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16-17 "오랜 약속을 이루실 분이 오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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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8-12 16:59 조회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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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3 이단경계주일

 

<3분설교 : "예수님처럼 사는 삶">

​​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1-1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오랜 약속을 이루실 분이 오시다"
본문 : 마태복음1:16-17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230813가스펠1-1
오랜 약속을 이루실 분이 오시다”(1:1-17)

 

  중세 프랑스에는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에티켓이라고 불리는 작은 티켓을 나눠줬다. 티켓에 쓰여 있는 번호대로 소개를 했고, 자리와 음식과 퇴장 순서도 마찬가지로 티켓의 번호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순서에 따라 행사가 잘 치러줬을 때 사람들은 에티켓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식사 자리에서 연장자를 먼저 대접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듯이 우선순위는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님께서도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여기셔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6:33)하셨다. 오늘 우리가 같이 생각할 말씀도 우선순위 신앙의 에티켓은 무엇인가? 이다. 오늘 나눌 말씀은 신약의 시작이신 예수님의 족보이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한다. 크게 3가지로 나뉘어 족보를 설명하고 있는데 아브라함부터 14, 다윗부터 14, 그리고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까지 14대 이다. 이 셋으로 나눈 족보에는 나름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래서 가스펠프로젝트의 설교제목도 오랜 약속을 이루실 분이 오시다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이 약속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가스펠프로젝트에서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3중직의 의미를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겠다.

 

첫째, 예수님은 세상에 복을 가져오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십니다(1:1-5)

 1-5에 나타난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가스펠 프로젝트에서는 세상에 복을 가져오시는 예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가져올 세상의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신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22:18)하시는 것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네 품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12:16) 라는 약속의 말씀에서 근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은천하 만민을 복 받게 하실 씨이고왕위를 영원히 할 자식이다.

 

그렇다면, 1-5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창세기 12: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1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어느 특별한 사람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다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브라함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다. 노예는 사람도 아니고 가축정도로 취급했고 사고팔기도 했다. 미국의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것이 1863년이지만 아직도 흑인들과 소수인종에 대한 인권문제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선언은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큰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원대한 구원의 계획이 여기계신 여러분도 충만히 임하시기를 바란다.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두 가지 방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아브라함이 전의 조상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의 이름은 데라이다. 그런데 데라의 이름이 없이 아브라함부터 시작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와의 단절이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시작되어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이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나라인 것이다

2) 이방여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다말과 라합과 룻이다. 이들은 유대의 순수 혈통이 아니다. 유다의 아이를 낳은 다말,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 그리고 가나안 여인 룻이다. 이들은 다 이방인들이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잘난 분들도 아니다. 부자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을 낳는 주역이 되었다. 그 유명한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의 이름도 이삭의 부인 리브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남편을 잃은 다말과 룻 기생인 라합 등의 이름만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이들은 이방인이지만 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헌신한 사람들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가지 장면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그렇다. 하나님 마음과 구원계획 안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있다.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이 있다. 누구 한 두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과 인종과 나라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신 것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은 죄악세상이다. 죄악세상의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 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편과 아내를 보고 자녀들을 보고 부모들을 보고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것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천국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살고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천하 만민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예수 믿는 자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축복하며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둘째, 예수님은 영원히 다스리시는 다윗의 자손입니다.(1:6-11)

1:6-11은 두 번째 세대이다. 다윗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여고냐로 마친다. 다윗 왕에게서 우선순위는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아브라함에게 너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다윗으로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다윗은 사도행전 13:22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윗이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이스라엘을 통치했기 때문이다. 두렵고 떨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고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했다.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목동출신이지만 다윗을 이스라엘의 2대왕으로 세우시고 높이신 것이다. 초대 왕 사울을 버림받은 이유는 자신 스스로를 주인으로 살아 하나님의 청지기 됨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청지기로서 왕이 된 다윗의 기도를 보라! 역대상 29:10에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11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그래서 다윗은 전쟁의 경험이 많았음에도 항상 하나님께 묻는다. “제가 전쟁에 나가야 할까요?”“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까요?”뿐 만아니라 사울 임금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고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을 내가 어찌하리요!”하면서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 때문에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열왕들의 기준은 조상 다윗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도 다 하나님이 세우신 청지기임을 믿고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왕권이 바벨론에 빼앗기게 된 이유는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개된 열 왕들 중에는 다윗 시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강했던 때도 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부자나라를 만들었으니 성공으로 보인다. 하지만 천하 만민이 복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망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왕상2:4) 왕위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로 행해야 했다.

 

저는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님이 생각이 난다. 한강물에 설탕을 타서 국민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부하직원의 에너지 드링크 사업의 제안을 거절하신 분이 바로 유일한 박사이다. 대단하시지 않는가? 소위 돈이 되면 뭐든지 다 하는사업을 하지 않았고 정직했다. 권력자의 세무조사를 받아도 먼지도 나지 않았다.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고 나라를 사랑하는 박사님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1926년에 제약회사를 설립했다. 국민들을 위한 의약품과 생활용품 등을 공급하는 데 헌신했고 직원들을 위해서도 최초로 종업원지주제와 후생복지시설로 복지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전 재산 400억 원을 기부했다.’우리나라에 유일한 박사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로서는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욱 자랑스럽다. 전정한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았던 유일한 박사이다

그런데 왕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노릇을 했다. 다윗도 때로는 예외는 아니다. 6절에 다윗을 소개한 것을 보면, 밧세바가 아닌 우리의 아내에서 솔로몬을 낳는다고 증거하고 있다. 분명하게 불륜을 폭로하는 대목이다. ‘우리아가 누구인가? 다윗의 철저한 신복이며, 충성된 군인이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철저히 헌신했던 우리아를 살해한다. 이런 불의가 어디 있을까? 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청지기가 아니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통치 말년에 이방인 아내들을 위해 신당을 지었다.(왕상11:1-8)

-르호보암은 잔혹하게 다스리며 여호와의 율법을 저버렸다 (대하15:3-7)

-아사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대하16:7-12)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 왕과 어리석은 동맹을 맺었다.(대하19:1-2)

-요람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형제들을 죽였다.(대하21:4)

-웃시야는 교만하게도 주님의 제단에 직접 분향하였다.(대하15:35)

-요담은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왕하15:35)

-아하스는 우상을 숭배하며 자녀를 제물로 바쳤다.(대하28:3)

-히스기야는 거들먹거리며 바벨론 왕에게 유다왕국의 재산을 보여 주었다가 바벨론 침공의 빌미를 주었다.(왕하20:12-19)

-므낫세는 우상 제단을 다시 쌓고,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왕하21:3-6)-아몬은 아로새긴 우상을 섬겼다.(대하33:22-23)-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어리석게도 애굽 왕과 맞서 전투를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대하35:20-24)-여고냐는 주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가 바벨론 감옥에서 10년이나 있었다.(왕하24:9) 

이들의 특징은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청지기인데도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를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부자되고 왕위를 지키려는 데만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왕권을 유지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청지기의 사명이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7:10)하신 것과 같이 사망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선순위는 바로 하나님의 청지기로 천하만민에게 복을 전하는 것이다. 천하만민이 복을 전하는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셋째, 예수님은 죄와 사망에 사로잡힌 포로생활을 끝내시는 메시야이십니다.(1:12-17)

마지막 단계인 1:12-17은 사람이 아닌 바벨론 포로 사건으로 시작되어 예수님으로 마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스라엘 역사의 한 차원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차원을 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사망에 사로잡힌 포로생활을 끝나게 하신 메시야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복음4:18-19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가리켜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고 했다. 마태복음 20:28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렇게 예수님은 왕으로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오셔서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십자가의 대속물이 되신 것이다. 이런 십자가의 대속이 우리로 죄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우리 안에는 예수의 피와 살이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는 것이다.

 

12절부터 시작되는 낳고, 낳고, 낳고, 낳고 의 반복은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벨론 포로 시기는 백성들에게 단순 저주가 아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에게는 바벨론의 큰 나라에서 살면서 천하 만민을 보게 하셨다. 바벨론의 타락한 세상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공의와 정의가 없는 돈과 권력이 주인인 세상의 면면을 보게 하셨을 뿐 아니라 다니엘과 느헤미야 등과 같은 믿음의 사람, 그리고 바벨론 포로 70년 만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셨다. 그래서 진정으로 세워가야 할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는데 부활이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도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시기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것을 믿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메시야 대망시대라고 한다

이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태어 나셨다. 1: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1:32) 곧 예수께서 다윗 언약의 성취자이시자 왕으로 오신 메시야이시라는 사실이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보좌 그 보좌에 앉으신 이는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다.(22:16“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나심을 통해 다윗의 영원한 왕위에 대한 약속을 지키셨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6:37)하셨다.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다윗의 언약대로 오셨다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만민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이루실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인류를 통치하시는 왕이다. 열방에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의 약속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 진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우선 순위는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는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줄로 믿는다. 할렐루야!

 

오늘은 해방기념주일이다. 독립 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말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나이 54세에 예수를 믿었다. 늦게 예수를 믿고도 기독 신앙을 전파하는데 앞장섰고 한국 YMCA 운동의 선구자로 청년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일에 힘썼다. 어떤 청년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으신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선생은 낄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테야!”얼마나 멋진 말인가? 영원을 산다는 것! 그렇다. 월남 이상재선생은 삶의 우선순위가 예수 안에 사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가 오신 것은 다름 아닌 멸망에서 영생으로의 구원을 위해 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된 우리도 영원히 사는 소망이 있다. 영원을 사는 사람이 되라! 하루 살다가 죽을 것처럼 하지 말고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바로 예수처럼 청지기로 사는 것이다.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청지기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처럼 살라. 오늘도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청지기로 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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