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4-5 "하나님, 예레미야를 부르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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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4-22 14:12 조회4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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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3 주일예배 안내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 5-10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하나님, 예레미야를 부르시다
본문 : 예레미야1:4-5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230423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5-10 “하나님, 예레미야를 부르시다”(예레미야1:1-10) “마태효과”라는 말이 있다. 마태복음25:29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에서 인용된 용어이다. 다섯달란트, 두달란트받은 자는 주인의 말을 듣고 충성하여..다섯달란트, 두달란트 수익을 창출했고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수익이 없어..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이 투자를 해 10%의 수익을 올린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올린 수익은 똑같았지만 한 사람은 100만 원을 투자해 10만 원을 벌었고, 다른 사람은 1,000만 원을 투자해 100만 원을 벌었다. 수익률은 10%로 똑같았지만 실제 번 돈은 10배나 차이가 났다.‘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된다’는 이 법칙을 심리학자들은 ‘마태 효과’라고 부른다. 학자들에 따르면 마태효과는 돈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성격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고 한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친구를 소개받아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친구가 적은 사람은 인간관계를 넓히고 싶어도 기회가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성격이 좋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잘 대해줘서 더 긍정적이 되는 반면에 매사에 부정적이고 짜증을 내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다툴 일도 많기 때문에 성격이 더 부정적으로 변한다.‘마태 효과’는 신앙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을 더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신앙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는 빨리 믿음이 자라나는 것이다. 주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경험하게 되고 더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마태효과를 볼 수 있다.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잘 감당했다. 그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은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1:1-5) 1:1-3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 제사장이라고 한다. 아나돗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아나돗이 버림받은 땅이기 때문이다. 본래는 가나안 정복 후 아나돗은 굉장히 중요한 땅이었다.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에게 분배된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로몬 이후에 버림을 받아 아론의 후손들은 일반제사장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아론의 후손인 아비아달이 다윗 당시 대제사장으로 높임을 받았으나..솔로몬 왕의 등극 당시에..이를 반대하여 아도니야를 왕으로 옹립하는 일을 벌였다. 왕이 된 솔로몬이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론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을 파면했다 그래서 아론의 후손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아나돗은 솔로몬으로 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솔로몬이후에는 대제사장은 사독과 그 후손들로 이어져 왔다. 그래서 아나돗출신인 예레미야는 일반제사장으로 일 년에 두주 정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를 할 정도였다. 그랬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다. 4,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부르심에 있어서..즉흥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엄마의 뱃속에서부터..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운데 부름을 받는 예레미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성별하여 부르셨다고 했다. 성별이라는 말은..거룩한 일을 위해 구별하셨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질이 좋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치럼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선택하셨다는 확신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잘난 나도 아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 자녀, 천국백성, 성령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해 주셨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세상적인 판단으로 나를 보고 신자를 보지 말라!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젊은 나이에 그것도 돌에 맞아 죽었지만..귀한 순교자이다. 더구나 천사의 얼굴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신자의 고난과 죽음은..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귀한 죽음을 죽는 것이다. 단지 아프다는 것만으로 평가하지 말고 낙심하지도 말라. 예레미야 같은 마음을 가지라.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 천국백성, 성령의 사람이다”부탁한다. 신자의 삶은 비록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내고 치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세상적으로만 생각하여..돈이나 권력이로나 판단해서 불쌍히 보지 말고..기도하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6-8) 6절에 예레미야는..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슬프도소이다..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나는 본래 말을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했다. 말할 줄 모른다, 혀가 둔하다? 는 문제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이다.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 자신의 결점, 미숙함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예레미야의 항변에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으셨다. 너는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하지도 않으셨다. 단지 하나..그 시선을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리라고 하셨다. 7-8절에 “너는 아이라 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너와 함께 하여 구원할 것이다.”하셨다. 너의 작은 능력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그리스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거룩함이 아닌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질문은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가? 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에 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구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구원은 거룩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다. 신자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다가 죽으면..저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자된 우리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다. 먼저 가는 분도 있고 나중 가는 분도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한다. 사도마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그리고 의지하고 기도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할 것이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신자의 성공이고 축복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구원이고 거룩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의 임재하시면..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9-10) 9절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하셨다. 내 안에 성령님은 바로 나에게 말할 수 있게 하신다. 보혜사 성령이다. 나의 대신할 번호사이시고 나를 대변하고 지켜주시는 보호자이시다. 하나님은 내게 할 말을 주신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의 말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에 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파괴하고 다시 건설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내 말이나 내 생각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만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10:16-20절에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니라”하셨다. 우리가 전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내 말이나 내 생각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전파되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제목의 책처럼..우리의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이라는 아주 힘든 시기에 선지자로 살았다. 요시야 13년(기원전 627년)에 활동을 시작하여..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까지..5명의 왕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았다. 그는 앗수르의 멸망과 바벨론의 부흥이라는 서아시아의 정세변화와 이로 인해 유다가 멸망한 시대에 살았으며, 망명자들에 의해 강제로 이집트로 끌려갔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설교는 이집트에서 했다.(44:) 선지자로서 험난한 고난을 겪었지만 사명에 충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고난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그리고 할 말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사는 인생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고난이라는 것은..개인적으로 병이나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것으로 반기독교적인 비난과 핍박도 있고 교회적인 것으로는 교인감소 등에 관한 문제 등도 있을 것이다. 팀 켈러 목사는 ‘탈기독교 시대 전도’에서 오늘날처럼 기독교에 적대적인 상황에서는 시대에 맞는 다른 전도 방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마이클 그린은 초대교회 때는 복음 전도의 80% 이상이 일반 성도들의 관계 전도를 통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먼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개인적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문제에 기독교적 답변을 제시해 줘야 한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사랑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만드신 것이다. 에베소서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는 자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창세전에..하나님이 부르시고 선택하셨다고 하신다. 초기 예루살렘교회는 사랑과 칭찬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다. 전도의 시작은 관계이다. 나와 함께한 이들은 물론 내 주변 직장 동료, 일가친척 등이다. 교회로 말하면 지역과 관계가 중요하다. 아프리카 남쪽‘바벰바’부족은 어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다음 날 그 사람을 넓은 공터로 불러내서 모든 부족 사람들이 칭찬을 해 준다고 한다. “사냥을 갔다가 다리가 다친 나를 너는 업어주었다.”“사냥 도구를 만들지 못했던 나를 도와준 적이 있다.”“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나에게 유일한 친구였다.”죄를 지은 사람에게 “너는 죄를 지었지만 본성은 착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칭찬으로 알려주고 이제 새사람이 됐다는 의미에서 잔치로 축하해주어 그 부족에게는 범죄가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들 세상이다. 사람들의 소소한 잘못은 먼저 사랑으로 덮어주고 위로해주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기도하라. 주님이 베푸셨던 놀라운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고 실천하라.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은 변해도 교회는 변하지 않는다고 조롱한다. 교회는 다니지만..전도는 마치 전도지만 돌리면 되는 것처럼..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기 전의 한국교회는 참으로 겸손했다. 예수쟁이는 사회적으로도 믿을 만 했다. 우리도 요양원을 운영하지만..어느 요양원의 원장님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힘들고 시험이 많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목회자나 장로권사들이 더 힘들게 한단다. 왜 그럴까? 그러면서 교회가 전도가 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이웃과의 관계를 잘하라! 전도의 시작은 내가 변하는 것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시부모, 친정부모 때문에 못 살겠다고 그 귀한 상담시간에 ‘시 부모가 어떻고..’‘친정부모가 어떻고..’남에게 당한 이야기만 있고 정작 본인이야기는 없더란다. 돈을 내고 치료받는 아까운 상담시간에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환자에게..남의 이야기 하지 말고 본인의 역사를 써 내려가면 좋겠다고 했단다. 환자분은 자기의 역사, 자기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는 꿈에 있던 카페를 시작하고..자기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되면서..행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환경이 변한 것은 없는데..말이다. 그렇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랑을 하라. 중학교 일 학년 된 제 손녀아이가 목사의 자녀로 살아가는 3가지 팁이 있다고 한다. 첫째, 인사를 크게 하기, 둘째 예의를 갖추기 셋째는 응답을 잘하기 ..라고 해서 웃었다. 그러면 목사의 자녀로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목사의 자녀는 아버지 목사가 자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까봐 노심초사한다. 저의 아이들도 그랬다. 웃픈 현실이다. 하지만 목사의 자녀만 그런가? 우리 모든 신자가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영리 복음은.. 1)하나님은 사랑이다. 2)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고 죄의 삯은 사망이고 지옥이다. 3)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 4)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으로 천국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다. 예수를 믿으시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복음은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나쁜 소식과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포함한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을 원하지만 참된 자유와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행위와 관계없는 완전한 사랑을 공급받게 되고 그 사랑은 우리를 완전한 자유와 행복으로 인도하게 된다. 학교에서 교사로 가르쳐 본 일이 있다. 같은 교과서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한반 두반 세반..계속해서 같은 내용을 가르치다 보니까..내가 더 잘 배운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바로 내가 복음을 더 잘 배우고 믿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도와 홍보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전단지 하나 들고 어깨 띠를 두른 체 전도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홍보하고 있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교회는 변해야 한다. 전도는 내 삶이 기반이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전단지 한번 던져 놓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열매 맺으시는게 아니라 내 삶이 씨앗이 되어 삶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이웃에게 열매를 맺게 하신다. 결국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전도는 동일한 삶 속에서도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복음을 설득력 있게 삶과 말로 증거 할 때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복음은 오늘도 여전히 사람을 변화시킨다. 마태효과처럼..충성하는 자가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충성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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