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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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11-22 07:18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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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은혜를 입은 자들의 기다림과 삶
본문 : 히브리서 10:19-25

201122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은혜를 입은 자들의 기다림과 삶” (히브리서10:19-25)
 
대림절을 맞는 신자의 자세에 관한 말씀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탄생일, 크리스마스를 앞둔 4주간입니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대림절이라는 교회력을 통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지냈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만날 것인가? 주님의 재림의 시간은 단순히 만남정도가 아니라..심판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 한대로 상과 벌을 주실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하여 오늘 말씀을 통해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히브리서는 레위기의 제사법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가하기에 본문의 말씀 한 절 한 절을 해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예배자’와 다른 하나는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섬기는 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으로서..‘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신자가 세상 사람과는 다른 점은 무엇보다 주일에 예배자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부러워 예수를 믿고 가문을 변화시킨 친구가 있습니다. 신자에게 예배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19-22절에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단어를 봐야 합니다. 하나는 피이고 다른 하나는 큰 제사장입니다. 19-22절을 같이 읽습니다. 19-22절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께 나아가자” 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하나는 피요 다른 하나는 큰 제사장입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피’ 입니다. 19절에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성소에 들어갈 담력과 용기..를 얻게 한 것은 ‘피’라고 합니다. 죄인은 법궤를 들여다보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19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20..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삼상6:19-20, 삼하6:6-7,11) 그래서 피를 가지고야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들이 애굽의 장자들을 죽일 때 살게 한 것은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 입니다. 대제사장역시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야 죽지 않습니다. 이처럼 피는 죄를 없이 합니다.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17:11절)“..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이처럼 예수의 피가..십자가로 속죄하신 제물의 피이기 때문에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하게하는 담대함과 용기를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그 길은..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이...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찢어졌습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27:50-51)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을 하나님이 친히 찢어 버리심으로 하나님께로 난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로 흘리신 피가..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예수의 피가 신자에게 주신 놀라운 신자의 권세는 하나님께 나가는 살길을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큰 제사장’이 계십니다.(21-22) 21절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의 큰 제사장,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들어 갈 수 있기에..‘하나님의 집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22절에..“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는 큰 제사장은 속죄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의 하나님을 만나 뵙고 속죄소위에 뿌립니다.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1-22) 이렇게 볍궤를 덥고 있는 황금판인..속죄소에 피를 뿌리는 것으로 죄 용서를 받습니다. “14..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그래서 용서를 받는 은혜를 주신다고 해서 시은소, 시은좌 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큰 제사장은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선포하시고 혈루병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잡았을 때에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선포하십니다.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는..세례를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법궤의 속죄소에 피 뿌림으로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세례를 받아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22: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16:16)“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위해 하늘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그래서..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누구입니까? 예수의 피와 큰제사장의 피 뿌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자입니다. 북한이탈주민으로 목사사모가 되신 분(김은진사모)의 간증을 보면..북한에서 할머니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전해 받았다고 합니다. 공산치하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가정을 향한 핍박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답니다. 아버지가 보위부에 반역자로 끌려가자..학교에 갔더니 책상에 백목으로 ‘반역자’라고 써놓고 왕따 시키고 멀리 사는 고모까지도 보위부에 끌려가자 자기 가족과 고모부가족이 전부 깊은 산속으로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으로 끌려 들어가 움막에서 살게 되었답니다. 얼마나 낙심했겠어요?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를 찾다보니..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할머니가 주신 믿음의 유산은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보내신 이유가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더 예배할 수 있는 기쁨에 감사했습니다. 예수의 피, 큰 제사장 예수가 주신 은혜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진실한 예배자로 설 때..고통이 아닌 은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먹을 것도 주시고 편한 잠도 주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대한민국으로 와서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예배자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산에서 길을 잃은 아들 찾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 못가 아들은 산에서 지쳐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헬리콥터를 타고 저 높이 올라가서 삐라를 뿌렸습니다.“아들아 우리는 너를 너무 사랑한단다.”아버지의 사랑의 삐라를 받아 든 아들이..정말 초인적인 힘이 나서 그 험난한 길을 뚫고 나왔다는 겁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우리는 예수의 피와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큰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가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하면 축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주의 사랑 비췰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췰 때 기쁨 오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명랑하게 비췰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293장 찬송) 그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그 예수님의 사랑을 가진 예배자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주님 만날 것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둘째, 섬기는 자로서..‘하늘의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섬기는 자만이 하늘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과 다른 것은 이 땅의 소망이 아닌 하늘의 소망,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을 통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소망으로 사는 것입니다. 23-25절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섬기는 자는 ‘그 날’에 대한 하늘의 소망이 있습니다. 23절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했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믿을 만하다’ 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은 믿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요14:2-3에 예수님께서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3..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갈릴리 사람들아..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7..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살후1:7-10) 믿을 만한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하신 것처럼 신앙의 선진들은 주님 오실 날의 소망으로 살았습니다. 계 22:20에..“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0-1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리스도인은 그 날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이 있고..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죽음과 종말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소망입니다. “만일 당신이 오늘 저녁 죽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어떻게 하다니요? 예정대로 아침에는 설교하고, 약속대로 사람들을 만나고, 저녁이 되면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침상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반경은 그리 넓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좁아지고 코로나도 우리의 일상을 좁혀 놓았습니다. 교회와 집과 직장과 학교가 어쩌면 우리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반경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에서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입니다. 어떻게 교회공동체를 통해 마지막 때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요? 2) 섬기는 자는 격려하고 모이기에 힘쓰는 하늘의 소망으로 삽니다.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며..”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입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행4:32-35) 교회 공동체는..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사랑과 선행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게 한 것입니다. 벧후 3:10-14“..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11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14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지난 주간 뉴스에, 조지 쿨루니라는 미국배우는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친구 14명에게 100만 달러씩 나누어 주며 보답을 했습니다. 무일푼이었던 시절에..친구들의 소파에서 잠을 자고 친구들의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친구들의 응원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현찰을 자루 한가득 담아 넣어 주었답니다. 하늘의 상도 이렇게 몇 천 몇 만 배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중국에서는..한 노인이 죽기 전에 동네야채가게 주인부부에게 전 재산 5억 원을 상속하기로 했답니다. 죽은 아들이 아플 때, 자신이 병원에 가야 할 때..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야채가게 부부랍니다. 친척들이나 재혼하자는 여성은 재산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하면서 돌봐주는 이웃에게 재산을 상속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사람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마음들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히브리서는 당시 교회가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이 있는 교회공동체의 비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이후 교회는 집단모임의 공동체로 사회의 지탄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영상으로 대치하면 되는데..왜 굳이 모이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여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는 것이..교회공동체의 주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면 영상예배가 교회라는 것을 맞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꿈꾸는 아름다운 교회의 비전은 초기 예루살렘교회처럼 사람과 선행으로 격려하며 모이기에 힘쓰는 사랑공동체입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교인들이 중심으로 다문화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을공동체사업이 우리 동을 대표하여 구청장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역의 필요가 되는 교회공동체입니다. 건물로도 섬기는 예배실과 카페와 마을정원도 섬김 때문입니다. 위탁받아 운영하는 어린이집, 키움센터, 요양원들을 섬기고 있는 것은 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은 믿음의 가족들뿐 아니라 이웃들과 나누는 섬김의 행위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 주님의 날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러시아의 독재자 스탈린이 죽기 전, 혼수상태에서..잠시 깨어나 슬프고 고통스럽게 마지막 남긴 말은 “나는 희망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랍니다. 신학자 토니 캄플로는 “사람이 죽을 때는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지 않는다. 바르게 살지 못한 것과, 바르게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죽는다.” 했습니다. 바르게 살고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고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기에 힘쓰는 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믿는 자의 소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밤 주님이 오실 것처럼 삽시다. 예수를 믿는 나는 예배자인가? 예수의 피와 큰 제사장 예수님의 피 뿌려 주심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참 예배자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섬기는 자로서의 하늘의 소망을 가졌는가? 그 날은 분명히 옵니다. 그러니 그 날에 받을 하늘의 상을 위해..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는 소망의 삶을 사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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