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2:14-23“소망의 문”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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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4-17 17:46 조회2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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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8 부활절 후 두번째 주일예배

 

 

<3분 설교 요약>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소망의 문
본문 : 호세아2:14-23

 

210418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소망의 문”
(호세아2:14-23)
  
   오늘 같이 볼 말씀은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호세아는 신앙은 관계..즉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신앙은 당시 바알을 섬기던 북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래하는 신앙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을 모신 신당이 커야 응답도 크고..번쩍번쩍한 금송아지를 세워 놓고 제물도 비싼 것으로 바치면 신이 감동을 받아서 복을 많이 줄 것이라는 믿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래하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관게입니다. 6:6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인애는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 아는 것은 결혼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즉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캐나다의 신학자인 패커(J. I. Packer)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면의 최악을 미리 다 알고 계시므로, 나에 대해 어떤 새로운 면을 발견하셔서 환멸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라며 하나님과 관계를 두려워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원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창기와 결혼하여 사는 것을 보여 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처럼..호세아는 자기의 삶 전부를 바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참으로 귀한 선지자였습니다. 본문인 2:14-23을 통하여 소망의 문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하나님과의 관계 맺기”입니다.(14-18)
14-18절“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환란)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주인)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결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은“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16)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결혼 관습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를 증거하고있습니다. 성경의 결혼 관습은 남자가 여인을 찾아가서 청혼하고 지참금을 주고 여인의 가족이 받아들여 약속증서를 써 주고 집을 마련하여 모시고 갈 때 결혼이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신부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호세아의 창기와의 결혼은 영적으로 하나님이 바알들을 믿는 창기와 같은 이스라엘과 결혼하여 부부관계의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14-18절에서 하나님이..신부를 친히 찾아가셔서 관계를 맺기를 하십니다. 이 관계맺기는 두 가지로 진행이 되는데..

 1) 14,15절에 청혼 하겠다.
   청혼하는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최대한 정중할 것입니다. 찾아가서 타이르고 위로하겠다..위로는 함께 한다, 변호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부될 여인 이스라엘에게 편이 되고 힘이 되어 주신다고 청혼하십니다. 그 청혼의 증표로 포도원을 주겠다..지참금으로 포도원을 준다는 말입니다. 포도원이 소망이 되고 끈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딸이 시집 감으로 노동력이 없어져 재산상의 손해가 나는 상황이 바로 아골골짜기입니다. 아간이 벌을 받아 죽었기에 죽음과 저주와 절망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이라는 생활터전이 주어짐으로 새로운 희망이 생기고 삶의 끈을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릴 때처럼, 출애굽 했을 때처럼 나를 기쁘게 대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쁨입니다. 신랑이 찾아와 청혼하여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는 의미에서 기쁘게 대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2) 16,17절에..남편(주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바알을 주인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알 신의 우상을 없애고 동시에 주인으로서 바알신의 이름도 부르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청혼의 서약이 주는 은혜입니다. 18절에는 언약을 맺어 평안히 눕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편으로 아내의 미래안전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신앙에서의 소망은 찾아오셔서 청혼해주신 하나님과의 관계 맺기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편이시고 우리는 아내가 되는 관계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54:5에“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렘3:14,31:32에도“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하셨습니다. 이런 부부의 관계 맺기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15:에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있고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관계의 신앙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신랑과 우리는 신부라고도 하셨습니다. 찬송가에..“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175)하는 찬송이 있잖아요. 바울사도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막2:19) 사도요한도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19:7) 마25의 열 처녀 비유도 신랑예수님과 신부된 신자의 비유입니다. 여러분은 관계신앙으로 살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의 거래신앙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일 년에 한 번하는 희생제사를 매일 드리고 3년에 한번 하는 구제의 십일조를 3일에 한 번하고 감사제물을 많이 드리면..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이라고 믿고 그래서 복을 받았다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 말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과 관계 맺고 함께 사는 것은 소망의 문입니다.
 
둘째, “관계의 풍성함”입니다. (19~23)
19-23절“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심으심)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시는 풍성함은 3가지입니다. 사랑,응답,변화입니다. 19절에 내가 네게 영원히 장가들어..하십니다. ‘영원히’라는 결혼생활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하여..하나님이 남편으로서 주시는 은혜들입니다.  

1)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19,20절에..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이 여기시고 진실함으로..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방적인 사랑으로 사랑해 주신다고 하니..신부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탈무드에 보면, 결혼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딸아, 네가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왕비가 되지만 남편을 종으로 하대하면 너도 종이 될 것이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최고의 사랑으로 대접하시니..하나님을 알게 된다..‘안다’는 말은 ‘같이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 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공의정의은총긍휼진실함’으로 대해 주심으로 나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납니다. 고멜이 과거에 창기로 불려 졌지만 이젠 호세아의 아내, 선지자의 아내가 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해주셨습니다.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마땅히 지옥이고 마땅히 죽음이고..마땅히 멸망 받을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십자가의 사랑..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과 진실함을 주심으로,,천국의 선물, 생명의 은혜, 영생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으로 좋으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함께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공의/정의/은총/긍휼/진실함/’이라는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구주를 생각만 해도 얼마나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2) 항상 응답해 주십니다.
   21,22절에..응답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응답하고..응답하고..응답하고..응답하리라”하늘, 땅, 곡식, 이스르엘과 심는 것에 응답과 소원과 청이 계속 들어 주셔서..흉년이나 가뭄의 걱정 없이..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유지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응답, 말씀의 응답 등..응답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응답을 받고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응답도 없습니다. 모태신앙인으로 매주일 교회에 빠지지 않고 다녔고,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살았지만, 관계적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뭔가 허전하고 영적성장도 하고 있는지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만나는 1:1의 관계 신앙을 가지고 기도할 때..봉사할 때..마음에 감격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으로 인해 변화되었습니다. 가장 큰 즐거움 은 스릴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청하였으니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구해야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예배를 드릴 때에도..응답을 기다리는 것처럼..십일조나 주일성수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내 생명과 산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에..주일성수는 하나님이 다시 살게 하신다는 희망에..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3) 변화시켜 주십니다.
23절에는..땅에 심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같은 나무도 어느 땅에 심는냐에 따라 자라는 정도가 다릅니다. 교육관에 벚꽃나무도 남향과 북향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땅에 심어 주심으로...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다른 사람들의 재산과 물질을 거저 빼앗았던 죄인이었지만 뽕나무 위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셨고 지극 정성으로 섬기며 접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자원하여 말하기를 “나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고 토색한 것이 있다면 네 배를 쳐서 갚아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땅에 심겨진 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하여 인생이 바뀐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하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에 있어..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변화된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부르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망의 문은 관계의 풍성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의 문은.. 바로‘관계’1:1관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실체로서 함께하고 존중함으로 경험하느냐가 우리의 신앙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갖고 있더라도 실제적인 만남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참된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좋은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나면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모든 신앙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가졌고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대형교회에 다닌다고 신앙이 좋고 섬의 작은 교회에 다닌다고 신앙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1:1로 관계 맺는 신앙생활을 할 때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명문대학이나 대기업에 다닌다고 좋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직분이나 신앙경험이 있어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신념이나 경험과 감정도 무시할 수 없지만 관계가 중요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7)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 13:22).”“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안다는 것은 결혼하여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신자는..하나님과 결혼하여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통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 얻은 자의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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