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3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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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12-13 07:34 조회1,9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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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대림절3주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예수를 믿은 나의 변화: 능력과 기쁨

본문 : 요한일서 1:1-4 

 

20121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예수를 믿은 나의 변화 : 능력과 기쁨!”

(요한일서1:1-4)

 

 오늘 말씀은 고난의 때에 우리를 지켜 줄 신앙은 무엇인가? 입니다. 당시 로마는 황제숭배신앙을 가졌습니다. 황제가 그리스도이고 구원자입니다. 황제는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로마황제가 아닌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연히 위축되고 떠나야 할 고난의 상황 속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가져야 할 신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들 중에 가장 오래 장수하신 분입니다. 오랜 인생의 신앙경험을 가진 사도요한의 권면은..예수를 믿는 자에게 일어난 변화: 능력과 기쁨으로 승리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에게 일어난 변화가 있습니다. 능력이 생기고 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귐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성탄절을 맞아..예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를 믿은 나의 변화..

첫째, 예수로 사는 능력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바로 예수입니다. 그 예수가 지금 나에게 있는데..능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1-2)

1-2절을 같이 읽습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예수로 사는 능력으로 살 수 있게 변화된 것이 예수 믿는 자의 첫 번째 변화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순전히 내 힘으로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인간적인 힘으로 살아온 것이 예수 믿기 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는 예수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1-2절에는 생명이라는 말씀을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 ‘이 생명이 나타나신바 된지라’ /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된 이’ 등 3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준비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태초라는 처음부터..창조이전부터.. ‘생명의 말씀’,‘생명의 로고스’,‘생명을 얻게 하는 원리와 법칙’이 준비되어 있었다는..“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말씀이요 구원의 원리를..사도요한은 듣고 보고 만지고 했다고 합니다. 들었고 보았고 만졌다는 태초부터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생명이 나타나신 바 된지라’ 생명이..나타났다는 말은 갑자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이미 존재했던 생명의 말씀이요 구원의 원리가 준비되었다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았다고 하는데..나타나신 생명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된 이’ 생명의 말씀과 생명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 죄인에게 나타나신 이..는 무엇이고..사도요한은 이미 들었고 보았고 만졌다는 태초부터 준비된 생명의 말씀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구원의 원리이고 생명의 법칙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생명의 말씀이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지옥에 갈 것이라고 해서 미리 준비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차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에덴동산에서 함께 사셨습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피조 된 인간들이지만 세상의 주인노릇하게 하셨습니다. 주인의 말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마귀의 유혹대로..그리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에..하나님의 것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죽음의 벌을 받았습니다. 죽음과 죄는 분리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고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기를 만들고 성을 쌓고..부를 축적하여 그 힘으로 전쟁하고 죽고 죽이는..험악한 인간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까지도 경쟁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전쟁의 고통에서 살길을 찾습니다. 어떤 이들은 철학으로..어떤 이들은 착한 일을 함으로..구원을 받고자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셨습니다.

 제가..어느 어머니가 감옥 간 아들을 대신해서 자신이 감옥에 살고 싶다고 울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어머니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요 이 어머니는 아들을 춥고 답답한 감옥에 둘 수 없다고..했습니다. 결국 하나 밖에 없는 집을 팔아 그 엄청난 돈을 변호사에게 가져다주고 기어코 감옥에서 구출해 냈습습니다. 또 어떤 아버지는 아들이 찾아와서 지금 장사가 안 되서 망하게 생겼는데..빚만 해결해 주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고심하다가 노후자금으로 가지고 있던 퇴직금 받은 것 다 퍼주어 기어코 빚을 갚아 주었습니다. 아들이 장사를 할 수 있다면 자기는 진심으로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고통 받는 자식을 그냥 내 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집도 팔고 마지막 남은 노후자금을 내 놓아 자식을 살리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도 제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일도 쉬시고 집도 팔아 수술을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자식사랑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도 내 놓는 것이 부모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바로..독생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3:16에..“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 부모도 자식이 감옥 가고 빚질 것을 대비해 집과 퇴직금을 예비했다가 갚아주지는 않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자기의 남은 것을 내 놓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죄를 지을 것을 알고 준비하고 인간이 죄를 짓자..‘짠’ 하면서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신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제는..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4:2)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을 하십니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미스바의 광장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하나님은 불레셋의 강한 군대를 물리쳐 주시고 평화를 살게 하셨습니다.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제자들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베드로의 수갑을 푸시고 감옥 문과 파숫군들을 지나 기도하는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수갑을 푸시고 감옥 문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살 길은 예수로 사는 능력입니다.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죄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바울사도처럼 외치세요!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어느 날 갑자기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전선이 빠졌답니다. 전선을 연결하자..이내 세탁기가 돌았습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는지..확인하시고 연결하십시오. 그러면..반드시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의 장애인을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 달라졌습니다. “은과 금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성령 충만이 예수 이름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은과 금이 없이도 예수이름만으로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칩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예수 이름..예수가 주시는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도 아직도..은과 금을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은 나의 변화..

둘째, ‘사귐의 기쁨’입니다.(3-4)

예수를 믿는 자들은 ‘사귐의 기쁨’으로 생명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3-4절에는..사귐의 기쁨에 대하여 ‘우리와 사귐’과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 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와 사귐’은 사도요한과 함께 한 성도간의 사귐이고 성도의 교제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의 사귐과 교제는 생명력 있게 해 줍니다. 지난겨울 죽은 것 같은 화분들끼리 모아 두었더니..놀랍게도 살아났습니다. 외국에서는 쌍둥이 중의 한 아기가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간호사 한 분이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에 함께 있게 했더니 두 아이가 다 건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생활에 교회가 무슨 소용이냐고 했더니..목사님은 난롯불에서 타고있는 석탄을 꺼냈습니다. 새빨갛게 타던 석탄이 얼마 못가 불이 꺼지고 연기만 났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신앙의 불도 잘 타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에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합니다. 전4:12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시133:1에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예수님은 두 세사람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귐의 기쁨은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기 쉬운 약한 인간이지만 함께 할 때..기쁨을 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도 요한이 말하는 우리의 사귐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는 사귐입니다. 약한 인간들만의 사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성도의 사귐이기에..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빛이신 삼위일체하나님과 함께하는 사귐의 기쁨입니다. 요일1:7에..“..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로부터의 깨끗하게 분리시키고..죄를 떠나게 하십니다.요8:12에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은 어두움에 다니지 않게 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요일1:9에는..“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한다는 헬라어 “호모로고멘”은..같은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자백은 하나님과 같은 생각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하여..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는 하나님의 생각의 수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벧전4:11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처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게 되는 수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성령 충만 받은 후에 서로의 발을 씻겨 주듯이 사랑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줬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행2:42)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대로 입니다. 그래서..하나님과의 사귐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했습니다.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어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주인과 종이..남자와 여자가 사귐과 교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귐이 주는 은혜이고 기쁨입니다. 세상은 여전히..경쟁입니다. 끼리끼리 모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끼리.. 많이 배운 사람들끼리..힘 있는 사람들끼리..수준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경쟁의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할 때..예수님처럼 변하게 됩니다. 바울사도의 말처럼..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는..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게 되고 이웃의 형편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말하고, 행동하고, 처신하여 예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신자의 신앙생활이고, 기도생활, 예배생활, 나눔과 섬김입니다. 진정한 인격적 사귐을 나누면 두 사람은 서로를 닮게 되는 것처럼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귐의 기쁨입니다. 핍박 중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우리의 자존감은 하나님처럼 변화되는 것..성화됨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목표가 아닙니까? 찬송가 455장에..“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주님을 본받으면 세상을 이길 힘도 주십니다.

 

 남아프리카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26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70세가 넘었는데도 건강했고 열정적으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26년간 감옥살이에도 건강할 수 있느냐?”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만이 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기도한 것을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요15:5,7에 예수님은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 사도는..고난의 때에..이길 수 있는 것은 예수로 사는 능력과 사귐의 기쁨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주후 85년 당시 로마의 모진 핍박 속에서도 신자들에게 예수 신앙에 대해 확고한 믿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내 놓을 신앙, 가져야 할 신앙입니다. 예수로 사는 능력으로..사귐의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하고..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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