로 때에 만들어 졌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회당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선지자들의 약속대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말씀의 승리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이 소망임을 깨닫고 유대의 각 지역에도 회당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스럽게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고 모인 사람들은 듣고 은혜를 받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고향사람들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지 않고 배척하고 더 나아가 죽이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선지자로서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가스펠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3가지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어 보자.
첫째,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바로 그 메시야이십니다.
눅4:14-22“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ㅁ)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첫째, 예수님은 메시야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은 예언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선지자는 본인이 이사야가 전한 약속된 메시야라고 했다. “이 성경 말씀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이처럼 예수님은 메시야라고 선포하신 전혀 다른 선지자이다. 하지만 나사렛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할 때에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예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했지만 “그런데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하면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것과는 정반대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받아 들였는가? “내가 그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하시자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동네사람들에게 가서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해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었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직접 말씀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면서도 믿지 못하고 배신하는 것과 같다. 반면에 예수를 반대하고 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던 바울은 사도까지 되었다. 믿을 사람이 믿고 예수를 직접 만나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수를 메시야로 믿음으로 은헤를 받는 다는 것은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대로 “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등이다. 이것은 메시야,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다. 장로교 요리문담 23문에 보면, 그리스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행하신 사역은 3가지라고 했다. 제사장, 선지자, 왕이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제사장, 선지자, 왕 다 각각의 역할을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으로 감당하게 하셨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역할을 할 수도 없다. 사울 왕이 제사장의 역할을 함으로 하나님이 버리셔서 그 자신과 가족이 몰락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삼중직의 사역을 혼자 그리고 온전히 이루심으로 여러분을 구원하셨다. 1)‘제사장의 권위’로 ‘죄를 대속’하심으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의인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2)‘선지자의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보게’ 하심으로 돈과 권력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죄의 무지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게 하셨다. 3)‘왕의 권세’로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심으로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은혜이다. 구원받은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은혜로 죄인이 의인되고 하나님 자녀 되고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면서 세상을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처럼 살아야 한다. 성령 충만함을 반은 성도들로 세상과 다르게 살았다. 성전에 모이기에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에 힘썼다. 그리고 서로의 형편을 헤아려 필요에 따라 나누어 줌으로 가난한 자가 없게 만들어 사람들로 칭찬을 받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졌다. 이런 모습이 예수로 구원받은 성도요 교회공동체이다. 우리의 가장 큰 감사는 예수님이 메시야로 행하신 그리스도의 삼중직의 은혜를 받은 자로 사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며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헤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둘째, 예수님은 다른 선지자들처럼 자기 백성에게서 배척당하십니다.
눅4:23-27“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두 번째, 예수님은 기적을 보여 주셨다. 기적은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런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고향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가버나움에서의 기적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과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의 구원을 기대하지 않는 영적인 상태에서는 기적이 무슨 소용인가? 안타까워하셨다. 엘리야의 기적과 엘리사의 기적을 예로 말씀하셨다. 사렙다 과부를 보자. 당시 백성들은 3년 6개월이라는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나타나 사렘다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아들과 살고 있는 사렙다 과부에게는 마지막 남은 양식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렘다 과부는 엘리야선지자가 갈멜산상에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준 것을 알았다.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 양식으로 자신과 아들은 굶기를 각오하고 선지자를 대접했더니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먹으면 또 채워지는 밀가루통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을 보자. 나병환자이다. 집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포로 소녀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 순종하여 나병이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하나님이 하신 기적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싶은 말씀을 보자. 당시에도 수많은 가난한 과부와 나명환자가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것은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뿐이라는 것이다. 다 고침 받고 축복받은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으로 행한 자라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 이 두 사람처럼 다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할 수 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다. “주여, 제가 믿나이다!”기적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자에게만 일어난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어려서 소아마비와 천식을 앓아서 촛불 하나도 제대로 끌힘이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열한 살이 되던 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을거야!” 하나님의 일하심의 기적을 믿은 루즈벨트는 23세에 뉴욕 주 의회 의원이 되었고. 후에는 뉴욕 주지사,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여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어제 조선일보에 보니 김성은 목사님은 북한 접경에서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데려오는데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기적이라고 한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도 기적이고 지금은 그 비용이 거의 1억이나 든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채워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하시는 기적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하셨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하셨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소수의 병자를 고치셨음에도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 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고향에서 더한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다. 그래도 기적을 믿고 구한 자에게는 예수님의 병 고침 등의 역사가 일어났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나고 있다. 믿고 구하여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하면서 구하고 있는가? 기적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기적을 구하야 하고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았지만 기적과 은혜를 받은 사람은 수가 적다. 사렙다 과부의 와 나아만 장군이 받은 기적과 축복의 길을 가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셋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배척에도 불구하고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눅4:28-30“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예수님은 세 번째로 세상을 이기셨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하셨다.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이고 뜻이다. 이 세상은 어떠한 곳인가? 노아시대는 죄악이 관영했고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으므로 각자 자기 고견에 옳은 대로 행했고 바울시대는 세상 풍속을 쫓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시대였다. 예수님의 고향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에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이방인들의 믿음보다 못하다고 하는 말씀에 화가 난 것이다. 주의 은혜를 받은 마음이라면 “주여, 어찌할꼬 ”“화로다 죽게 되었도다!”회개하고 주님 앞에 엎드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은 악한 영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그 사람들 가운데로 당당하게 지나서 가심으로 세상을 이기셨다. 예수님께서는“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과 대제사장 가야바의 종교권력의 위협에도 이기셨다.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는 중에도 의연하게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심으로 이기셨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리심으로 이기셨다. 부활이다. 하늘로 오르셨다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 주로 다시 오실 것으로 세상을 심판하고 이기실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고 인질로 잡혀 있다. 그러는 중에 한 노부부는 하마스 군인들에게 죽지 않고 살아났다. 하마스 군인들이 들이닥치자 적대하기 보다는 먹을 것을 주는 등 대접을 함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미국의 한 여성 그리스도인에게도 있었다. 감옥을 탈옥한 죄수를 대접하고 전도하여 살아난 이야기다.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할 때, 감옥 문이 열리고 나중에는 간수와 그 가정을 구원했다. 부활신앙의 승리이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위험과 박해에 직면할 때마다 그는 탁자에 손가락으로 “그는 살아 계시다! 그는 살아계시다!”라고 늘 기록을 하고 읽었다. 대다수가 교황의 편이었고 모든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께서도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믿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다. 사탄은 혼자 힘으로 하라고 유혹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어떻게요? 세상을 이기신 예수를 믿고 의지할 때 세상을 당당히 이길 수 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권세로 세상을 이길 소수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신다. 여러분은 어떤가? 예수님의 당당한 삶으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선지자의 사명으로 주신 은혜는 3가지이다. 1)메시야를 가르치심으로 구원을 주시고 2)기적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나라를 살게 하시고 그리고 3) 하나님의 궁극적인 게시로 세상을 이기는 삶으로 살게 하셨다. 그렇다. 구원받은 자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구하고 그리고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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