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1:1-14 "하나님, 유다 백성을 추적하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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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4-15 15:15 조회5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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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6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 5-9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하나님, 유다 백성을 추적하시다
본문 : 요엘2:12-14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23041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5-9
“하나님, 유다백성을 추적하시다”(요엘서2:12-14)
복사기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는 제록스이다. 전 세계 시장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기술과 운영을 잘했다. 이후에 생긴 복사기 업체들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였다.‘제록스를 따라하라’이다. 수십 년이 지나 캐논에 의해 제록스의 아성이 무너졌다. 제록스의 점유율이 90%에서 40%가 되었을 때, 제록스가 선택한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1위였던 캐논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생산원가를 50%나 절감하는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사업만 그런가요? 나라도 그렇고 우리네 인생도 그렇고 더 나아가 우리 신앙생활도 흥할 때가 있는가 하면 쇠할 때가 있다. 오늘 성경에 소개된 유다나라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다가 왔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냐? 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난 번 튀르키에 지진을 보라. 한 순간에 다 무너졌다. 며칠 전에 강릉 산불 보라. 순식간에 부는 바람에 산불이 집들은 다 타버리고 5500여명을 대피하게 했잖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부귀도 영화도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창조의 원리, 구원의 원리대로 사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대로 살고 있는가? 예수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스도인 중에는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는 분들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주님은 우리를 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데 말이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라는 말이다. 매우 적극적인 신앙의 삶을 요구하시는 말씀이 바로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엘서는 의미 있다. 요엘 선지자는 유다나라 요시야 왕 때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 요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은 회개이다. 가던 길에서 멈추어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에 희망이 있고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세계 1위 처럼 우리도 세상의 빛 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회복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요일선지자는 3가지로 말씀했다.
첫째, “자기 죄를 슬퍼하라” 이다.
요엘서1:에 보면, 유다나라에 재앙이 닥쳤다. 가뭄이 들었다. 설상가상 메뚜기 떼가 나타나 모든 곡식들을 다 먹어치워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이런 재앙의 원인은 무엇인가? 자연 재앙은 우연히 임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 만물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 메뚜기 떼 재앙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섭리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곧 메뚜기 재앙이 범죄하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책이요 경고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메뚜기와 가뭄의 심판을 통해 원하시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라는 것이 요엘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신의 죄를 슬퍼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회개하고 돌아오라” 이다.
요엘서 2: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이제라도 금식하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채찍을 때리실 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자를 싸매시고 위로하는 분이시기도 하다.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자에게는(13) 용서하시되 더 크고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누가 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기르시고 세우신다. 하물며 우리 일까보냐? 아버지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탕자를 보라. 아버지께 돌아오니까 사랑도 있고 축복도 있고 우리의 미래도 다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셋째, 성령으로 회복을 시켜 주실 것이다.
요엘서 2: 후반부를 보면,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메뚜기떼로 손해 본 것을 회복시키시고 육적으로 풍족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기도 하지만 회개하여 죄 사함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더 없이 복된 은총의 날이기도 하다(28-32). 이런 놀라운 역사가 신약 당시 마가의 다락방에서 이루어졌다(행2:) 그 엄청난 복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유효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인가? 위의 3가지 내용, 죄-회개-성령의 단계를 다시 정리하면 회개를 중심으로 회개의 한쪽에는 죄와 절망이 있고 회개의 다른 한쪽에는 의와 희망이 있다. 회개의 한 쪽인 1:에 보면 죄인의 대표로 술 취한 자를 시작으로 예루살렘성과 제사장이 나온다. 술에 취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만족을 위하는 일이다. 술에 취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술을 먹지는 않을 것이다. 다 자기를 위해서 술에 취하고, 그래서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아주 이기적인 예루살렘 사람들 그리고 제사장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라. 부자는 나사로를 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적으로 살아온 부자는 지옥에 갔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남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같이 춤추고 울지 못하는 인생 들, 이기적인 것은 다 심판의 대상이다. 반면에 회개 이후의 삶은 다르다. 2:18이후에 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사람들 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장래 일을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기적인 죄인들과는 다르게 남을 위해 산다. 예루살렘 초기 교회가 성령을 받고 난 후, 가장먼저 변화된 것이 바로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타적인 삶, 자기의 것을 사도들 앞에 두고 나누었다. 가난한 자가 없었다. 하나님 나라의 증거이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인데 바로 나누는 삶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세상이 칭찬하고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셨다. 우리는 어떤가? 오늘 요엘서는 유다백성이라는 하나님의 구원받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부패성이 있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생명이 새로 태어난 것은 기쁜 것이지만 자라나야 할 것 아닌가? 자라지 않으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도 자라야 한다. 부자 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달라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것으로 내가 사는 것이다. 며칠 전에 글을 보는데 고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분의 이야기다. 부산에서 시내버스를 탔단다. 지팡이를 딛고 겨우 버스에 올랐는데 그것을 본 중년 아저씨가 일어나 양보했다. 그랬더니 그 옆의 여학생이 일어나 중년아저씨에게 자리를 또 양보했다. 여학생의 가방을 자기가 안아 주었단다. 버스 승객이 줄어 들 즈음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학생이 올라타자 뒤에 앉았던 신사가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단다. 릴레이 양보를 보면서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누가 자신을 깨우더란다. “일어나세요. 병원 다 왔어요!”깜박 잠이 들었는지, 할머니 한 분이 깨워서 병원 앞에 내릴 수가 있었단다. ‘내가 병원에 가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할머니도 따라 내리셨다. 할머니도 저와 같은 병원에 가는 길이다. 몇 달 전에 진료 받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중년 남자와 학생들, 그리고 할머니 덕분에, 세상이 즐거워졌단다. ‘이것이 행복 아닐까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 덕에 오늘도 행복하다고 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보라! 이사야는 왕족으로 풍족하게 살았다. 누릴 것은 다 누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입장에서 이사야는 당대의 타락한 예루살렘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달라졌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나는 에루살렘의 백성들처럼 타락하고 그런 죄가 없는 줄 알고 비판을 했는데 ’자신의 죄가 보였다. 얼마나 죄가 큰 지 이렇게 외쳤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지금부터 133년 전,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온 로버트 하디가 있었다. 카나다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여 의사가 된 수재이다. 그의 꿈은 “이 세상에 아주 유익한 존재가 되겠다!”이다. 1890년 부산에 도착하여 서울 제중원에서 일을 하다가 강원도 원산으로 이주하여 병원을 열고 환자들을 고쳐 주면서 3년간 선교 사업을 했지만 결실이 없었다. 자금의 한국교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한 패배감에 빠져 있던 중, 선교사 몇 명이 모여 기도회를 했다. 하디선교사가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성령께서 그를 깨우셨다. 성경본문에서 말하는 신앙이 자신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나는 일은 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지 못했구나!’기도회를 인도하면서 펑펑 울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 했다. “저는 백인으로서 갖는 인종적 우월감, 의사로서 신분적 교만함, 성령 충만 없는 사역하는 죄를 지었음을 회개합니다.”하디선교사는 자신이 가난한 나라에 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비로소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했다. 회개한 이후 정말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처럼 섬겼다. 이후 부흥의 불길이 평양으로 전국으로 한국교회를 향해 칭찬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지난 한 주간 우리는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를 드렸다. 그리고 부활주일예배를 드렸다. 작정대로 이루어 졌다. 희망을 보았다. 감사하다.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회개를 원하시는 것은 사람다운 세상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거하는 모든 곳에서 말이다. 가정이 일터가 지역사회가 그리고 우리의 선교지와 교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가?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세상이고 교회는 하나님나라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다면 애초에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면 될 일이 아닙니까?”라고 묻는 불신자가 있었다. 죄인이라는 말이 거슬린다는 말이다. 그렇다. 애초에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면 될 일이 아닌가? 여러분 중에도 이런 의심을 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저도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사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신이라면 왜 필요하겠습니까?”그렇지 않은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이라면 무슨 신인가? 인간의 종이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나를 누구보다 귀한 존재로 창조하신 창조주하나님,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 지금도 도우시고 힘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놀라운 은총이고 축복이다. 나의 생각과 한계를 넘어서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더욱 순종하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섬김의 나를 세워가는 것이다.‘주님! 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따라가게 하소서.’내 생각과 의지를 넘어서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자. 이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요 명령이요 축복이다. 우리는 앞에서 제록스의 이야기를 보았다. 요엘서의 말씀도 보았다. 예수님을 보라!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보게 하시고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신다. 성령은 미래를 보게 하시는 영이다.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게 하신다. 성령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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