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3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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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08-30 10:15 조회1,968회 댓글0건

본문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예수 구경, 예수 체험

본문 : 누가복음 19:1-10

* 설교문

200830 “예수 구경, 예수 체험”(누가복음19:1-10)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명작 가운데 <황소머리>가 있습니다. 이 피카소의 작품은 값이 계산이 안 될 정도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만들어진 작가의 인터뷰가 더 감동입니다. 피카소가 이른 아침, 파리의 뒷골목을 걷는 중에..골목의 쓰레기더미에서..고장 난 자전거 한 대를 보았습니다. 고장 나 버려진 자전거에 유난히 아침 햇살에 비쳐지는데..피카소는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려진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와..떼어낸 안장과 운전대를 용접하여 뿔 달린 황소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훗날 피카소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려졌다고 해서 그 물건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부여하는 자의 몫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쓰레기는 위대한 가능성을 가진 예술재료가 됩니다.” 멋진 말아닙니까? 생명은 부여하는 자의 몫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부여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렇게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같이 보는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생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전혀 다른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죄인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 책임자로 부자였지만 사람들은 삭개오를 향하여 죄인이라고..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을 만나..구원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롭게 변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었고 새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생명은 살아있어야 생명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아있는 생명의 구원이 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의 말씀처럼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내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는 구원을 잃지 않고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시는 생명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라면..아멘! (아멘!) 이 시간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서..살아있는 구원의 기쁨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1-4절, 구원은 “예수를 알라!” 입니다.
1-4,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4절에서는 삭개오는 예수를 알고 싶었습니다. 3절에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여..” 그래서 뽕나무,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키가 작았지만 그 약점 때문에 예수를 아는 일을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도 관심을 가졌지만 삭개오의 예수 알기의 열심은 더 컸습니다. 예수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보다 더 앞으로 달려갔고.. 예수님가시는 길을 예측하여 나무위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알기 위했던 삭개오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요한복음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생명이 내 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생명의 구원입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3:16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것이 예수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연구해 박사가 된 사람이 쓴 책도 성경만큼 예수님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믿어야지 그 외의 연구서나 서적을 믿으면 안 됩니다. 이처럼 성경을 읽고 쓰고 묵상할 때 예수님을 알게 하십니다. 교회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고 성령 받은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성령은 예수를 더 깊이 알아가게 하십니다. 교회는 예수를 알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세우셨습니다. 예수를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경은 묻습니다. 예수를 아는가?


둘째, 5-7절, 구원은 “함께 하라!”입니다.
5-7,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5-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5절에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네 집에 유하겠다는 말씀은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고 했습니다.(6) 함께 하자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7절에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구원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이사야 7:14)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꼐 있으리라”(마28:20)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천국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하십니다. “..보라..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요한계시록 21:3)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까? 찾아오신 예수님이기에 함께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삭개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1) 쳐다보아 주십니다(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쳐다보셨다는 헬라어 ‘아나블레스’로 ‘사랑의 눈으로 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실 때에도 ‘아나블레스’..‘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입니다. 하나님을 우러러보시는 그런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여러분을 쳐다보시는 예수님입니다. 2)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6)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집에 유하고 머물겠다는 말은..‘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 주겠다!’입니다 요한복음15:15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구라고 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하셨습니다. 나보다 먼저 나를 선택하신 주님이 찾아오셨기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영접함으로..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보여주며 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주시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얼마나 행복한 지를 보여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하십니까?

셋째, 8-10절, 구원은 “나누라!”입니다.

8-10,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8-10절에서 삭개오는 나누고 있습니다. 8절에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그 사랑받은 것을 마땅히 나누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3:16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구원은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내가 헤서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사는 자들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로 산다는 것을 압니다. 다윗은 역대상29:12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16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 구원도..천국도..하나님의 자녀도..가족도..물질도..이 몸도..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된 믿음입니다. 그래서 창세기1:1에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계시록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보관하고 있는 청지기라는 것이 구원받은 신자의 생각이고 삶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6:17-19에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삶입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은 교회공동체는 나누는 삶을 통해 구원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 전에는 모든 재산은 자기의 능력으로 된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젠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이웃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동포가 어떻게 되든지..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이니까..직업도 동족의 돈을 뺏는 세리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랬던 삭개오가 변합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인데 십 분의 오로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의 10분의 1만을 의미하지만 그 정신은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주셨습니다. 주님이 내게 돈 벌수 있는 재능을 주셨고, 건강을 주셨고, 직장을 주셨기에 이 물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주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이 중 10의 하나를 주님께 감사함으로 드립니다.” 여러분! 이게 십일조 정신입니다. 십일조는 레위인과 가난한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십일조의 정신을 따라 십분의 일을 넘어 십분의 오를 드리는 나눔으로 이웃을 만들고 이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까? 빼앗은 것은 네 배나 갚겠다는 것은..율법의 두 배보다 더 많은 것입니다. 이처럼 삭개오는 이웃 사랑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이웃사랑입니다. 단순히 인간적인 동정심에서가 아닌..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내게 맡겨주신 청지기의 마음으로..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가질 사명이고 역할은 이웃 만들기 입니다. 성경은 오늘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이웃을 만들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9)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많은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창세기 12:2-3에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과 큰 이름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민족과 큰 이름으로 할 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예수님 알기와 예수님 함께 하기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나누기를 보시고 복의 근원이라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0.8.29일자 기독공보의 기사입니다. 영국선교사인 장순택 목사가 영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좋은 신앙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어공부를 배우면서 알게 된 은퇴한 영어선생님과 함께 기도를 나누었습니다. 월세로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타나여사는 영국교인들의 문화적으로 다른 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불편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집을 내주는 것을 하지 말라는 반대를 무릎 쓰고 장선교사님의 가정에게 거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선교사 사모가 임신하여 아이를 출산하게 되자..산후조리는 물론 영국문화와 음식만드는 법, 영국의 특성 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어설교는 한국설교를 영어로 번역하면 알아듣지 못한다고 영어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을 하도록 가르쳐 주어 영국교회를 맡아 목회를 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서 영국교회는 죽어간다고 하지만 신실한 영국교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조쉬 맥도웰은 “누가 예수를 종교라 하는가” 저서에서 자기 간증을 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미워했습니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였다는 것에 친구들이 아버지를 무시하고 조롱할 때 마다 울었답니다. 술을 마시면 어머니를 때려서 거름더미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복수할 날만 찾았습니다. 실제로 아버지가 너무 미워 아버지를 헛간에 묶어 놓기도 했을 정도로 수치스런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던 맥도웰이 변한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진심으로 말을 할 때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맥도웰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쉬, 어떻게 나 같은 아비를 사랑할 수 있니?” “아버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전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어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 삶에 영접한 후에 삶이 변했어요. 아버지, 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증오를 사라지게 하셨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어요. 아버지의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요.” 그러자 아버지가 맥도웰에게 “얘야, 하나님께서 너의 삶에서 행한 일을 내 삶에서도 하실 수 있다면,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그분을 받아들이고 싶다.” 전해야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셨습니다.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일에 온 힘을 쏟고 계십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제2, 제3의 삭개오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자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많은 숫자가 예수 구경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를 체험한 신자만이 찾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경꾼은 잃어버린 자일뿐입니다.

구원을 받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체험한 자입니다. 예수님을 알라! 예수님과 함께 하라! 하나님의 것을 나누라! 는 3가지 구원을 보여 주었습니다. 완전한 구원은 생명이기에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기위해 구원받은 자라면..마땅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천국백성이라면.. 당연히 예수를 알기를 힘써야 할 것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나누는 삶을 통해 이웃을 만들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한 주간도 구원받은 자의 축복된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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