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10:12-22 "율법의 복과 저주"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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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2-07-16 16:41 조회949회 댓글0건

본문

 

220717

 

가스펠프로젝트 구약2-12

 

설교자 : 고노아 목사​

제목 : "율법의 복과 저주

 

본문 :  신명기10:12-22 

설교문

http://h1ch.net/bbs/board.php?bo_table=0201&wr_id=211

 

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22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220717 가스펠프로젝트 구약2-12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율법의 복과 저주”

(신명기10:12-22)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요즘은 솥뚜껑이 뭔지 몰라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 의미는 어떤 일에 매우 놀라 비슷해 보이는 작은 일만 만나도 놀란다는 내용입니다. 더욱 많은 부분에 공감이 되고 있는 말입니다. 직접 자라를 보고 놀라보지도 않았고, 솥뚜껑이 뭔지 잘 모르지만 그 의미를 배우고 들어서 잘 알고 있지요. 요즘 세상은 너무 다양해지고 광범위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추측하는 일이 더 빈번해 졌습니다.

   제가 5학년때의 일입니다. 6학년 선배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송사 담당이 되었습니다. 여자와 남자 대표로 선배들을 떠나보내며 그동안 행복했었고 잘 가서 열심히 살아달라는 매우 장엄하고 진지하게 시를 읊는 것이었습니다. 한복을 차려입고 졸업식장에 졸졸 따라서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리곤 차례가 되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신발로 바짓단을 밟아 바지가 내려가는게 아니겠습니까? 재빠르게 올렸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복에 어려운 자리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한복만 봐도 아찔하고, 누군가의 앞에만 서도 실수할까 봐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저의 솥뚜껑일 것입니다. 

  오늘은 가스펠프로젝트 구약2권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12권중에 두권의 책을 마친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구속사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어가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매우 유의미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다시 쌓아가고 선입견 속에 갇혀 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원래의 가치로 돌려놓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첫째.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신명기10:12-22)

신명기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율법이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을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7:12)라고 말합니다. 피조물과는 구별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담아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율법은 매우 귀하며 우리에게 특별한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며 다른이의 신이 아닌 너의 신, 네가 믿는 신, 너와 함께 하는 신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율법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들어있습니다. 오늘 13절의 말씀을 보면 “네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합니다.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주신 율법은 절대 그들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율법은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행복하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십니다. 창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자녀된 백성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때로 구약을 읽을 때 율법하면 딱딱하다거나 법률적인 판결 내용을 떠올리곤 합니다. 지레 겁먹고 읽기도 두려워합니다.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내용만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약의 율법에서조차 하나님은 그 사랑의 마음을 담아 그의 백성에게 선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의 행복을 위하여 세 가지로 그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1) 율법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보여줍니다.

 2) 율법은 악행 하는 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준을 보여줍니다. 

 3) 율법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16)”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씀하시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말씀하시며 그 백성을 지키시려고 하십니다. 또한“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19)”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한 왕의 행복한 이발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발사는 매일 왕의 머리를 다듬고 엽전 한 닢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더 이상 욕심이 없었기에 왕의 머리를 빗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일 행복했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매일 불행하다고 느낀 왕은 그 이발사의 행복을 시샘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하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99와 100의 악순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그 이발사의 집에 금화 99냥의 주머니를 던졌습니다. 이후 이발사는 삶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100냥도 아니라 99냥이라니. 금화 1냥은 매우 큰 금액이었기에 이발사가 모으기 너무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늘 고민하며 이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괴로운 모습으로 불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은 마음에서 옵니다. 그런데 행복하려고 하면 더 행복하지 못하는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다 좋은 말씀이고 좋은 의도인데 결과는 행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양육할 때 지침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하면 잔소리가 되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셨음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면 늘 그 율법에 매여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요3: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늘 정죄가운데 실패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행복한 삶가운데 거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으로 행복하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마음입니다.

        


둘째, 율법의 완전함을 요구합니다.(신11:1)

신명기11: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완전하다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아무에게나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사랑하는 자,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그 자녀들에게 ‘항상’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보면 율법과 계명은 늘 완전함을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때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것이 쉬운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배우는 내용도 쉽지 않은데 그것을 항상 지키며 완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당히 좋게좋게 하라는 말은 성경에 어디에도 쓰여있지 않습니다. 

  어느 40대 부부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양말 좀 똑바로 펴서 빨래통에 넣어줘?”“나는 뭐 맨날 놀다오는 줄 알아?”“나도 일하는데 정리하는것도 늘 내몫이야?”  사소한 말 다툼이지만 별 일도 아닌 것으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대화에서 감정이 상하는 포인트는 양말을 똑바로 하느냐 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좀 ’“맨날”“늘”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반복적으로 늘, 항상 이라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완전한 피조물된 사람과 하나님은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늘, 항상, 매번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서기를 요구하십니다. 신약에서 율법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율법은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율법을 어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 있으면 완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서는 율법주의에 빠져 하나라도 자신들의 율법을 범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유대율법에는 248가지 지켜야 되는 명령과, 365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금지 명령이 있습니다. 그 중에 안식일에 대한 율법으로는 안식일에는 제사를 드리고, 쉬어야 하며, 일하지 말고, 형벌도 주지 말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안식일에 회당을 가야하는데 우리집이 10층짜리 아파트인 겁니다. 회의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이 된다는 겁니다. 결과는 자동으로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서도록 시스템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운전도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종교성이 강한 지역에는 차를 몰고 가면 돌을 맞을수도 있습니다. 돌을 던지면 안된다는 말은 율법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의 특성을 모르시고 율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라’ 라는 말 이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먼저 우리를 사랑하여서 그 선하신 율법과 계명을 항상 지키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잘못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연약한 나에게 집중하다보면 모든 것이 잘못된 말 같아 보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잘못된 분 같아 보이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 모든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 율법을 없애지 않으시고 오히려 말씀 그래도 완전하게 지키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 복음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으며 그 명령 가운데 참 자유를 누립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온전한 믿음입니다. 불완전한 육신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닌 완전한 예수로부터 내려오는 온전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오늘 주님 주시는 온전한 믿음 가지고 주께 나아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율법은 복 아니면 저주를 가져옵니다(신11:26-28)

신명기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오늘은 우리나라의 제헌절이기도 합니다. 1948년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헌법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그 국가와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질서를 수호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 헌법의 가치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율법도 그 지키는 자들에게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 말씀대로 지키는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라는 결과입니다. 이 말씀을 기반으로 성경은 신명기적 역사서를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복과 저주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을 보면 이는 복과 저주가 우리사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언적 복과 저주가 아닌 선택적 복과 저주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은 복받으실 거에요” “잘 될거에요”라고 하는 예언이나, 바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입니다. 저주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 세겜성 양쪽에 있는 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6지파에게 그리심산에서 복을 선포하시고, 6지파에게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복과 저주의 목적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리려는 의도가 아니라 모두 잘 지켜서 행복하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지지 못할 것이며 율법의 저주가 없다면 죄가 무엇인지 경각심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롬3:20)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죄의 굴레에 빠질 수 없습니다. 저주에 매여, 또는 내 기준 때문에 감정이 상하며 정죄함을 받아 더욱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저주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이켜 생명의 삶이 된 자들입니다. 예수 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그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오히려 내 잘못된 기준 때문에 주님의 복음을 무기력하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동일하십니다. 율법을 세우실 때 하나님의 마음, 우리를 행복하게 하며 우리의 기쁨을 받으시고자 하는 그 마음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지키고 행하는 우리 한남제일교회 성도님들로부터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은 그 사랑의 말씀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율법 가운데에서도 그 사랑을 충만히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완성하셔서 우리를 기뻐받으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온전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의 신앙이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를 세우게 하십니다. 우리의 이 말씀의 축복으로 또 한주간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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