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8:1-6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치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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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3-07-29 10:52 조회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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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0 주일예배 안내

 

<3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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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프로젝트 구약 6-11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치다
본문 : 느헤미야8:1-6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30730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가스펠프로젝트 구약6-11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치다”(느헤미아6:1-6)

우리가 아는 느헤미야서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이다. 이제 성벽을 다 쌓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성벽은 중요하지만 성벽이 안전하게 지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백성들은 에스라에게서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치다!’이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찾자면 그것은 경청이다. 잘 알아듣는 것이 경청이다. 경청에 관해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세계 최대의 노트북 회사레노버의 회장 양위 안칭성공하겠다는 열정이 있었는데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다. 회장님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꾸지람을 들었다.“자네는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나?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자네의 성과도 나올 수 있는 거야!”사직서를 쓰는 중에 동료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알려 듣고는 사직서대신 반성문을 써서 회장님에게 찾아갔다. 회장은 능력이 좋지만 동료들과 불화를 일으켜 안타까워했던 양안 위칭의 반성문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후계자로 세웠다. 이것을 경청이라고 하는데요. 대기업의 회장이 되어 수십만 명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을 줄 아는 경청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도 경청의 중요성이 나온다.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건축과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런 건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상황이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식민지 백성으로 왕의 명령을 들어야 하고 대적들의 수많은 유혹과 모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축복받으며 살아가는 방법은 다름 아닌 경청이라는 것이다. 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가스펠프로젝트의 교재에 따라 은혜를 나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중점을 둡니다.(8:1-2)

느헤미야 8:1-2에 나타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예루살렘 성 새로이 수축된 성안에 살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일곱째 달에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든 백성이 수문 앞 넓은 광장에 모였다. 에스라는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한 학사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남자, 여자 차별이 없이 알아 들을 만한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들 모든 유다백성들은 남녀할 것 없이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율법을 히브리말로는토라라고 하는데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십계명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지켜야할 율법 613개의 계명을 만들었다. 예수님은 율법이요 선지자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두 가지 라고 하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로 선포하셨다. 선포는 어떤 일이나 법규 따위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을 선포라고 하지 않는가? 법규를 지킬 때 정부의 안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선포하시는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법규요 규칙이라는 율법에는 하나님의 안전과 보호와 축복이 있다. 신명기 30:15-16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생명과 복이 있고 생존과 번성이 있으며 땅에서 복을 주신다는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학사 에스라에게 요청을 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 말씀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합니다.(8:3-6)

두 번째는 경청이다. 어떻게 경청했는가? 8:3-6을 보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경청했다. 에스라가 특별히 마련된 강대에서 죄우에 13명의 보좌관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읽었고 백성들은 . 새벽부터 정오까지 거의 6시간을 경청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는 설교시간이 30분만 넘어도 힘들어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말씀에 생명과 복이 있고 생존과 번성이 있고 땅의 축복이라는 세상에서 현실적인 대안이고 지켜야 받을 법규라고 믿으니 그렇게 6시간을 서서들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대학입시에 나온다고 새벽부터 학원에 줄을 서는 것과 같다. 3 가지 정도의 반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경청했는데 1)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화답했다. 에스라가 성경을 펼치자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 에스라가 기도한 후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선언하자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화답한 것이다. 아멘은 동의한다는 뜻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도 미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후1:20) 2)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주님께 경배하는 동안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는 겸손한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그렇다 은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다. 겸손히 선포되는 말씀을 받으라! 3) 마치 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백성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백성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조화롭게 행동했다. 한 마음과 한 영이 되어 한 소망을 품고 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진정한 부흥은 공동체 안에 경험되는 법이다. 말씀으로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한남제일교회는 가스펠프로젝트를 통해 유치부에서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장년에 이르기까지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나눈다. 말씀으로 하나 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가스펠 프로젝트 교재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들의 경청하는 행동에 백성들이 따라서 경청했다는 것이다. 에스라가 하나님을 찬양하면 백성들은 따라서 찬양했다.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본을 보이고있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신앙의 본이다. 바울사도 역시 예수님을 본받은 것처럼 우리보고 자기를 본받으라고 했다.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학자 엘런 크라이머는 초대교회에는 아비투스가 있었는데 아비투스는 프랑스 말로 오랜 세월동안 습관화 된 생활방식을 의미한다. 초기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삶을 살고자하는 아비투수가 있었는데 우리의 아비투스는 무엇인가? 나를 보고 예수를 믿으세요!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의 본을 보이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어느 목사님을 만나니까 교인이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그 가정이 복을 받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10:41)하셨다. 여러분의 아비투스는 무엇인가? 축복받는 아비투스가 되어야 한다. 주의 종들을 영접하는 신앙인이요 평신도 리더가 되라. 지난 시간에 느헤미야가 자기 행위에 복을 달라고 한 것처럼 복을 받지 않는가? 복을 받게 믿으라! 구역장, 목장장 선교회장 그리고 청소년교회 교사들이나 찬양대의 먼저 된 대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을 실천함으로 말씀에 경청하는 아비투스의 문화를 만들어 가면 반드시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개인들은 축복받게 될 것이다. 경청의 축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은 회개와 책무로 반응합니다.(8:7-12)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 앞에 온 백성들이 경청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8:7-12을 보면, 회개와 책무로 삶이 변화되었다. 이들이 말씀을 경청하고 일어난 변화는 사람이 달라진 것이다. 먼저 1) 회개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울었다. 깨달음의 은혜요 축복이다.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7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성전을 세우고 성벽을 만들게 된 것은 약속을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울기 시작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참 사랑의 나의 하나님> 여기에는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할 때에 율법을 설명해 준 레위인들이 있었다. 바벨론에서 자란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했고 성경말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설명을 해 준 것이 바로 레위인이다. 유다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중에 없는 성전 대신에 회당을 만들어서 말씀을 들었는데 예수님도 회당에서 말씀을 읽고 설명하셨다. 바울사도역시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해석해 주는 것은 익숙했다. 지금은 목사가 낭독된 말씀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다. 본문의 원어이해와 역사적 배경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교리에 맞추고 현실에 반영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대학을 나오고 목사안수를 받고 계속 공부하고 있다는 그 전문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전해 주셔도 듣지 못하는 자가 있고 유명한 바울사도가 전해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말씀의 은헤를 받는 분들은 개떡같이 전해도 찰떡같이 듣는다.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부르고 할 때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축복이다. 말씀을 듣고 울고 회개하는 것이 첫 번째 말씀의 역사이다. 다음으로는 2) 기뻐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우는 것으로만이 아니라고 했다 9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기뻐하라고 했다. “10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그 기쁨은 무엇인가? “10상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백성들은 순종했다.“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저는 소원 중에 하나가 큰 예배당에서 설교하는 것이었다. 영락교회 전도사때 박목사님께서 그 큰 예배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주셨다. 무슨 설교를 했는지 모르지만 큰 예배당에서도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 한남제일교회예배당은 작았다. 건축의 소망 중에는 큰 예배당에대한 소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연합회관 넓은 곳에서 설교를 하니 소원하나는 이루어 주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말씀처럼 주의 성일에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가 가난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끼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있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간단하게 먹자고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런데 백주년회관에서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잘 먹을 수 있어서 기쁘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앞으로도 교회는 잘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크게 즐거워하며 나눌 줄 아는 삶이 말씀 역사자체가 축복이다

 

여기서 누가 부자인지를 질문을 해 보자! 많이 가진 자가 부자는 세상에 많다. 정말 많다. 그런데 나누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부자는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초기 예루살렘 교회나 안디옥교회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등은 정말 부자이다. 나눌 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별이 없이 나눌 줄 아니까 안디옥교회에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선교의 시작도 다 나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간다. 우리 한남제일교회가 그리스도인처럼 살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보다도 더 나누는 사역이 많다. 먼저 주의 종들이다. 일대 목사님, 장애를 입은 목사님, 혼자된 목사님도 섬겨주셨다는 것은 한국교회에도 자랑이 되기도 하다. 다음은 선교사이다. 필리핀 빈민촌의 P선교사, M국의 O선교사, 동티모르의 L선교사, 그리고 칠레의 차흥주 선교사 등을 파송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K선교사, 몽골의 J선교사 등을 선교회를 조직하여 협력선교하고 그 외에 아프리카 케냐, 잠비아, 모잠비크, 인도네시아 등을 선교한 역사도 있다. 선교회를 통해 중국과 북한에 예배당을 지은 일은 잊어서는 안 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인터내셔날 처치사역으로 이슬람이나 난민들을 섬기고 있다. 국내의 개척교회를 돕는 일이다. 총회를 통해서 돕는 교회들은 물론 직접 돕고 섬기는 교회들도 있고 작은 교회 살리기 연합과 같이 우리 교회에서 시작이 되어 단체를 조직하여 돕는 일도 있다. 지역사회를 향하여는 용산 한 가족 돕기 사업으로 30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효도관광, 절기 구제 마을 공동체 사업은 물론 카페 쉼터, 그리고 한남노인요양원, 한남어린이집 그리고 서울아동키움쎈터 등 시설도 있고 바이올린 교실과 같은 마을공동체프로그램이나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 섬김 등 수많은 섬김은 신문방송의 취재다상이 되고 있다. 제가 지난번에 기독교 티비 생방송에 나가게 된 것도 다 공동육아라는 지역 섬김을 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한국교회는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복음 안에서 지역을 섬기고 나누는 일이 많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경청으로 인한 삶의 변화 나눔으로의 삶의 변화야 말로 축복받은 부자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아닌가? 여러분들과 함께 세워가야 할 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눔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교회이다. 제사장, 선지자, 왕의 시스템을 실천하는 청소년교회는 우리 교회의 축복된 미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시작에서도 보았듯이 양안 위칭이 레노버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경청이었다. 유다백성들의 승리도 경청이다. 성전과 무너진 성벽 등 보이는 건물은 돈으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시고 우리로 말씀을 경청하고 나눔의 삶을 실천하게 하심으로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심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하셨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인 롱펠로우를 보아도 경청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첫 사랑과 결혼하여 행복한 나날을 꿈꾸었지만 병으로 4년 만에 혼자가 되었다. 훗날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과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집에 불이나 아내가 죽은 일이 생긴다. 얼마나 불행한 일의 연속인가? 그런데도 롱펠로우는 첫 아내가 죽었을 때 인생찬가를 지었다. <슬픈 말투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단지 헛된 꿈이라고! .죽은 과거는 죽은 채로 묻어두어라! 행동하라, 살아있는 지금 행동하라! 가슴 속에, 그리고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니! > 그리고 두 번째 아내가 죽었을 때에는 단테의 신곡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책을 번역하고는 수많은 예수님에 관한 글을 썼다. 절망 속에서 롱펠로우는 자기 집 정원에 있는 늙은 사과나무를 보았다고 한다. 사과나무는 늙고 다 죽은 것 같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죽은 것 같은 늙은 나무에도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하나님 안에서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의 경청이 불행 중에도 인생예찬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다.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을 가지게 한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대한 경청이다. 그래서 인생찬가 중에는 < 위대한 사람들의 인생이 우리에게 말해주니, 우리도 숭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리고 떠날 땐, 시간의 모래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 글도 있다. 여러분은 경청하고 있는가? 여전히 하나님 안에서 인생의 발자국을 남기고 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유다백성들이 말씀으로 돌아와 나눔의 기쁨이라는 새로운 삶의 발자국을 남겼듯이 여러분 한남제일의 성도들도 성전건축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통해 시간의 모레위에 우리의 발자국, 말씀축복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 말씀경청으로의 변화를 이루라. 교회는 물론 개인과 가정 그리고 직장과 동리에서 돈과 권력의 세상에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경청의 나눔 실천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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