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2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4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5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6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8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9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10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1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12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13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설교문
220710 가스펠프로젝트 구약2-11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속죄제물 2부”
(레위기5:1-13)
나무 기둥은 5×10 cm 사이즈는 약 300kg까지의 무게를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2개를 합쳐 놓으면 800kg로 두 배 이상 견딘답니다. 그런데요..두 개의 기둥을 못으로 쳐서 결합시키면 2,200kg까지 버티게 된답니다. 놀랍지요? 어려운 때일수록..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힘을 합쳐야 하고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당 건축도 그렇지만 영적으로 강력한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는 누구 몇 사람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한 두 사람이 하는 것과 성령으로 하나 되어 함께할 때..능력은 몇 배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이기에 힘쓰십시다!
오늘은 5대제사 중에 화목제와 속건제 두 개의 제사에 대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5대제사는 번제, 소제,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와 속건제입니다. 번제는 생명의 축복을, 소제는 낮아짐의 축복을, 속죄제는 청결의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게시고 제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축복의 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와 속건제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첫째. 화목제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하는 제사입니다.(레3:1-5, 엡2:13)
레3:1-5절 “1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2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엡2:13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화목제는 “응답의 축복”이 있습니다. 화목제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해 지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화목한 자가 드리는 제사가 바로 화목제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를 드리는 이유가..1) 감사할 일이 있을 때, 2) 서원했을 때, 바울사도가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화목제사를 드리듯이..여행을 다녀 온 후에 여정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간증하며 잔치를 베푸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3) 또 자원해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시는 것도 다 화목제의 의미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목제는 화목한 신자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여러분은 화목제를 얼마나 드리고 있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하나님이 주실 줄로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화목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원대로 응답하심으로 아이를 낳지 못한 한나에게 사무엘을 낳게 하시고..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게 하십니다. 서원으로 감사할 때..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이외에 다른 자녀들을 낳게 하시는 응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와 싸워 이기고 승리하자 드린 제사가 바로 화목제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승리’라는 감사하는 화목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내가 대대로 아말렉과 싸워주리라!”여러분은 감사를 잘하고 있습니까? 매사가 하나님의 은혜 아닙니까? 건강 주셔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 앞에 화목 제사를 항상 드려야 합니다. 예배당을 짓게 하신 하나님께서 화목제사로 감사할 때..얼마나 신앙생활이 활기차게 됩니까? 신앙생활의 활력은 감사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 화목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그것도 제물의 기름덩어리를 바치는 제사입니다. 요즘에는 건강 때문에 기름을 떼어 놓고 먹습니다만..전에는 정육점에서 기름을 서비스로 받아 왔습니다. 기름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덩어리를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3:5) 화목제는 1)제사자가 제물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합니다. 그리고는 2) 제물을 잡습니다. 나오는 피를 제사장이 받아서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생명을 바쳐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3) 제사자는 제물의 내장에 덮인 기름덩어리를 떼어내어 제사장에게 드리고 제사장은 제단에서 태우는데..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셨습니다. 4) 이제 나머지 제물은 제사장의 몫과 제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제물을 나눌 때에는 그 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나 이웃도 초청하여 함께 화해의 자리를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분들은 남의 집 자녀의 흉을 보지 않습니다. 내 자녀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항상 겸손하고 더불어 잘 지내는 것이 화목제물을 나누는 축복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기사 가운데 상견례를 갔다가 결혼이 깨졌다고 합니다. 신부의 엄마가 신랑의 엄마를 보고..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이유는..신부엄마가 직장에 취직을 했는데..선임의 갑질이 너무 심해서 상처를 많이 받고 그만 뒀는데..신랑엄마가 직장에서 갑질 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본 독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데..대부분의 의견은 ‘세상은 넓고도 좁다’‘평소에 잘 살아야 겠다’입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감사 할 뿐더라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교회공동체도 목사 한 사람, 장로 한 사람, 권사 한 사람..잘하면 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대접하세요.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미국뉴욕에 가면 아스토리아 호텔이 있습니다. 한 부부가 박람회를 갔다가 숙소가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호텔직원이 자기 방을 내어 주면서 누추하지만 묶으시라고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그 직원에게 새로 생긴 호텔의 사장이 되어 달라는 편지가 왔습니다. 알고 보니..직원 숙소에서 묶었던 분이 돈이 많은 갑부였고 호텔이 하나 지었는데..그 호텔이 바로 아스토리아 호텔이랍니다. 화목제사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목제물의 피로 우리를 하나님과 가깝게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의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구원을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때문에라도 감사할 수 있는 신자에게 응답이 있습니다. 화목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도 감사함으로..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축복입니다. 힙합 복음송을 하는 서종현가수가 기독교방송에 나와서..감사의 간증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가 하면..중학교 때부터 싸움에 싸움을 하여...공군에 입대를 했는데..단체생활 부적응자로 판명이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했답니다. 매일같이 한숨을 쉬며 죽을 것을 생각하며 ‘내가 살아 무엇 하나? 과연 죽음 이후에 천국이라는 것이 있는가?’하는데 어릴 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떠오르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답니다. “너에게 있는 상처로 이 땅의 청소년들을 살릴 것이다!” “나는 쓰레기였지만 하나님은 재활용의 대상인 나를 위해 예수 복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감사하는 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화목제사는 의무제사가 아니라 선택제사입니다. 역대상 29:에는 다윗 왕이 이스라엘과 솔로몬을 위해..자원하여 기도를 합니다.“..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17) 하나님께서는 25절에“..솔로몬과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심히 크게 하시고..뛰어나게 하셨더라”하셨습니다. 화목제사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화목제사를 선택해서 드리는 것은 응답의 축복입니다. 이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축복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엡2:13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하셨습니다.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화목하게 하나님께 감사하고 화목된 자로서 마땅한 감사를 통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둘째, 속건제입니다.
-양심을 정결하게하는 제사입니다.(레5:14-19,히9:13-14)
레5:14-19절 “..15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16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히9:13-14절 “..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속건제는 “양심의 축복”이 있습니다. 양심은 두 가지가 있는데..하나는 사람들의 상식적인 양심이고 하나님 앞의 선한 양심이 있습니다. 어떤 양심이든지..지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요. 시신을 어떻게 합니까? 높은 산에 가져다 놓아 새들이 와서 그 시신을 먹게 한다면..어떻겠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합니다. 부모의 시신을 새나 짐승의 밥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히말라야 높은 산맥에 사는 분들은 부모의 시신을 새들의 밥으로 주어 먹게 하는 것이 최고의 장례입니다. 새들이 먹게 함으로 부모가 하늘로 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상식적인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과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에 가면 반갑다고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서로 포옹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간단하게 목례를 하거나 손을 잡는 정도입니다.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 중에 교인들과 반갑다고 포옹인사를 하다가 교회를 떠나신 분들도 있어서..한국에서는 한국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양심은..상식은 배우고 익힌 지식에 따라 하기 때문에 지역이나 사람마다 다 달라요. 속건제를 통한 양심축복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따르는 양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선한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여러분의 양심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비방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양심이 더럽혀 졌을 때 이를 바로 잡으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속건제는..하나님께 실수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배상하고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사람에게 반드시 배상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물이나 이웃에게 범죄 한 죄에 대하여 1/5을 더한 벌금형이 주어지는데..죄의 근원적인 용서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센 씨 나병환자가 치료된 후에..그 동안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생각하여(레4:1-20) 속건 제사를 드렸고, 서원한 나실 인이 부정한 허물을 용서받기 위해(민6:1-12)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에게 세금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라!”양심청결의 축복을 하셨습니다. 배상하는 속건제를 행함으로 양심을 청결하게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39:9)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한 양심을 가진 요셉의 청결한 양심을 축복하셔서 국무총리로 높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의 양심은...비방하는 자로 부끄럽게 하는 양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건제 제물이십니다. 선한 양심을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히9:14에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여러분은“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딤전3:9)입니다. 그러므로 히10:22에..“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어느 날 가난한 집을 심방했을 때 그의 주머니에는 2실링6펜스뿐, 자기자신을 겨우 연명할 정도의 돈이었습니다. 갓난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몸져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 ‘내게 조금이라도 돈이 더 있었더라면..돈이 2실링6펜스가 아니라..1실링이 많은 3실링6펜스라면 가난한 여인에게 1실링을 기쁘게 줄텐데!’생각했답니다. 하드슨 선교사는 말로..몸져 누운 아기엄마에게 위로했습니다.“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늘에는 자비롭고 사랑 많으신 아버지가 계십니다”그런데요..그의 마음 속에서는 ‘이 위선자, 이 사람들에게 사랑 많으신 하나님 운운하면서 주머니에 돈을 움켜쥐고 있다니!” 비방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답니다. 양심의 가책을 선교사는 아기 엄마에게 자기가 갖고 있던 돈 전부를 꺼내 주었답니다. 그랬더니..단칸방으로 걸어오는 그의 발걸음은 빈주머니만큼이나 가벼웠답니다. 그런데요..다음 날 아침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기적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10실링짜리 금화 하나가 우편으로 우송돼왔습니다. 자기가 아기엄마에게 주었던 돈의 거의 4배나 되는 액수입니다. 성경말씀이 생각났답니다.“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언19:17) 2007년 영화 ‘밀양’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배우가 있습니다. 극중에서 전도연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어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교도소로 찾아갔습니다. 살인범은 죄송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싱글벙글 구원의 은혜로 웃습니다. 전도연은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누가 용서했다는 말이냐?”화를 참지 못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이 영화가 백만 관객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어쩌다 한국교회의 비방의 대상이 되고 천박한 종교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 선한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비방하는 자들로 부끄럽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요? 대형교회는 물론 대다수의 교회들이 주일예배시간에 주차문제로 주민들과 다투고 있습니다.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하셨습니다. 속건제사를 드리고 양심의 축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주민들에게 속건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 갑작스레..병가를 낸다거나 하면, 나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이 보충강의를 들어갑니다. 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얼마나 미안한지..빵을 돌리면서 감사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비방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해야 하기 때문에 얌체처럼 살면 안됩니다. 속건제사야 말로 배상을 할 줄 아는 선한 양심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그런 분들이..한국교회의 양심, 한국의 양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만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남에게 입힌 피해에 대하시기 바랍니다. 맥아더 장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온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문제다. 경제문제는 군대문제다. 군대문제는 정치문제다. 정치문제는 정치가의 양심문제다. 양심문제는 도덕의 문제다. 도덕의 문제는 종교의 문제다. 종교의 문제는 신학의 문제다.”했습니자. 양심을 청결하게 하는 축복을 주시는 속건제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목제는 응답의 축복이 있고 속건제는 양심의 축복이 있습니다. 한 주간도 이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