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2:1-4"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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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2-02-12 18:38 조회1,1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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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3 주일예배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1-7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본문 :  창세기12:1-4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 설교문
220213 가스펠프로젝트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제7과 
“제7과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창세기12:1-4)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창세기 50장은 1:-11:까지를 원역사라고 하고 12:부터를 족장역사라고 합니다. 오늘 12:이 족장역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시는 내용을 같이 공부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창세기12:1-4)
1-4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했다는 말은..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르시되..”하시며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람은 본래 고향이 갈대아 우르,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야에서 선진문명 속에 살았습니다. 창세기11:의 셈의 후손으로 28절에 데라의 아들로 우상제작하는 직업을 가진 우상문화에 갇혀 있었고 떠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광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모든 것이 변화되었던 것입니다.(행7:2) 결코 하나님을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죄인 중에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것은 인간구원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시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 구원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바알이 그랬고 아세라가 그랬습니다. 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림으로 구원해 주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제사장들이 찬란한 옷을 입고 복채와 향을 피우면서 왕과 백성들은 신 앞에 엎드려서 구원의 복을 달라고..빌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어떤 신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아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시대에..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시작인 창조도 하나님이신 것처럼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찾아오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심으로 인하여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시작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3가지 약속에 있습니다. 1) 큰 민족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벨탑사건에서..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족속을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하나의 큰 민족으로 축복하셨습니다. 2)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사건에서 인간의 이름을 내지 못하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3)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닿게 하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을 주는 근원이 되게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제자들에게 너희를 대접하는 자는 나를 대접하는 자요,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대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게 하신다고 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예수님처럼 높여 주신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찾아오심으로 사람과의 관계가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 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도착한 아브람은 그 땅에 기근이 들자..애굽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사래가 이쁘다는 이유로 남의 나라에게 아내를 뺏기고 죽임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여..애굽 왕 바로에게 본의 아니게 비싼 값에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나타나 혼을 내셨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에게 화를 냈습니다. “아니 당신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소!”아브람은 다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왔습니다. 아브람은 여전히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었고 하나님은 여전히 주도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으로 아브람은 변했습니다. 조카 롯은 부자가 되었을 때 소돔 땅으로 갔지만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롯을 적들의 손에서 구출해 내는 용감함과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은  하나님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삶입니다. 창조의 질서회복입니다. 한 부부가 숱한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 100여 평이 넘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장만했답니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어가면서 온갖 고생 끝에 장만한 아파트입니다. 거기다 최첨단 오디오 세트와 커피 머신을 사서 베란다를 테라스 카페처럼 꾸몄다지요. 오늘도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가정부에게 집안  일을 다 맡기고 아이들은 과외교사에게 맡기고 일터로 나갔다가 초죽음이 돼서 밤늦게 나 들어 올 것입니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 무엇을 두고온 것을 가지러 왔더니..가정부가 베란다 테라스 카페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향기 좋은 커피 한 잔을 뽑아..향유하고 있더랍니다.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러다가 죽으면 그 많은 재산은 어떻게 됩니까? 이런 사람이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하나님께 주도권을 맡겨야 합니다.  1851년 11월 미국 매릴랜드주에 사는 한 농부가 미국 재무성에 청원서를 냈습니다. “미국이 만들어 내는 모든 화폐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In God We Trust”라는 말을 넣어 주십시오.” 그 때부터 달러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글이 쓰여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이 인생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순간마다 하나님 중심이 되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인도해 가시도록 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주도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평생의 사명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도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싸우라고 하실 때에 비로소 칼을 들었습니다. 압살롬보세요. 아버지를 절대로 이기지 못하잖아요. 사울 왕이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기에 절대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그의 인생의 주도권을 맡길 때에 하나님은 목동인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죽는 날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신앙의 선조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다니엘도..요셉도..모세도..여호수아도..결국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는가의 위기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흔들립니까? 왜 우리 가정과 인생이 흔들리는 지 아시겠습니까? 사람이..주인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주도권이 드리면 다시 일어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 내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구원만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인생도..우리 가정도..우리 회사도..우리나라도.. 이 세상도..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50이 넘도록 자신이 지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던 분이 기도를 마치고 난 후에 “내가 할 일은 백지 수표의 하단에 서명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쓰실지 모르지만, 어째든 난 오늘 서명을 마쳤습니다”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인생이 아무리 큰 모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5:13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주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몰트만이 말하는 희망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에게도 확실한 은혜로 반드시 주실 줄로 믿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라고 명령하십니다.(창세기15:1-6)
1-6절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람은 두려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에 왔지만 손에 붙잡은 것이 구체적으로 없으니까..아직도 두렵기만 한 것입니다. 그 사이에 몇 가지 일이 있었고 오늘 환상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하나님, 내게 후손의 씨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내 상속자로 내 종 엘리에셀을 삼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다” 아브람을 이끌고 밖에 나가서 “하늘의 뭇별들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람은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것은 행위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았을 때, 그가 하나님을 불신했던 경우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게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구세주라는 것을 믿고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 받은 후에도 항상 신앙, 즉 삶이 좋아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 행함으로 구원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행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린 이미 의롭게 됐기 때문에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행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 좋은 예로 아브라함이 있고, 다윗을 비롯한, 노아, 모세 등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행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창세기 말씀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려 다메섹으로 가던 중 사도 바울을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으로, 또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감정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행위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의롭다 선포하십니다. 믿는 우리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실망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 안에서 즐거워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절에 아브람이 “믿으니”라는 말은 ‘신뢰하다’‘의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하나님께서 친히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다”말씀을 하실 때에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어졌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과 같이 믿어지는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단강가에서 이른 새벽에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더니 시몬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더니..시몬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가 밤을 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눅5:5) 믿음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행동했을 때, 결과는 그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눅 5:6-7) 할렐루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이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당신의 믿음을 계속 증가시키고 말씀을 실천하므로, 즉 말씀을 역사하게 함으로 믿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 영의 반응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 삶의 그물을 내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아무런 의심과 불신 없이 말씀대로 반응하면, 당신은 간증을 갖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이 구별되기를 바라십니다.(창세기17:1-14)
1-14절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이 구별되기를 바라신다고 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성도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람 나이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람은 지금 17:1과 앞 장 마지막 절인 16:16 사이에의 16년 동안..세상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사래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아 하나님이 주신 후손으로 믿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면서..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대로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으니..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하게 하셨습니다. 1)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란 뜻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이름입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인데..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시고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주신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자격이 없지만..하나님은 그렇게 불러 주심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름 아브라함을 부름으로 그 축복을 받았습니다.  2) 할례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 피를 흘리는 의식입니다. 아브라함과 가족, 종들까지도 모두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10) 이방인들로부터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했습니다.(14) 아브라함의 이름과 할례의식을 통해 하나님 앞과 이방 앞에서 구별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11:44)”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브라함처럼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아브라함으로  할례 받은 자로 사는 구별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로마가 유럽을 정복할 만큼의 강대국이었을 당시 로마 시민권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통행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만약 땅이나 바다에서 이 통행증을 가진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로마 황제와 전쟁을 할 만큼 강한지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이 말은 즉 로마의 시민을 건드리면 로마의 황제를 건드린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로마는 일정 거리마다 여행 중인 로마 시민들이 의무적으로 정무관에게 연락을 하게 했는데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오랜 기간 연락이 끊기면 경로에 있는 모든 무장 세력들을 싹 쓸어버렸습니다.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로마 시민을 결박하고, 채찍질하는 것은 무조건 범죄나 다름없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매질하던 빌립보의 행정관들이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워하며 즉시 풀어줬던 것입니다. 비록 일개 시민일지라도 강대국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권리가 됩니다. 세상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하고, 영원히 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내가 속해 있고, 그곳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를 지키고 보호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저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이 구별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철저히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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