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1:1-5 "하나님, 니느웨 백성을 추적하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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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3-25 18:10 조회507회 댓글0건

본문

 

230326 사순절5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5-8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하나님, 니느웨 백성을 추적하시다

본문 : 요나1:1-5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23032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5-8

 

“하나님, 니느웨 백성을 추적하시다”

 

     능력 있고 사랑이 많은 의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최고의 의사입니까? 아니면 좋은 의사입니까?”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까? 최고의 의사라는 말은 소위 명의를 말하겠고 종은 의사라는 것은 사랑이 많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의 대답은 “나는 필요한 의사입니다”필요한 의사! 무슨 뜻입니까? 지금 당장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는 말은 환자의 고통을 나누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가면 월마트 같은 곳에 싸여있는 물건들을 보면 부럽고 스웨덴 같은 나라의 무료병원이나 연금 같은 복지가 부러웠고 깨끗하고 정갈한 일본이 부러워했는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물건을 못살 것이 없고 병원비도 일이천 원이면 되고 길거리도 깨끗하고 화장실은 세계최고잖아요.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너무 낮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최고나 좋은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줘야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맞춤복지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오늘은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요나서에 나타난 추적하시는 하나님은 필요한 하나님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선지자를 추적하셨습니다. 

      요나서 1:1-17절 말씀입니다. 

   요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지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니느웨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적인 앗수르 나라의 수도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여 회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나를 징계하셨어요. 히12:에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잖아요.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높은 파도에,,그렇게 유능한 선장과 배 사람들은 위기를 느꼈어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배에 있는 물건들을 다 버렸어요. 가벼워지면 괜찮을까? 그런데도 풍랑 속에서 배를 운전하기가 어려웠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영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배에는 분명 신의 뜻을 저버린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신의 분노로 풍랑이 멈추지 않는 것이지 ’사람들은 신의 뜻을 저버린 사람을 찾기 위해 제비뽑기를 했어요. 그리고는 배 밑에서 자고 있던 요나가 뽑힘을 당했습니다. “제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했습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세요!”사람들이 안타깝지만 바다의 제물로 요나를 던졌어요. 순간 바다가 잠잠해 졌어요.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신에게 제물을 바쳤으니까 신의 분노가 그쳤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징계를 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다고 했잖아요.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고 했어요.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었어요. 3일을 있어도 요나는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추적하신 것이기 때입니다. 하나님의 추적이 아니라면 물을 먹고 죽거나 상어의 공격을 받아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를 짓고 삽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쓴 브루스 윌킨슨 목사님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 이런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큰 감명을 받고 헌신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은혜를 경험하고 결심을 해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전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형제님의 삶을 그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전적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사는 일은 나의 노력으로는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조지 뮬러는 노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일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이 일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기 때문에 순종하려고 억지로 노력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 요나처럼 부족합니다. 불순종합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내가 아닌 자비하신 주님의 긍휼하신 사랑으로 일하시도록 나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여러분에게 은혜가 임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12,13에는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길을 가는 발로 고침을 받게 하신다고 했어요. 불순종한 요나를  순종하는 선지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요나와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요나서 2:7-3:5절 말씀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받지 못하면 다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요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큰 물고기로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였습니다. 요나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서원대로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사흘길이나 되는 니느웨 성을 하룻길만 전했는데도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은 자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여기에서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를 한 것은 요나의 능력 때문일까요? 요나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기를 바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슨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겠어요. 요나가 한 일은 전한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40일 후에 있을 것이다!”그냥 전했습니다. 특별히 설교를 잘하고 선물을 주는 등의 많은 감동을 받게 한 것이 아닙니다. 전하기만 했는데 놀랄 정도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도 전도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는 자가 있고 물을 주는 자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전도하시는지요? 전도가 더 어렵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그리고 “예수 믿으면 잘 살아요!”하는 것을 넘어 좀 더 생활중심, 관계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프랜시스는 교회가 풍요로운 시절에 스스로 가난해 졌어요. 수도사들과 함께 길을 걷기만 하는 것으로 전도가 된다고 했어요. 가난이 결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오랜 만에 요양원 운영위원회가 모였어요. 보호자 대표를 만났더니 교회가 요양원을 운영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어머니가 용양원에 입소해서 몸이 건강해 자셨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불교를 믿는 할머니가 기도를 해 달라고 했데요. “할머니 불교 아니세요?”“나도 어려서는 교회에 다녔어요!”만나니까 관계를 가지니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훌룻반을 운영할 때에요. 동네에 젊은 엄마들이 함께 했어요. 이웃교회 사모님도 오시고요. 그런데 교회가 이런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고 ‘교회가 이렇게 좋은 곳이예요?’모임 중에 저 밑에 있는 교회의 엄마가 전도해서 지금 그 교회에서 찬양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데요. 관계를 가지니까 전도도 되는 것입니다. OECD 36개국 중에서 한국이 '공동체 지수', '사회 유대감 지수'가 꼴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서울 시민 3명 중 1명이 극도의 고립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존 교회 모습으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웃이나 친구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여유가 없어요.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못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것들이 기독교인의 중요한 삶의 습관이 된다면, 복음 전도의 길이 다양한 영역에서 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마을중심의 목회에 한국교회의 지속가능이 있다고 합니다. 외국도 마찬가지이고요. 변화된 삶을 보여 주는 것에 희망이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신비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호2:23에“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사랑하지 않던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1:10에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필요하심이 자비와 용서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전도자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요나가 화가 났던 이유를 밝혀 주셨습니다.

      요나서 4:1-4절입니다. 

      화가 난 요나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은 것에 화가 났습니다. 죄인은 반드시 멸망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죄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일로 화가난 것입니다. 성서학자 중에는 요나의 이런 태도는 미움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대한데 남에게는 굉장히 냉정합니다. 예수님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이야기를 보세요. 두 사람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내가 일주일에 한 번은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하고 감사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세리와 같이 죄인이 아님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 중에 누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았을 것인가? 질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예수 안에서 주신 의로 의로운 자가 되었을 뿐이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의가 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이지요. 죄인이라고 할 때 세리가 하나님의 의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보세요. 용서 받았으니 용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의 공로 없이 죄인이 받은 의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의로 살고 용서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회사 회식자리에서 상급자가 권하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뺨을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해서 무단결근을 하고 하나님께 금식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기도 중에 주님의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고난 받는 것을 보게 하셨어요. ’주님도 억울함으로 나를 구원하셨구나!‘ 고난의 신비를 깨닫고 용서하기로 하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회사에서는 뺨을 때린 상급자가 징계를 받아야 하는 등 곤란한 처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집사님이 앞장서서 구명운동을 했습니다. 상급자는 징계를 받지 않았고 이 일로 상급자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늘의 상이 크겠지요? 하늘의 별이 되신 것입니다. 개척교회목사님이 작은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붉은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직진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파란 신호를 보고 사거리로 지나던 벤츠 승용차와 부딪쳤는데 목사의 차는 폐차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벤츠는 조수석 문짝이 부서지고 운전자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상대 차에서 신사가 나오고 부서진 소형차에서 목사가 나와 서로 몸은 안 다쳤느냐고 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목사인데 붉은 신호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기도하며 운전하다 사고 냈습니다. 모든 잘못은 제게 있으니 어떤 요구도 수용하겠습니다.” “목사님이 잘못 인정하시니 고맙습니다. 목사님이 제 차문 부서진 것만 보험으로 고쳐주십시오.” 목사는 매우 고마워 명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험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형 새 자동차 한 대가 교회로 배달됐습니다. “저는 지난번 사고 때 만난 집사입니다. 저는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요. 가난한 목사님을 보고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자동차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 차는 내가 고쳤습니다.” 고훈 목사의 책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목사보다도 더 믿음이 좋은 집사님이 있어요. ‘놀랍지요. 용서는 어렵습니다. 논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그렇다고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용서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신자 된 우리가 가진 능력이다. 용서란 결국 자기 구원의 행위입니다. “내가 용서한 것 같이 나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용서하는 자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용서를 다시 결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능력입니다. 누가복음 6:35-36에 “35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자비로울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불순종할 때마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면 우리도 서로에게 자비하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살아남을 사람은 없고 부부나 부모 자식관계도 관계를 유지하고 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의로 무장하는 능력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잘한 것도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실천하며 살라 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용서받았으니 용서한다는 마음으로 사에요.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아니고 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필요한 사랑, 자비하신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 자비하신 사랑이 있기에 우리도 있습니다. 믿으시지요?(아멘!) 필요한 성도, 자비한 성도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더 큰 은혜로 나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가 세울 교회는 바로 필요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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