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17:1-7 "광야의 시험"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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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2-05-21 09:48 조회1,08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20522
가스펠프로젝트 구약2-5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광야의 시험
본문 : 출애굽기17:1-7
설교문
http://h1ch.net/bbs/board.php?bo_table=0201&wr_id=203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설교문
220522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2-5
“광야의 시험”
(출애굽기17:1-7)
오늘은 가스펠프로젝트 출애굽기 5번째 시간, 출애굽기 17:의 광야의 시험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빠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광야 먼 길로 인도하셨고 위기의 상황에서 홍해바다를 가르심으로 마른 땅처럼 건너가게 하시고 쫓아오는 애굽의 군대는 홍해바다에서 심판하신 것을 찬양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광야의 시험 중에 갖게 되는 사명자의 희망이야기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헨리 포세트’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럼에도 체신부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냈으니 대단한 분입니다. 이분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이유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갔다가 아버지의 엽총의 화약이 터질 때 눈에 상처를 입었는데..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아무 일도 못하는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에..‘아버지를 어떻게든 살려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인 헨리 포세트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꿈을 찾은 척 연기를 했답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저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꼭 성공하고 말거예요. 두고 보세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들도 사실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절망을 하고 죽을 결심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를 위해선 연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문제가 없이 희망이 있는 행동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요..놀라운 일은 이렇게 희망이 있는 척 연기를 하는데도 아버지는 희망을 가지고 삶을 향한 열의가 생겨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웃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요 더 놀라운 사실은 헨리 포세트 자신입니다. 희망이 있는 척..포세트도 연기지만 차근차근 공부를 하니까..실력도 늘게 되고 점차 희망을 가지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희망은 연기를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을 변화 시킬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변화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대로 해 보면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모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보다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광야에서 일어난 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물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찾아와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희망을 주는 모세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까?(출17:1-2)
1-2절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하나님의 공급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은 2절에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자..모세와 다투었고 모세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모세에게 물을 내 놓으라고 하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세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주의 종에게 물을 내 놓으라고 하는 것은 나하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라고..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아야지 지도자라고 해서 나와 다투는 것은 마땅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는 경험이 있었고 홍해바다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마른 길을 건너고 애굽의 군대를 죽게도 하시는 것을 보고 찬양을 하기도 했는데..이렇게 주의 종 모세와 다투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임에도 불구하고..어려움이 생길 때..하나님을 시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왜 입니까? 구원받은 우리 속에는..여전히 죄의 부패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요한도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요일1:8,10) 바울사도 역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천국백성이 되고 성령이 임재하시지만..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부패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험이 올 때에 대비하여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문제는..가나안의 정탐꾼들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족장의 대표로 12명을 가나안의 정탐꾼으로 보내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족장을 대표하는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의 거인들과 높은 성을 보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거인이고 우리는 메뚜기 떼이다. 저 큰 성읍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죽을 것이다.”절망의 말을 전하자 백성들도 하늘이 울리도록 웁니다. 절망과 울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들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그대로 해 주겠다.”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하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슨 자격으로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평원망하는 것은 부패된 죄성일 뿐입니다. 하나님은“나 여호와는 입술의 열매를 짓는 자이다”(사57:19)라고 하셨습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언어 습관과 우울증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부정적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나쁘다” 그래서 입만 열면 “나는 못한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한답니다. 셀리그만 박사는 사람의 언어습관을 연구하고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인생에서 능력이나 재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긍정적인 언어의 습관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말을 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을 해야 합니다(벧전 4:11).“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다투는 것은 그리스도인된 우리에게는 아직도 부패된 죄성이 있어 죄를 짓는 다는 것을 인정하시고..여러분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세요. 백성들이 무슨 자격으로 불평하냐고요? 희망을 주는 여러분이라면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때문이라고 너그럽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게하는 희망메이커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까?(출17:3-4)
3-4절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느냐는 질문은 4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왜 당신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목말라 죽게 하느냐?” 희망메이커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백성들이 원망을 하고 죽게 하려고 하냐고 상처 주는 말에도 백성들을 대항하여 같이 다투거나 원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마음을 넓히라!”(고후6:13)처럼 모세는 마음이 넓었습니다. 마음이 넓은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28에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나님께서는 고난도 축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상은 공허하고 어둠이 수면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다니시고..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는 질서의 회복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기 때문에..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이 백성을 어떻게 하리이까?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리이다” 백성들의 원망이 극에 달했고 그 결과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백성들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선하심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1883년 미국의 보험 판매원 루이스 워터맨의 이야기입니다. 루이스 워터맨은 어느 날 큰 계약을 성사시키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데..고객이 실수로 잉크병을 엎질러 계약서를 더럽혔습니다. 회사로 돌아가서 새 계약서를 챙겨서 고객을 찾아왔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고객이 그 사이에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보험판매원과 계약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화가 납니까? 하지만 루이스 워터맨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험계약자도 경쟁보험판매자도.. 대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 펜이 있었다면 계약이 되었을텐데” 잉크가 쏟아져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잉크를 담은 펜을 발명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수많은 노력 끝에 만들어 진 것이 바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 아시지요? 잉크를 넣고 쓰는 펜입니다. 요즘 분들은 잘 모르지만 제가 어려서는 중학교 들어가면 최고의 선물이 만년필이었습니다. 만년필 중에 워터맨의 이름으로만들어지 워터맨이라는 만년필이 유명합니다. 보험판매원이 훌륭한 발명가에 사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원망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노예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요셉을 노예로 불렀지만..그 자신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신자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 가는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형통케 하심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여 경제를 베웠습니다. 감옥에 가서는 왕의 신하들을 만나 애굽의 정치를 배웠습니다. 꿈꾸는 요셉을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하심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국무총리라고 불렀지만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용서하고 이스라엘로 민족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모세처럼 선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 능력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희망메이커 모세처럼 시험 중에 선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를 믿습니까?(출17:5-7,고전10:1-6)
5-7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의 임재를 믿습니까? 하는 것은 6절에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때문입니다.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백성들 앞을 지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내가 호렙산 반석위 거기서 네 앞에 서 있겠다.”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지팡이를 들고 가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게시는 그 반석을 칠 때..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물이 나온 반석의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 즉 ‘다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왜 다툼이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자손이 다투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하늘나라가신 고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책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 교수님의 딸 이민아목사가 눈에 이상이 생겨서 실명위기에 놓이게 되자..딸이 있는 하와이로 갔습니다. 그리고 딸이 가는 교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셔서..내 딸 민아가 어제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고저 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 기적처럼 딸의 눈은 원래상태로 돌아오자..약속대로 세례를 받고 인간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를 위해 남은 생애를 사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의 기적은 오늘도 우리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0:34에서 “..너희는 신들이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실 때,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출17:1)하셨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신이라고 해서 하나님처럼 전능자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죽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통치하는 신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82:1) 아담에게 주신 것처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세상을 다스리는 그 권세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희망을 주는 메이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세상과 가정, 직장을 다스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광야의 시험을 당할 때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투는 자는 아닙니까? 모세처럼 하나님을 대신하여 살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자로 사는 것이 신앙의 승리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를 평가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국백성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도입니다. 믿으세요. 하나님을 믿고 이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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