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8-20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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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8-26 11:25 조회4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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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7 주일예배
<3분 설교 : 빛된 예수님의 증거>
오늘은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 우리가 같이 보는 교재 안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여럿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이름’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이라는 제목의 시를 기억하실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에게 맞는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나도 그에게 꽃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가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로 시를 마친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어떤 꽃으로 살고 있는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싶은가? 오늘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이름이 나오는데..그 이름의 의미와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가스펠프로젝트 교재의 내용을 그리스도의 3중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첫째, 만왕의 왕께서 초라한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2:1-7)
첫 번째로 예수는 만왕의 왕의 이름으로 불렀다. 물론 당대의 왕은 가아사 아구스도이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본래의 이름은 옥타비아누스인데..그 이름을 아구스도라고 불렀다. 아구스도는 ‘존엄한 자’의 뜻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가이사의 양아들로 로마를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로 만들었다. 로마군대의 힘 앞에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꼼짝할 수 없었다. 소위 로마의 평화, Pax Romana이다. 지금도 미국을 가리켜 Pax Americana, 미국의 평화라고 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인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이사 아구스도는 당대의 최고의 왕이었기에 로마인들은 신으로 받들었다. 그만큼 높아지고 또 높아지는 왕이..가이사 아구스도이다. 그런데 “그 때에..”2:1이다. 창세기 1:1에 “태초에”하는 말과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높고 높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던“그 때에..”요셉과 마리아..마리아는 만삭의 몸이다.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마리아가 나사렛 동네에서 베들레헴으로 갔다. 신으로 여기는 최고의 권력자..의 명령 때문이다. 저 시골의 가난한 목수까지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의 명령대로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이 아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구원의 뿔, 다윗의 왕의 자손인 왕으로 태어나셨다. 놀랍게도 미가 선지자에게 약속하신대로 이루신 것이다. 미가서5:2에“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 때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가이사 아구스도를 사용하셔서 예수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 안에는 우연은 없다. 동시에 사가랴 제사장도 성령이 충만하여 1: 마지막에서 예언을 했다. 구원의 뿔이 다윗의 자손으로 낳을 것이다. 예언대로 된 것이다. 며칠 전 제 아내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중에..만약에 학교 선생님 등 주변에서 코치하는 대로 더 좋은 학교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는 항상 진학에 대하여서는..아쉬움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제 아내가 하는 말이..“그러면 오창우목사는 없었을 것이예요!”한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저를 목사로 서원한 대로..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셨다. 감사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의 다짐을 해본다. 우리가 지금 속상해도..하나님 뜻 안에 우리가 있음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그 때에 예수를 보내셨을까? 누가복음4:18에 보면, 예수님은“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보지 못하는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하시는 주의 은혜를 위해 오셨다고 하신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세상의 왕과는 전혀 다른 왕이 예수이다. 세상의 왕은 로마의 군대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소위 로마의 거짓 평화로 포로와..종으로..만들었다. 하지만 하늘의 왕이신 예수는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시는 예수의 평화로..포로 된 나를 하나님의 자녀요 자유인 되게 하셨다. 세상의 왕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게 했지만 하늘의 왕이신 예수는 영적인 나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셨다. 세상의 왕은 나를 돈으로 권력으로 눌렀지만..하늘의 왕이신 예수는 나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셨다. 세상의 왕과는 달리..만왕의 왕이신 예수를 믿는 자는 전혀 새로운..가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그렇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초라한 나를 새로운 피조물, 가치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셨다. 믿어야 한다. 만왕의 왕 예수로 변화된 나를 믿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갔을 때 팁을 거절하는 한 종업원에게 메모를 하나해 주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아인슈타인>“운이 좋으면 이 쪽지가 팁보다 훨씬 가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약 90년이 지난 후 이 쪽지는 예루살렘 경매에서 16억 원에 낙찰됐다. 작은 종이쪼가리라도 세계적인 천재가 쓴 메모였기에 높은 가치를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왕의 왕 예수의 흔적이 있음을 믿는 자는 가치가 있는 자이다. 내안에 예수 생명이 있다. 생명은 반드시 산다. 추운 겨울..죽은 것 같아도 반드시 싹이 난다. 무더위 태풍과 물난리에도 가을이 되니까..열매가 맺히는 것 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로 변화된 나..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이요..성령의 사람인 것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있음을 믿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둘째, 메시야께서 소외된 자들을 위해 태어나셨습니다.(눅2:8-20)
두 번째로 예수는 “좋은 소식” 이다. “좋은 소식”이라고 하면 당대의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인 ‘좋은 소식’은 ‘복음’, ‘Good News’는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왔다고 해서..가이사 아우구도를 ‘좋은 소식’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이사 아구스도가 주는 좋은 소식은 강력한 군대로 작은 나라들을 정복했다는 로마인들만의 좋은 소식일 뿐이다. 정복당한 나라들의 백성들, 특히 유다백성들에게 가이사 아구스도는 좋은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이고 전쟁에 패하고 나라 잃은 슬프고 공포의 소식일 뿐이다. 지금의 북한과 똑 같다. 지난 주간에도 하늘로 미사일 쏘아 올렸는데..이것은 결코 좋은 소식 아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굶고 있고 먹지 못해 탈북을 하는 등의 고통을 받고 있다. 하루 속히 북한 땅에도 복음이 전해져야 할 이유이다. 그런데 누가복음2:10,11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그리스도 주”가 다윗의 동네에 태어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표적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아기’라고 했다. 목자들은 천군천사들의 말을 듣고 구유에 누이신 이가를 보고 절하고 천사들의 말을 전했다.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예수의 탄생을 가장 먼저 본 목자들이 되는 영광의 사람들이 되었다. 목자는 양을 치는 직업이다. 창기나 세리 못지않게 유대사회에스 천민취급을 받던 계층이다. 목자로 일을 해서는 부자도 될 수 없고 웅장한 건물을 세우고 잔치를 벌이고 종과 하녀를 두고 사치와 호화생활을 즐길 수도 없다. 그저 가난하다. 겨우 먹고 살 뿐..바리새인처럼 배움도 없다. 남의 양을 치며 밤새워 일을 하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소식’‘..세상에 평화를 주는 메시야’를 찾아 가장먼저 찾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을 찾으시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미국 유명한 보석상이 이집트에서 ‘신이 내린 보석’, ‘행운의 보석’이라는 터키석을 수입했지만 팔리지 않았다. 보석상은 출장을 가면서 직원에게 “기존 가격의 1/2에 파세요.”메모를 주었다. 출장에서 돌아왔더니 다 팔렸다. 그런데 회계장부를 보니 몇 배나 많은 돈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사장의 글씨를 잘못 알아본 직원들이 가격을 2배로 올렸는데..사람들은 비싼 터키석이 진귀한 보석이라고 생각한 나머지..너 나 할 것 없이 사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 내용을 소개하며 ‘때로는 가격이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 사람들은 때때로 가격을 통해 물건의 가치를 매긴다. 나의 가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귀하게 여겨야 남도 나를 귀하에 여기는 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이사 아구스도처럼 무력과 용맹을 가지고 일시적 평화를 이룩하는 영웅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다. 그는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그의 백성을 죄에서, 질병에서, 전쟁에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불의에서 영원히 건져내실 구원자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비록 목자라도 믿는 자에게 메시야를 보게 하셨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가?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을 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좋은 소식인 예수를 가장 먼저 경배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나도 귀하게 여기신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사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다. 변화된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만큼 커지는 것이다. 목자처럼 천한 사람인 나에게도..은혜의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그 사랑을 믿고 감사하고 귀하게 여기시기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셋째, 온 열방을 비추실 빛이 태어나셨습니다.(마2:1-12)
세 번째로 예수는 ‘빛’이다. 마태복음2:에는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했다. 동방박사는 별을 연구하여 점을 치는 점성술사들이다. 동방박사들은 다니엘처럼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의 어른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권위를 가진 지식인 정치세력이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은 시기는 2년이 지났다고 본다. 왜냐하면, 헤롯왕이 두 살 밑의 어린 아기들을 다 죽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그런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할 무렵에는 2년 정도 지난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말구유가 아닌 ‘집에 들어가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엎드려 경배’했다. 동방박사들의 선물은 유향과 몰약과 황금인데..모두가 왕에게 드리는 예물이다. 이처럼..동방박사들은 세상을 비추는 빛인 별을 보고 찾아 왔다. 성경은 예수가 빛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세상의 빛 된 우리들은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다. 예수는 빛으로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잔치할 수 있게 하셨고..눈먼 자를 보게 하셨고..귀신들린 자에게 귀신을 내 쫓으시고 온전하게 하셨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빛된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사9:2-3) 예수님께서말씀하시는 착한 행실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하신다. 제사를 위해서는 형제와 화목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처럼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바꾸라고 하신다. 어둠의 세계가 아닌, 빛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하늘나라에 두라고 하신다. 이것이 빛 된 예수의 증거이다. 흥사단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10억 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으냐?” 연도별도 보면, 2012년에는 고등학생은 12%p, 중학생은 11%p, 초등학생은 5%p 이었는데 2015년에는 고등학생이 56%, 초등학생이 17%였고 2019년에는 조금 더 늘어 고등학생 57%, 중학생 42%, 초등학생 23%가 괜찮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사회가 물질만능주의가 되어 간다. 요즘 곳곳에서 칼 부림을 하는 등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물질주의가 강하다는 것은 동시에 사람과의 관계를 경시하게 되어 세상은 더 범죄의 소굴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엘리나 여사는 빛 된 예수를 증거 하고자 했다. 선교사가 꿈이어서 중국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1년 만에 폐병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선교사의 비전이 무너졌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젠 농사를 지은 돈으로 중국 선교를 후원하는 중에 탈곡기에 손가락이 잘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도 원망과 절망하지 않고 농장을 개조해 양로원으로 만들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양로원을 운영하고 사람들은 여사를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올랐다. 비전실패 중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하나님께‘왜?’라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지금의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것이 빛으로 사는 삶이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겠다고 할 때 기뻐하시면서..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셨다. 나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내가 빛으로 사는 삶은..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이다.“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12:46) 빛이신 예수만이 시대의 소망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축복의 이름이다. 만왕의 왕, 좋은 소식, 빛..그 이름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육신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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