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2:1-12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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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1-27 17:28 조회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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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8 주일예배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대제사장 예수님>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침상을 들어주는 부자교회>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2-10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다"
본문 : 마가복음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240128가스펠2-10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다!”(2:1-12)

 

오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기적이다. 죄 사함의 증거로 침상에 누워서 왔던 사람이 상을 들고 나가는 것을 보여 주셨다. 가버나움 동네에 예수님이 가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들었는지 이미 문 앞 입구까지 막아섰다. 4명의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들고는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 하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구부터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옥상 지붕으로 올라갔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만한 곳의 지붕을 뚫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집은 지붕을 나뭇가지로 엮어서 점토를 발라 만들었기에 그것을 걷어내고 구멍을 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 이 상황을 다 보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지붕을 뚫어서 라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이들의 믿음을 감동을 하셨다. “친구들의 믿음을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그런데 그 자리에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이 있었다.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서로 말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런 율법학자들과 같은 신자들이 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 마음중심을 아셨다. “어찌하여 이것을 신성모독이라고 마음에 생각하느냐?”“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중풍병자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중풍병자는 곧 일어나 상을 가지고 사람들 앞을 지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다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 예수님의 기적은 한낱 이야기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중풍병자 침상에 누워왔던 사람이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 우리는 지금 침상을 드는 자인가? 아직도 침상에 누워있는 자인가? 먼저 가버나움과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첫째 가버나움은 구원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다.

교회에는 주님이 계신다. 가버나움에도 주님이 계셨다. 예수님의 공생에 초기에 주로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셨다.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백부장 하인의 병과 베드로 장모의 열병도 고쳐 주셨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기도 했다. 세관이 있어서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특징은 죄인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죄인들을 받아 주심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가버나움처럼 예수로 구원받는 곳이다. 오늘 친구들의 믿음으로 중풍병자가 죄 사함과 함께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가버나움은 구원의 역사가 있는 주님의 교회이다.

 

둘째, 예수님은 죄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대제사장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 대제사장의 일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받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제사장은 제물에 손을 얹고 안수한다. “주여, 죄인의 죄를 이 제물에 얻어 놓겠습니다. 제물을 받으시고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죄를 짊어진 제물은 제단의 불 위에 태워진다. 제사장은 제사 후에 네 죄가 사해 졌다!”선언함으로 죄인은 죄에서 자유 함을 얻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대제사장이 되셔서 죄 용서를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과 담을 쌓았던 인생이 화평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찬송가 260<3. 나 지금 죄에서 사함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겠네. 1.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16 그러므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4,16) 예수님은 죄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는 대제사장이다.

 

예수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셨다. 그리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 주시고는 누워있던 그 침상을 들고 가게 하셨다. 친구들의 믿음은 3가지이다. 1) 친구사랑의 믿음-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붕을 뚫음으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알지만 그 보다도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 형제 사랑하는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축복하신 것이다. 2) 예수 사랑의 믿음-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믿음이 너를 구원한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믿는 행동하는 믿음이 문제를 해결한다. 주님을 믿는 믿음이 구원을 받게 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리고 주님을 신뢰할 때, 이런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의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을까? 일단은 사랑이 부족해서일 것이고, 또 사랑을 해도 주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잘 믿는다고, 믿음이 좋다고 하면서도, 지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죄인을 살리는 믿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형제자매를 향한 사랑과 주님을 향한 믿음은 이처럼 언제나 같이 간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 기도하지 않는가?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걸 믿는다. 다른 방법을 찾는다. 주님께로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주님의 기적을 못 보는 것이다. 기도하자!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다. 중풍병자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자기를 이토록 사랑하고 애쓰면서 지붕까지 뜯어 내려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대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다. 병의 고침뿐 아니라, 죄 사함까지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는 영적 축복을 받았다. 예수님은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하시는 말씀 중에는 이런 친구들의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형제사랑의 믿음, 예수사랑의 믿음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기적, 하나님의 일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 침상을 들고 온 친구의 믿음에 주님은 역사하셨다. 죄 사함과 침상을 들고 가게 하시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친구의 침상을 들고 주님게 오는 믿음을 원하신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친구의 침상을 들고 오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집에서 떡을 떼는 새로운 삶을 살았다.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서로의 필요를 따라 자기의 것을 나누었다.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으면 사도들이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는 성령충만하고 지혜있고 교인들의 인정을 받는 일곱 집사를 선택하여 나누어 주었다.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부자가 되고 출세한 것은 아니다. 재정적으로도 부족했고 사회적으로도 신분은 낮은 그대로이지만 가난하지는 않고 부저처럼 살았았다는 것이 초대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다. 우리 교회도 침상을 들고 주님께 오는 친구들의 믿음의 공동체가 될 때 부자처럼 살게 하실 것이다. 우리들 중에 침상에 눕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병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먹는 약 만해도 한 주먹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며칠 전에도 신문을 보니까 서울의 고등학교 두 곳이 폐교를 했단다. 젊은 사람의 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생긴 현상이다. 우리나라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라고 하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현실적으로도 나라의 빚도 많고 노인들도 많은데 .인구가 적어지는 젊은이들이 이 감당을 해야 한다니 걱정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친구의 침상을 들고 주님께 나아오라고 말이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한 목회를 간증한다. 우리 교회는 돈 많은 교회는 아니다. 부자인 교인들도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부자교회이다. 지역에서난 교단 적으로도 부자교회로 소문이 났다. 우리 교회가 하는 단독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나 요양원이나 어린이집 방과 후 교실 같은 사역들은 하나같이 부자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부자 교회의 간증들이 많이 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부임했을 때, 예배당 지하에서 사찰 집사님 댁과 함께 살았다. 그 전에는 전도사님도 사셨다고 한다. 주일에는 주방이 되고 식당이 되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 함께 화장실도 없이 사는 것이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임 이사를 할 때, 아내가 오지 않는다고 할까봐 걱정 많이 했다. 다행히도 아내가 말없이 함께 해 주었다. 교회에 선을 보러 오던 날은 수요일이었다. 저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교회를 물어물어 찾아오는데 아는 분들이 별로 없다. 예배당 앞에서도 모른다. 아마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교회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큰 기도제목을 가졌다. “하나님 우리 한남제일교회 누구나 잘 아는 교회가 되게 해 주세요!”그리고 우리 교인들 다 부자처럼 살게 해 주세요!”부자가 되는 일은 여건상 쉽지 않지만 부자처럼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부자는 불평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고 남이 하지 않는 일,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과감하게 간다는 다는 것이다. 교회 부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에게 새해에 세배를 다녔다. 장로님들께서는 목사님이 무슨 절을 하시면서 맞절을 하시고 반겨 주셨다. 정말 아버지처럼 섬겼다. 많이는 아니지만 설이나 명절에 선물도 하고 그런 선물은 지금도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님들에게 계속하고 있다. 당회 회의를 마치면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정말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이렇게 목사는 장로의 침상을 들어 주고 장로는 목사의 침상을 들어주어 리더십을 세워줌으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교회처럼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제가 생각할 때에는 1대 고 목사님께 미국으로 매달 500불 씩 선교비를 보내 드린 것이나 장애를 입은 이 목사님을 19년이나 부목사로 섬길 수 있었던 일은 부자 교회도 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섬김 이다. 한국교회에도 세계교회에도 드문 일이다. 우리는 부자교회이다. 침상을 들고 주님께 오는 믿음만이 할 수 있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침상을 들어주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목사장로의 침상 들어주는 귀한 믿음의 결과이다. 이런 섬김은 목회자신문에도 크게 소개가 되었다. 늘 감사하다. 권사님들과도 예외는 아니다. 권사님들도 젊은 목사의 침상을 들어 주셨다. 나는 내 어머니처럼 가족처럼 섬겼다. 심방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집에도 들어가고 피자도 먹었다. 언제는 남산 케이블카도 탔다. 이런 일은 친어머니와도 못한 일이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의 리더들이 행복해야 교회공동체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서 노회에서는 부자교회만 할 수 있었던 정기노회를 작은 교회인 우리 교회보고 유치해 보라고 했다. 권사님들에게는 식사준비가 큰 어려움인데 할 수 없다고 하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도 멋지게 해냈다. 멋진 권사님들이 있어 부자교회가 된 것이다. 장로님들께서는 예배당에 장로석을 없애고 예배 후 줄 서서 인사하는 것도 하지 않고 나중에는 강대에서 의자까지 내려놓으셨다. 권위를 내려놓으시고 섬기시겠다는 의지는 부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 주님께서 상을 들고 온 친구들의 믿음으로 보시고 축복하셨다. 어제도 2024용산구 교구협의회 신년감사예배를 드렸는데 많이 모였다. 제가 용산교구협의회 회장이 되고 가장 처음 한 일이 1300명이 모여서 신년 예배를 드린 것이다. 가을에는 자선음악회를 했다. 과거에는 많이 모여야 100명도 안됐는데 제가 600명분의 식사 값을 준비했는데 1300명이 식사를 했다. 교회예산은 없으니까 제가 혼자 준비를 했다. 아내도 돕고 동생도 도왔다. 나중에 부족한 예산은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이렇게 1300명이 모인 조찬기도회는 전국에서 최고이고 세계적으로도 없는 일이다. 진정 부자 아닌가? 항상 전화를 대기 상태로 24시간을 대기 상태로 놓았는데 밤에라도 연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을 한다든지 하면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달려가야 했다. 특히 장례를 직접 진행했던 일이다. 지금은 거의가 병원이나 상조회가 하던 일을 목사인 제가 직접 시신을 모셨다.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고 관을 묶고 묘지에 모셨는데 공장에 연락을 해서 가장 좋은 수의와 15푼의 값비싼 관을 적은 돈으로 잘 모셨다. 상가 집은 일가친척들에게 부자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시신을 알콜로 닦고 관에 모시는 일은 한 겨울에도 땀이 온몸을 적신다. 여름에는 냄새도 심하고 땀을 비오듯 흘린다. 참 수고를 많이 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방을 가도 가난한 가정에 부담을 드리지 않으려고 가난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식사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가격을 싼 것으로 정하려고 하는 등 진심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 주일에 교회에 오시는 분들에게 웰컴 티를 준비라는 것은 부자교회나 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하고 있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도 준비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로쿰이라는 과자를 하나씩이라도 나누고 싶었고 이번에도 대추야자를 하나씩 나누었다. 그 날 처음 교회에 방문하신 분이 이런 교회도 있는가? 놀라워했던 분에게 우리 교회는 원래 그래요!”인사했던 기억이 있다. 지역에서 처음으로 제주도로 구역장수련회를 떠났다. 설악산 단풍놀이도 갔다. 처음으로 여행을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87, 사택을 박 장로님 댁 이층을 전세로 옮기고 예배당을 리모델링했다. 본당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당시에는 부자교회만 냉방시설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어컨 회사에서 동력을 끌지 않으면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제가 기도 중에 곰곰이 생각하는 중에 큰 집에는 에어컨이 여러 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집은 왜 동력이 없이도 에어컨을 여러 대 설치하는가? 그래서 우리 교회도 동력을 끌지 않고 작은 것은 4대를 설치했다. 이웃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 한남제일교회 에어컨 설치 한 것을 보고 냉방장치를 할 수 있었다. 지하에 식당을 꾸몄다. 주방설치 회사에서는 이런 저런 것을 해야 하는데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 직접 주방 설계를 했는데 지금까지 잘 썼다. 주방이 생기니까 일하시는 분들이 힘이 나서 밥도 맛있었다. 1층 입구에는 생수통을 놓았다. 아기 엄마들이 물을 끓여가지고 교회에 오는 불편함을 덜어 주기 위해서 인데 대형교회도 자극을 받아 생수통을 설치했다고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찬양대가 부자교회만 할 수 있었던 큰 공연장의 공연울 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KBS홀에서 부활절 찬양을 35주년 북한 어린이 돕기 음악회를 영락교회 1500여석을 거의 채웠던 것이다. 저는 늘 말했다. “역사는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했던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이런 침상을 들고 주님께 가고자 했을 때, 주님은 지혜도 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축복도 주시는 것이다. 부자교회인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친구의 침상을 들고 주님께 나오라고 하신다. 침상을 들고 주님께 가면 반드시 기적의 역사를 이루신다. 저는 여러분이 사랑받고 높임 받고 축복받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는 죄의 문제로 인해 중풍병자와 같이 고통 받고 사는 이들이 많다.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도 있다. 그 중에는 교인도 있고 장로님도 있고 목사님도 예외는 아니다. 형제사랑으로 서로 섬기고 돕고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죄 사함과 병을 치유 받은 이에게 상을 들고 가라고 하신다. 친구 4명이 중풍병자의 상을 든 것처럼 너도 세상 병자들의 침상을 들고 주님께로 인도하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대형교회가 많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천주교, 불교 다음에 기독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목회의 비전 중의 하나가 지역사회에서 천주교를 넘어서는 신뢰 받는 교회와 교인이 되자는 것이다. 우리도 침상을 들어 주님께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 갈 때 하나님께서는 크신 복을 주실 줄로 믿는다.

 

 

설교 중에 하지 못한 부자교회로의 에피소드들

1) 지난 주간에도 동사무소에서 구민대회를 하는데 봉고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세차를 하고 가장 좋은 차를 빌려 주었다. 어떤 해에는 동회에 새로 부임한 직원이 두 번이나 저에게 전화를 해서 진짜 빌려 주시는 거예요?”그렇다고 하니까 이런 교회는 처음 봤다고 하면서 감사해 한 적도 있다. 교회의 공간들을 지역과 공유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구청장 선거 등 투표장소로 오랜 시간 기꺼이 사용하게 했다. 덕분에 저는 용산구청에서 공유위원장을 맡아 여러 교회와 단체들이 공간은 물론 기구나 재주 등을 서로 돕고 돕는 일을 하게 했다. 담당공무원은 서울시 표창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저 역시도 주민대상 등 서울시와 용산구청 등에서 표창 등을 받은 것이 수도 없다. 교육관을 구입하고 정원을 마을 정원으로 만들어 서울시의 표창을 받았고 외국인을 위한 예배처소를 마련해 드리고 교단 총회에서는 국내 외국인을 위한 선교에 대한 표창을 받았다. 지금도 게스트하우스에는 몽골에서 오신 목회자들이 묵고 있는데 전국의 수만의 교회 중에 게스트하우스로 섬기는 교회는 아주 작다.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고 돕는 일에 항상 마음을 썼다. 부자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 교회는 부자교회이다.

 

2) 우리 장로님 중에 한 분이 빌라에 사시는데 옆집의 주민들이 쓰레기 문제로 다퉈서 중제를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데 한남제일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금방 화해를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까 손자가 우리 교회에서 하는 미술교실을 다닌다는 것이다. 미술교실은 한남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는데 교회에서 공간을 빌려 줄 수 있냐고 해서 쾌히 승낙을 했다.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 가끔 간식도 주고 해서 이들에게 교회는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 준 것 같다. 그래서 한남제일교회라는 말만 듣고도 싸움을 멈추었다고 장로님이 자랑스럽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부자 교회 장로님이다.

 

3) 정부에서 고독사문제가 생겨서 그 대책으로 교회는 독거노인 도시락 봉사를 시작했다. 한 때는 200여명 학생과 학부모가 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드는 등 한남동 최고의 봉사활동 중의 하나이었다. 기독교신문과 방송에서는 한남제일교회를 알리기 시작했고 선교적 교회의 도시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지금도 한남노인요양원이나 한남어린이집 이전에 한남동 어린이 키움쎈터 그리고 마을공동체 그 중에 공동육아는 서울시의 모범사례가 되어 소개 되었다. 이렇게 많이 알려진 교회는 쉽지 않다. 세상의 빛이 되는 한남제일교회이다.

 

4)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식탁을 정리해 주고 감사하게 잘 먹었노라고 인사하고 나오니까 주인 부부가 나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받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제사장으로 예배를 잘 드리고 선지자로 제자훈련이나 선교는 잘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새벽기도가 있고 세계2위의 선교대국이다. 그런데 하나! 왕으로 섬기는 삶을 잘 하지 못한다.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기독인 실업인들의 모임에서 사장님들이 그리스도인은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그리스도인조차도 믿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다스림의 권세를 주셨지만 죄로 인해 상실 되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스림의 권세를 회복시켜 주셨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시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길을 가던 직장에서 일을 하던 학교에 가던 모든 분들을 섬기는 것이 왕이 되는 것이다.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진정한 세상의 빛을 비추어 밝게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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