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6:1-10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건지신 하나님"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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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6-10 14:15 조회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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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1 순교자기념주일예배  

 

<3분설교>

 

 

가스펠프로젝트 구약 6-4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건지신 하나님
본문 : 다니엘6:1-10

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230611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6-4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건지신 하나님”
             -제사장 된 다니엘의 승리-


     아들을 간병하는 엄마에게 큰 숙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이 우유를 마시기 위해 힘들게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빨대가 꼽혀 있어도 몸을 일으켜야 하다니 너무 불편해. 누워서도 먹을 수 있는 빨대를 만들 수는 없을까?’
주부는 이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아들이 퇴원한 후에도 직접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리고 발명한 것이 지금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주름이 있어 접히는 빨대’이다. 빨대는 5,000여 년 전 이집트에서 개발되어 지푸라기에서 플라스틱으로 재질만 변했을 뿐 기능과 구조는 그대로였다. 5,000여 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빨대를 새롭게 바꾼 것은 아들의 불편함을 그냥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간절한 사랑에는 지난 5,000년 간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이루어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주셨다.(출15:6) 제사장이 하는 일은 중보자로..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역할이다. 그런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다를 바가 없다. 베드로 사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려는 것이라고 했다.(벧전2:9) 이런 면에서 다니엘은 제사장 나라..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신자의 제사장직’을 감당할 수 있었는가? 
     
첫째, 기도하는 제사장이다.(단6:1-10)
      다니엘의 기도는 5절에 보니까.. 율법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율법적인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활 규칙을 일관되게 지키는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주신 생활 규칙의 실천은 원수들이 인정할 정도였다.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10) 이런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기도는 다니엘로 하여금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총리나 고관들을 다스릴 능력이 되었고(3) 나라에 충성함에 있어서 그릇됨이나 허물이 없는 일군이 되었다.(4)  다니엘은 기도하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에..느브갓네살의 알지 못하는 꿈을 알려 주고 해몽까지 할 수 있었고... 벳사살 왕의 잔치에 벽에 쓴 손가락의 글씨를 알려 줄 수 있었다. 제국의 그 어떤 점쟁이나 무당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은 제사장의 기도였고 율법적인 기도생활이었다. 
       제사장의 기도는 이기적이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하신 것은..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과 같다. 성경의 절기에는 반드시 너와 네 가족은 물론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함께 잔치를 나누는 것이 있다. 성령 충만 받은 교회도 가진 것을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난한 자가 없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장의 기도를 하는 다니엘은 당연히..세상이..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알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살게 하기 위해..기도했다. 자기 출세만..자기 나라의 구원만..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 요셉이 함께 한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은 것처럼..다니엘과 함께 한 사람들이 다 복을 받았다. 예수님도 제사장의 기도를 하셨다. 밤을 새워 가시면서..인류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새벽에도..날마다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제사장 예수님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예수님의 기도, 다니엘의 기도는 제사장의 기도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축복을 위한 기도이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제사장적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가? 다니엘의 율법적인 기도, 생활적인 기도생활은 위기를 가져오게 했다. 마귀, 악한 영의 역사이다. 원수들은 다리오 왕을 위하는 척..다리오 왕 이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을 만들었다. 왕이 도장을 찍었다. 법이 시행이 되었다. 기한은 30일이다. 30일간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다니엘은 30일의 기한을 기다리지 않고 기도했다. 10절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죽을 것을 알면서도..악한 영의 역사라는 것을 알았기에..더욱 기도에 힘쓰는 다니엘이다.  거기에..감사까지 더하여 말이다. 얼마나 의연하고 거룩한 모습인가? 진정으로 제사장의 기도를 하고 있다. 작은 일에도 흥분하고 화를 내는..나를 생각해 보면서..회개를 했다. 다니엘은 무엇을 감사했을까?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축복한 것은 아닐까? 다니엘의 감사의 기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니아다.”하신 기도라는 생각이 든다.”스데반도 죽을 때에 원수들을 용서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니엘은 제사장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다. 신자 된 우리도 위기의 순간에도..죽을 것을 알면서도..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할 줄 아는 제사장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는 제사장의 기도를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둘째, 제물 된 제사장이다.(단6:11-18)
     다니엘은 기꺼이 제물 됨을 선택했다. 16절을 보라.  다니엘은 왕의 명령으로 사자 굴에 던져 졌다. 왕이 누군가? 자기를 누구보다 신뢰한다고 했고 높이겠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높이던 다니엘을 아무 죄도 없이..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고 했을 때, 그 배신감은 하늘을 치솟을 것이다. 물론 왕이 근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다니엘은 근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떤 원망이나 저항이나 이유를 달지 않았다. 기꺼이 사자 굴에 들어갔다. 너무도 조용히..순순히..죽음의 굴에 던져지는 상황이다. 그 모습은 진정으로 평안했다. 당황한 것은 오히려 다리오 왕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을 보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었다. 이사야 53:10에“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에스더는 어떤가? 유다백성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했기 때문에 유다백성들이 살게 되지 않았는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는 어떤가? 죽음이 왜 두렵지 않은가? 그러나 그 보다는 주를 위해 제물이 되는 영광을 선택했기 때문에 교회는 더 퍼져나가고 세계복음화를 이룬 것이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예배에 제물 되신 조상들의 신앙으로 서게 된 것이다. 가정도 제물 되는 부모가 있기에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가정을 위해..일터를 위해..어떤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구약의 제물은 3종류가 있다. 소..충성을 의미한다. 양..희생을 의미한다. 그리고 염소..앞장 서는 것을 의미한다. 주를 위하여 제물이 된다는 것은 바로 소처럼 충성하고 양처럼 희생하고 염소처럼 앞장서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사도바울이 말하는 거룩한 산 제사..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항아리를 메고 물을 날랐다. 그런데 한 항아리는 금이 가서 물이 새서 반밖에 채우지를 못했다. 금이 간 항아리가 주인에게 말한다. 손해나니까 나는 빼고 새 항아리로 물을 나르라고 했다. 그랬더니 주인이 하는 말, 물이 흐르지 않은 땅은 황무지가 되어 있지만 물이 흐른 길가에는 푸른  풀과 이쁜 꽃들이 자라는 것을 보라고..물을 흘려서 자라나는 꽃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제물이 되심으로 자라나는 꽃들을 보고 계신가? 제물이 되어 사시는가? 감사해야 한다. 다니엘은 적들과 싸우는 대신에 제물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하나님께 맡겨 버려라. 인간의 악한 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시고..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통치가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제물이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니나아와 삽비라의 거짓 헌금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헌신하고 제물이 되는 신자의 믿음을 기뻐하신다. 재산의 절반을 전부라고 하는 거짓의 영, 악한 영의 역사를 죽임으로 물리치셨다. 바나바, 위로자라는 별명을 가진 요셉을 귀히 여기시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에 직면해서 살아간다.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믿음의 제물 되기를 선택하라. 세상도 귀히 여긴다. 18절에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한다. 여러분에게 이런 제물 됨의 제사장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셋째, 증인 된 제사장이다.(단6:19-28)
        다니엘이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사자의 굴에서 살아났기 때문이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 진 것에 대해..책임을 통감하고 밤을 새워 금식했다. 이른 새벽..사자 굴을 찾아가서 다니엘을 불렀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20) 놀랍게도 살아 있는 다니엘이 대답한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22) 사자 굴에서 건져 올린 다니엘을 보니..몸이 하나도 상하지 아니했다. 이유는..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23) 하나님을 믿었기에..하나님이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지켜 주신 것이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사자 굴에 던졌다. 굶주렸던 사자들은 이들을 잡아먹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다리오 왕은..온 제국에 조서를 내렸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26,27).”다니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이다. 유명 설교자 로이드존스는 “기독교는 가르침이 아니라 인물(person)이다”라고 했다. 여러분 자신들이 증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하셨다. 여러분을 보는 것에 예수가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앵무새는 주인의 말을 따라하는 이야기를 보았다. 술 취한 사람을 주인으로 두니까..술 취한 사람의 말을 하는 술주정꾼이 되었는데..예수 잘 믿는 주인을 만나니까..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단다.  나는 앵무새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식이 아니라..건물이 아니라..말이 아니라...나 자신에게서 예수가 보여 질 수 있는..증인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온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 관련된 것들을.. 예수님보다 더 중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수를 믿고 있는 나”에게 집중하여..예수가 아닌 나의 증인이 되려한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는 것..귀신을 내 쫓았다는 것에도 주님은 모르신다고 하신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다. “나 자신의 증인”(마7:22)이 아니라 예수의 증인이 되라! 28절에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의 이런 신앙이 지속 가능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의 총리직은..바벨론이 아니라 페르시아이다. 나라가 바뀌는 데도 다니엘이 여전히 총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은 변해도..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다니엘을 보라! 그것은 총리직이라는 세상적인 권력과 힘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다니엘은 세상의 권력이나 자기의 욕심보다..먼저 하나님이 맡기신..신자의 제사장 직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켜 주시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신앙! 이다. 다니엘의 제사장 직에는 기도가 있고 제물이 있고 증인이라는 3가지 역할이 다 있다. 이것이 지속 가능의 신앙이다. 어느 하나만이 아니다. 어느 분이 자기는 선교사라고 한다. 물론 선교사는 아니다. 그런데 일하는 선교사라는 것이다. 하는 일하는 것도 그렇지만..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니..선교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에는 아직 멀었다. 매뉴얼대로..일은 잘하는데..선교사까지는 아니다. 제물 됨이 없다. 죽을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속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부족하다. 부한 자 같으나 가난한 자이다. 미국 프로농구 중에 한 선수가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러자..양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기도를 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선수가 더 크게 다치지 않고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기도했다. 큰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선수는 자신을 위해 경기 중 기도를 드렸다는 소식에..개인 SNS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나를 위해 기도드리는 동료들이 있기에 나는 누구보다 큰 축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와 새크라멘토 킹스 경기 중 부상한 맥카우)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기도한 대로 제물도 되고 증인도 될 수 있는..지속 가능한 신앙..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경험하는 축복이 여러분과 가정과 일터..그리고 아픔 속에 있는 분들에게 임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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