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33:14-16“보라, 회복의 그날을”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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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1-06-05 16:42 조회1,529회 댓글0건

본문

 

210606 주일예배

 

3분설교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보라, 회복의 그날을

본문 : 예레미야33:14-16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 설교문

21060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보라, 회복의 그날을” (예레미야33:14-16)

  


    윤여정배우가 오스카상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본인의 기쁨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자랑이고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요즘 티비 광고에 윤배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오스카상을 받은 윤여정배우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당신에게 오스카상을 받은 것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난 최고 이런 말이 참 싫습니다...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닙니다.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자.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됩니다...” 경쟁의 상대들을 배려하고 함께 하자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도 살던 대로 살겠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민폐가 되지 않는 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런 윤여정배우의 솔직담백한 인터뷰나 말들이 신드롬이 될 정도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제..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세계 10위의 성장을 이루어 편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행복해 하지는 않습니다. 불만과 불평은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교인과 교회는 행복해 합니까? 신앙생활은 행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커져서 많은 일을 하면 행복하겠습니까?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교회가 크지 않아서..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의 당시 상황은 더 불행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우상숭배자 바벨론의 포위를 당하고 있습니다. 포위를 당해서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항복하고 70년 포로생활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오랜 만에 듣는 기분 좋은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절망 중에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 희망과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회복비전은 3가지입니다. ‘말씀의 회복’, ‘공의로운 가지의 회복’, ‘의의 회복’입니다. 이 3가지 회복을 생각하는 가운데..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첫째, ‘말씀의 회복’입니다.
14절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말씀의 회복이라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회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성취될 말씀을 바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믿으면..반드시 이루어지고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서 복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바라는 믿음이 실상이 된 것입니다. 이후 이스라엘이 약속의 백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바라고 살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 장로가 말했습니다.(2:26) 그런데 행함이 있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 복을 받는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3,25)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품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회복과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요10:3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진 사람은 신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영적인 파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지식이 아닙니다. 말씀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게 하는 능력이 있고 선한 일을..행할 능력을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딤후3:16,17) 홍능교회 김(장수)장로님은 말씀에 순종하면 살아서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사업하다가 망해서 서울 청량리에서 좌판에서 사과장수를 시작했답니다. 피곤해도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답니다. 하루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예배당 건축을 위해 땅을 사라고 하시는 음성으로 받고는“예, 순종하겠습니다!”했답니다. 그런데 집한 칸 없는 가난한 처지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순종을 위하여..없는 재산을 정리하여 얼마 되지 않지만 예배당 건축을 위해 바치는 했답니다. 이 사실을 아신 목사님께서..놀라서 어려운 상황에도 말씀붙잡고 헌신하는 것에 감동을 받고 위해서 기도하시는 중에 지인을 소개하여 약품취급소를 차리게 하셨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부목사시절에 청년회 회장될 사람이 교회봉사는 잘하는 데..직업이 없습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없으니 길거리에서 상자놓고 장사라도 해라..진짜 장사하는 것을 보고 아는 분의 회사에 취직을 하게 했더니 나중에는 작은 사업을 하고 교회 장로가 되어 잘 섬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약품취급사업이라는 새로운 사업에 하나님은 기적 같은 물질의 복을 주셔서 회복하게 되었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고 바라고 순종했더니 증거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를 심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는 회복의 은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바라고 믿음으로 회복의 은혜로 사는 분들을 행복하신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바라고 순종하면 반드시 회복하게 하십니다.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33:14)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렘29:10)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게 하심으로 순종하는 자는 회복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말씀회복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공의로운 가지의 회복입니다.
15절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공의로운 가지”의 회복이라는 말은 새로운 메시야를 통한 회복이라는 말입니다. 공의로운 가지는 공의로운 새 순과 새 싹이라는 말입니다. 이전에 있던 가지가 아닙니다. 새로운 가지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하나님은 공의로운 새로운 메시야를 보내셔서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심으로 회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공의 로운 새 가지가 누구입니까? 신기하게도..당시 유다 왕 시드기야의 이름의 뜻이“여호와 우리의 공의”였습니다. 자연히 시드기야는 자기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공의로운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의와 정의를 실행하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34:8-10) 하나님 앞에 계약을 맺고 유대인 노비들의 자유와 해방을 선포했습니다. 왕의 노비는 물론 고관대작들의 노비들이 하루아침에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일종의 희년을 선포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자..신기하게도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의 지원군이 유다를 도우러 올라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바벨론의 군대가 포위를 풀고 퇴각했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렘37:5) 시드기야가 공의로운 가지가 되어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때..돕는 손길이 생기고 적들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등의 회복이 된 것입니다. 시드기야 때문에 일어난 회복입니다. 그런데..시드기야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자기의 능력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노비들을 다시 붙잡아 들였습니다.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34:11) 시드기야가 욕심에 눈이 어두워 정의와 공의를 무너뜨리자..퇴각했던 바벨론이 성을 함락시켜 버렸습니다.(22) 도망가던 시드기야왕은 붙잡혀 두 눈을 뽑힌 채로 쇠사슬에 묶여 수많은 유대인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다윗에게서 나올 한 공의로운 가지”“정의와 공의를 실행하는 메시아”는 예수님뿐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61: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예수님은 병에 포로, 죄에 포로, 악한 영에 포로, 물질에 포로, 권력과 명예에 포로된 자들을 해방시키고 쉼을 주셨습니다. 바로 공의로운 가지는 예수님뿐입니다. 시드기야도 아니고 귀환을 이끌었던 스룹바벨도 아니고 잠시 독립했던 유다 마카베오라는 타락한 왕조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정의와 공의 실행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아프리카 잠비아의 챨스콜슨 선교사의 보고입니다. 최고의 악질 죄수들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감옥에 가두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잠비아 감옥은 완전 지옥시설이랍니다. 똥오줌냄새로 쪄들어 한 순간도 있기가 어렵답니다. 그런데 이름 모를 한 전도자가 복음을 전할 때..120명 중 80여명이 예수님을 믿고 그 중에는 35명의 사형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옥 같은 교도소지만..예수를 믿은 이들로 천국처럼 변했답니다. 밝은 표정으로 4부로 찬양하는데 천사들 같았고 예수님이 서 계신 환상도 보여 주았답니다. 이처럼 예수의 이름은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나 환경에서도 희망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너희가 내 이름으로..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4:14, 16:24)“예수님만이 회복하게 하십니다”“예수만이 희망입니다.”믿고 전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으로 구원받고 회복된 천국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공의로운 가지의 회복이신 예수님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의의 회복입니다.
16절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의의 회복이라는 말은 의는 약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도움으로 구원하고 안전하게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습니다. 의는 약자를 돕는 것입니다. 죄인을 도와 의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의입니다. 이런 의의 도움으로 평안하게 해 주어 기쁘게 살게 하는 것이..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요시야 임금은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2:16)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위해 의를 행함으로써 형통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 예수님은 약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구원과 안전한 삶을 살게 하심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의의 회복입니다. 초대교회 성령받고 난 후에..교회는 약한 자들을 가난과 노예의 굴레에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반면 세상적인 임금들과 종교인들은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권력을 쌓고 보존하는데 국력을 사용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약한 자들의 구원과 안전을 위하여 의롭게 살고 있습니까? 종교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아니라 천주교나 불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20대에서는 더 많이 줄어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놀라운 일은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는 늘어가고 있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국의 종교가 젊은이들에게 의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C.S 루이스는 자신이 무신론자로 살았던 이유에 대하여..가족, 친척에서 학교까지 기독교인이었지만 그가 만났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매정함과 오싹함, 독선, 빈틈없고..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기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그 기준에 들지 않으면 엄격하게 처단하는 살벌한 문화 안에서 그는 기독교에 염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답니다. 죄악 많은 세상에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가지 않고 우리만의 천국을 만들려고 한다면, 세상은 우리에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며칠 전, 목사님 모녀가 식당에서 갑질한 것이나 불교 초파일에 행사하는 절 앞에서 찬송을 부르며 전도를 한 것이나..인도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것은 의로 회복하려는 자세가 아닙니다. 영적 우월주의에서 나온 잘못된 행동이나 평가는 무례한 기독교가 일 뿐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유와 긍휼만이 회복하게 합니다. 폴이라고 회사원이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자인 길거리 노점상의 야채 과일 박스가 무너져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것을 도와주었답니다. 흩어진 과일과 채소를 다 정돈한 후에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혹시 당신은 예수님이신가요?”“조금 전..내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기도했지요. ‘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십시오’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당신이 예수님이 틀림없어요”했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서도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시군요’라고 칭찬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는 의지할 곳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의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야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세대들처럼 교회는 예배당이고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믿음의 아버지로 존중하고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존중하지 않는데..세상 사람들이 목사님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주일성수, 십일조생활, 교회절기를 지키고..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처럼 자녀들에게 ‘믿어야 산다’기도해 줘야 합니다. 감사헌금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습니까? 젊은 세대들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의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약자를 돕는 것이 의라고 했던 것처럼..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는 약한 내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예루살렘 성이 평안해 지고 하나님은 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회복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최고를 찾고 최고만이 살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회복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과 예수님 그리고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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