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1:6-12, 20-22"욥이 고난의 딜레마를 경험하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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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1-20 15:24 조회8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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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2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4-12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욥이 고난의 딜레마를 경험하다
본문 : 욥기1:6-12, 20-22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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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230122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4-12
“욥이 고난의 딜레마를 경험하다”(욥1:6-12,20-22)
오늘은 욥기입니다. 욥은 기원전 1500여 년 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축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신앙인으로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크게 3가지의 주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들을 내용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고난 중에 어떻게 신앙으로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선한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합니까?(욥1:6-12,20-22)
1:6-12,20-22절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9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선한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하나님이 계신 것이 맞는가?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왜 욥과 같은 선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내리시는가? 오늘 성경에 보면 사탄이..욥을 시기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부자니까..소유물이 넘치니까..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만약에 없어봐라 하나님을 욕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욥의 고난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화가 나서도 아닙니다.’‘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도 아닙니다.’욥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말씀하시기를..“내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약1:2-4)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 신자들에게도 고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불붙는 용광로에 금덩이를 넣으면 불순물을 다 타버리고 순금덩어리만 남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이와 같이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욥의 고백처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용광로와 같은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지만..땅에 있는 동안에는 육신의 문제로..세상이 악하여..그리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찬송가에도 있듯이..“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금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549장)‘앨빈 플랜팅가’라는 미국의 철학자의 말처럼..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악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침이 있고 밤이 있듯이..말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실 때 선하게 자유를 사용하게 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악하게 사용도 했기 때문에 자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있는 악으로 인하여 예수님도 죄가 없으시지만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하나님에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고난 받는 우리를 여전히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다가 세상을 심판하는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도 역시..죽어 천국에 갔다가 주님이 오실 때 함께 올 것입니다. 스데반집사는 돌에 맞아 죽는 순교를 할 때에..하늘에 서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공회 앞에서 억울하게 심판을 받아도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다(행6:15)고 했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이름의 뜻은 면류관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있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롬8:18)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높이셨습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6:3에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하셨습니다. 부모들에게 자녀는 즐거움인 것처럼..우리는 하나님의 즐거움입니다. 고난 중에도 스데반처럼 주님을 바라보아 천사의 얼굴이 되고 죽을 때는 원수들을 용서한 것 것처럼..‘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시62:4)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욥이 친구들의 잘못된 조언에 답했습니다.(욥16:1-5,18-22)
16:1-5,18-22절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3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4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욥에게는 친한 친구 4명이 있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자 친구들은 저 만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네가 죄가 있어서 그런 고난을 받는 거야!”하지만 욥은 고난이라는 벌을 받을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고난의 원인은 다 죄라고 몰아 붙였습니다. 지금 자녀들은 죽고 재산도 잃으니 아내도 저주하고 떠났고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피부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욥에게는 친구들의 조언은 고난의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해준다는 조언은 오히려 고통을 더 안겨 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하늘나라 간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혼자사는 것에 익숙해 진 것 같은데..그 날밤은 무척이나 외로왔습니다. ‘내가 오늘 밤에 죽지 않을까?’외로운 마음에 큰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한데..오늘 밤 나와 함께 잠을 자 줄 수 있을까?’큰 아들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딸은 이 소식을 듣고 ‘엄마, 그러니까 아프면 병원에 가시고 맛있는 것 사드시고 운동 좀 하세요. 집에만 있지 말고..’딸에 조언에 화가 났습니다. ‘내가 병원에 못가서 그러냐? 나는 외롭다고..’그런데 나이가 밑인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형님, 같이 점심하세요!’3명이 함께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나를 찾아주는 친구가 위로가 되었습니다.‘이젠 기분이 좋아져 힘이 났어요!’했습니다. 찾아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자녀분들이 찾아주면..그렇게 좋아요. 돈도 돈이지만..부모님들을 찾아뵙는 것이 효도이고 위로입니다. 지난주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예배에 참석한 자녀분들 있었습니다. 코로나확진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오장로님께서 퇴원하셨답니다. 저에게 문자를 주시면서..교인들의 문자에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찾아주고 함께 한다는 것이 힘이고 위로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것도 예배의 중요성 다음으로 우리가 서로 찾고 함께하는 것이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찾아오신 좋은 친구입니다. “너희는 나의 친구라”(요15:14,15)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아십니다. 무슨무슨 죄가 있다고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셔서 고쳐주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친구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요15:13)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죽어 주셨습니다. 대속제물이 된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29일 할로윈 축제 때..우리 교회에서 옆에 있는 해밀턴호텔 골목에서 159명의 젊은이들이 죽었습니다. 분향소가 설치된 것을 알고 유가족들과 방문객들을 위해 일주일간 차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간에는 동사무소와 소방서, 파출소를 찾아 빵을 사들고 위로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와 함께 우리 교회에 교육관 2층에 유가족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차도 마시고 남녀방을 따로 만들어서 누워 쉴 수도 있고 회의도 할 수 있게 해 놨어요. 물론‘귀신 놀음하다가 죽었다는니’..‘나라 구하다가 죽은 것도 아닌데..’하지만 지금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유가족들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아요. 욥의 친구들처럼..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더 슬프게 만들뿐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마세요. 유가족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설날이 되면 눈물만 나지 부모형제들이 모인들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아들딸 찾아 분향소에 오시겠지요. 교회가 유가족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 주시는 것에 놀라기도 하시고 고맙다고도 많이 하십니다. 그동안 기독교가 비난을 많이 받았잖아요. 교회가 과연 이런 곳인가? 진짜 많이들 고마워해요. 우리 교회의 쉼터가..역할을 하면 좋겠어요. 인터내셔날 처치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잘 살고 있습니까? 유가족 쉼터역시 함께하는 자리가 되어 그 가족들이 힘이 나서 고난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찾아주시고 함께 하시는 예수님..진짜 좋은 친구이십니다.“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신이 예수뿐일세 /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일어도 예수 나의 힘되니 겁낼 것 없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말아라 영원하신 주능력 나를 붙드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지 않네 온천지가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394장) 예수님은 최고의 좋은 친구..하나님이 우리 위해 보내 주신 주님을 믿을 여러분에게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이 욥과 친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욥40:1-5,42:7-9)
40:1-5,42:7-9절 “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9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정하지 못함을 탓하는 욥을 책망하시고 욥의 친구들 또한 화를 내셨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욥을 위해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죄의 용서를 구하는 번제입니다. 화를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죄도 없는 욥에게 죄가 있다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그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욥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욥도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받을 때에..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일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복되게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주님도 모르신다고 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죄입니다. 알려고 하는 것도 죄입니다. 고난 중에 있을 때,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위하여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도 제사장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고 하신 것처럼..우리도 제사장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 받는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남제일교회를 이태원로에 두신 것은 한남동이태원의 제사장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가정에 있는 것도..직장에 있는 것도 다 제사장으로 기도하고 축복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제사장입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제사장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내 가정의 식구들을 위해..교회공동체를 위해..나라와 민족, 통일을 위해..세계의 평화를 위해..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주의 종들을 위해..10.29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는 길이기도 합니다. 에스더처럼 제사장이 되어 기도하고 축복하니..그 자신도 높아집니다. 다니엘도 제사장이 되어 자신과 민족을 위해..기도하고 감사하니..적은 물리치시고 높이시잖아요.. 바울사도도..모든 신앙의 선배들은 다 제사장으로 기도하고 축복했습니다. 기도만이..나의 약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기에..고난 중에 살길이고 축복받는 길입니다. 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기도를 하신 것처럼..우리도 기도하고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 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543장 찬송을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밝히 비춰주시니 인도하심 따라서 주만 의지합니다. /밝을 때에 노래와 어둘 때에 기도로 위태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생명 있을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 뿐일세/세월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 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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