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7:1-10 "하나님, 새 언약을 주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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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4-29 14:59 조회516회 댓글0건

본문

230430 주일예배  

 

<3분설교>

 

 

<2부 11:30> 

 

가스펠프로젝트 구약 5-11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하나님, 새 언약을 주시다
본문 : 예레미야17:1-10

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2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3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230430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5-11

 

 

“하나님, 새 언약을 주시다”(렘31:31-34)


   오늘은 예미야선지자가 전한 말씀..새 언약이다. 긍정의 힘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긍정의 힘이라고 하면..‘할 수 있다’ 이다. 하지만 ‘할 수 있다’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느냐? 에 의문을 품은 심리학자가 있었다. 실험을 했다. 알파벳을 섞어 놓고 글자를 만드는 것인데..누가 더 빨리 글자를 만드느냐? 한 팀에게는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말을 20번을 외친 후에 문제를 풀게 했고 다른 한 팀에게는 “나는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말을 20번 외친 후에 문제를 풀게 했다. 실험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할 수 있다!’라고 평서문으로 한 그룹이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놀랍게도 ‘나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문 그룹이 문제를 더 많이 풀었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나는 할 수 있을까?”라고 한 그룹이 50% 정도 더 많은 문제를 풀었다. 긍정의 힘이라고 할지라도..막무가내식 자신감보다는 적절한 질문이 지혜를 더 끌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다. 자기신념일 뿐이다. 바울사도의‘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고백에는 ‘나는 할 수 있다’ 보다는 ‘나는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이 있고 두려움이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에 대한 사모함이 있을 뿐 막무가내식의 할 수 있다가 아니다. 오늘 유대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이런 질문을 하는 신중하고 두려운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당신 유대나라는 바벨론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했다. 하지만 자기 신념에 근거한 기도를 했을 뿐이다. 에집트로 하여금 바벨론을 물리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는 식으로 간구했다. 하나님의 생각은 없다. 이런 기도는 나의 생각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신앙은..‘내게 능력주시는 분’에 대한..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것은..새 언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두려움이다.  하나님의 계획..내게 임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새 언약을 3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새 언약은..

첫째,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죄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렘17:1-10)

      예레미야 17:1절에 보면..“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했다. 금강석 철필로 마음에 아주 강하게 죄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죄는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상태가 죄이고 반대로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5절에 유다백성의 죄를 보라.“..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사는 것이 죄이다. 시편14:1에도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했다.  당시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의 침공에 맞서서 대신 싸워줄 나라로 애굽을 생각했다. 그래서 애굽을 찾아가고 또한 주변의 나라들을 찾아서 인간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죄를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지적하고 있다. 의는 무엇인가?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하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잎이 청청하고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 의이고 신앙이다.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이 아닌 육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예수님께서 주신 복음,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고 사는가? 10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기도하자..나의 심장을 살피시고..나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신다고 하셨다. 고난의 때가 있다. 편안한 때도 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굳게 믿고 관계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더하게 하실 것”이라고 축복을 약속하셨다. 유다백성의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힘을 의지하려는 죄가 구원받은 우리의 마음에 부패한 죄성이 남아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않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 


새 언약은 

둘째, 하나님은 마음에 내주하실 것을 약속하셨다.(렘31:31-33)

     31절에 하나님께서는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하셨다.  새 언약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유다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옛 언약은 출애굽한 후에 시내 산에서 돌 판에 새겨주신 언약이다. 돌 판에 새겨진 언약은 ‘순종하면 복을 주신다’는 조건적이었다. 행위언약이기 때문에 불순종할 때 돌판 언약은 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깨어졌다. 이처럼 새 언약은..은총의 언약이다.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와 맺은 언약은 생명이 약속된 행위언약이었지만 불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행위언약인데..죄인 된 인간은 불순종함으로 생명을 얻을 수 없었다. 이것이 구약이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언약을 맺기를 원하셨다. 바로 새 언약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하신 말씀..“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라”“하나님을 알게 된다”고 하신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은 없다.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 믿기만 하면..된다. 이것을 보통 은총의 언약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도 은총언약이다.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구원을 자유롭게 제공하신다. 단지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3:14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하셨다.  그래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할 때에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고 제사장의 무리도 믿었다고 했다. 예수를 믿을 때, 새로운 피조물, 영원한 새 생명을 주신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 판에 새겼으니..깨어질 수도 없고 깰 사람도 없게 하신 것이다. 성령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성령 안에 사는 것이 새 언약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새 언약으로 주셨다.


새 언약은 

셋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마음의 특권이 주어졌다.(렘33:34)

     새 언약을 가진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34절에 특권이라는 것은..하나님을 안다는 것이다.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히브리어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결혼하여 안다는 것이다.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할 때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부의 관계가 이미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은 남편이고 우리는 아내라고 표현한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됐느냐..”(175장 찬송) 이처럼 새 언약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은..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위해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하신다. 더 이상 죄로 인한 사망이나 저주나 지옥이 없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게를 통한 축복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우리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관계속에..교제 속에 살라.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새 언약,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살 수 있을 것인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에도 유다나라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힘을 의지하여 바벨론 침략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결국은 멸망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서울대학교에 입학생 중의 70%이상이 서울과 경기지역 출신이다. 그것도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고액의 과외를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육격차의 사회적 문제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말이다. 반대로 그리고 서울에만..‘은둔 청년’의 수가 13만 명이나 된다. ‘은둔 청년’이라함은 외출이 없이 6개월 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의미한다. ‘은둔 청년’의 대부분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구인난을 겪고 있지만 청년들은 취업할 곳이 없다고 한다. 회사는 회사대로 청년들은 청년대로 원하는 기준이 달라서 그렇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세상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신의 말만 듣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일을 주셨다. 소명이고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보고 정체성을 찾고 할 일을 찾는 것에 희망이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개근거지’라는 말이 있다. 체험학습이라는 것이 있는데..부모들이 데리고 여행 등을 하면 출석으로 해 주는 제도이다. 그래서 전에는 개근하면 상을 받았는데..이제는 오히려 개근거지라는 말로 조롱당하고 있다. 가진 자가 더 가지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능력주의사회가 만들어낸 자화상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교 학생의 경우,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성경학교를 하지 말고 평일에 외국으로 도시탐험을 하면 개근거지는 물론 교회자녀들에게 많은 신앙적 교회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공동체는 사회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이다.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성령 충만..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을 믿는 나라를 살았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로 보이는 세상 나라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뗐다. 제사장적 삶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의 교제로 서로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또한, 가진 것 중의 일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아 가난한 사람이 없게 했다. 나눔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성령 충만하고 칭찬받는 집사 일곱을 세워 나누었다. 선지자적인 삶이다. 성령 받은 성도들의 섬김이 얼마나 중요한지..요셉이라는 사람이 밭을 팔아 나누었는데 그 별명이 바나바..위로하는 자였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리더였다. 그의 섬김이 회심한 바울을 안디옥교회로 인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일할 수 있게 하였다. 섬김의 왕적 삶이다. 초대교회가 한창 박해를 받고 있던 시기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총독인 필리니가 로마 황제 트라이안에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보냈다. “친애하는 황제 폐하! 저는 충직한 부하 몇 명을 위장시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나가게 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언제나 그들의 신인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자주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 즐거워하기도 하는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입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로마의 관리들과 황제 폐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 부하들이 느꼈던 가장 확실한 사실 중에 하나는 그들에게 사랑이 있으며, 또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해를 피해 예배하기 위해 도망간 카타콤의 벽에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잘 나타내주는 글이 적혀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천국이 무엇인지를 경험한다.”이처럼 초기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나 신자들의 삶의 가치는 구원이다. 예수님처럼 구원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도..이웃도..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낮춤으로 세상을 구원했다.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보라. 집을 팔아 절반을 하나님께 바쳤지만..죽임을 당했다. 절반의 재산을 전부라고 하는 거짓말은 돈으로 교회를 움직이려는 마귀의 놀음이었기에 하나님은 처음부터 내 치셨다.  하나님만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새 언약을 믿고 그대로 사는가? 지금 대한민국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했다. 그러면 북한으로부터..외부의 적으로부터..우리의 안전은 완전한 것이 되는 것인가? 위를 보고 하나님을 보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미국은 물론 대한민국을 지켜 주시도록 엎드려야 할 것이다. 신앙인의 긍정의 힘은..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있을까?’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 제사장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예배하고, 선지자로 이웃을 사랑하는 나눔하고, 섬김의 왕의 인격으로 세상을 구원하자! 우리가 세워야 할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다. 새 언약이신 예수만이 희망이고 예수만이 축복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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