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0:24-29 "부활하신 왕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만나시다"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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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4-20 17:51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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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주일예배 


요한복음20:24-29
"부활하신 왕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만나시다"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40421 가스펠프로젝트신약3-9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부활하신 왕께서 의심하는 제자들을 만나시다(20:24-29)

 

 

예수님은 부활체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왕으로 우리안에 계신다. 생명이란 단어는 정의하기 매우 어렵다. 생명이란 살아있는 생물이 숨 쉬고 활동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 우리는 살아있으니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 생명이라는 단어가 확장되어 사람, 생물 뿐 아니라 자연의 세계와 온라인 세상까지도 생명을 사용하니 그 생과 사의 구분을 어디인지 정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생명이 무엇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죽으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은 뒤에 생명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예수를 주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교회에도 그 생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교회도 살아있는 생명공동체이다. 계시록 2-3장에 보면 일곱교회에 대한 예언 중 사데교회에 하신 말씀을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라고 한다. 죽다라는 동사를 넘어 죽은 자라고 인격체로 말씀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은 육의 생명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도 살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고 믿음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공동체이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늘 그분의 호흡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를 축원한다.

1. 도마가 믿음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20:24-25)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는 마음 가운데 의심과 싸우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짜일까? 그리고 그 마음에는 서운함도 묻어난다. ‘, 나만 빼고 다른 제자들에게만 보이셨지?’‘나에게는 그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실까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도마는 믿음의 조건을 제시한다. 내가 예수님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아야 믿겠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 한다. 단순한 단어의 정의로 보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 사실을 마음에서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확인하고자 하는 사건들이 몇 차례 나타난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놓고 기도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다 그럴 수 있겠나. 우리가 잘 아는 모세도 불붙은 떨기나무 사이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3:11)라고 한다. 그의 보내심을 믿지 못하고 재차 확인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미디안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은 기드온도 처음에는 의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6: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39“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라고 한다. 두 번이나 믿음의 조건을 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리만큼 그 조건을 다 들어 주신다. 그에게 사명의 확신을 갖도록 그 기도한 대로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큰 일들을 행한 선지자들도 처음부터 전적으로 믿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신대로 사용하시기 위해 믿음을 더하여 주셨고 결국 승리하였다. 오늘 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믿음의 조건을 걸었다.

도마는 디두모라는 별명을 가졌다. 쌍둥이라는 뜻이다. 특히 일란성 쌍둥이라면 누가 누구인지 외모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들의 경험에는 다른 사람들이 형제와 많이 헷갈립니다. 그리고 내가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하는 여러 경험이 생깁니다. 확인해야만 알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얘는 쌍둥이야라는 말로 오해를 푼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도마는 쌍둥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여러 오해를 실제로 행동하고 확인해야 하는 의심부터 하는 특징을 나타냈을 것이다.

도마는 성경에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크게 세 번의 사건이 나옵니다. 첫 번째로 나사로가 죽었을 때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한다. 우리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11:16) 라고 했다. 행동으로 그의 믿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거처를 준비하러간다는 말에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14:5)라고 한다. 여기에서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를 듣게 된다. 도마는 예수님을 진정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다. 진짜로 그 길을 당장이라도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신 후 오늘의 일이다. 도마의 특징이 나타난다. 행동이다. 도마의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사실 도마의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행동하고자 하는 도마의 확신 단계이. 성경적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신뢰하는 전인격적 행위이다. , 단순한 지식의 차원을 넘어 구주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전환하며, 하나님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믿음이다. 도마의 조건은 믿지 않기 위해서 내건 것이 아니라, 더욱 분명히 믿고 믿음의 행동을 결단하기 위해 제시간 조건이다. 가만히 있다고 생각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 종종하나님을 믿기는 하는데 교회는 안갈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참 아프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데, 정말로 주님의 진리 안에 믿을 생각을 하지 않고 변명의 도구로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

우리 안에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어떤 어려움도 주님 앞에 다 맡기고 참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기 바란다. 믿지 않기 위해서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믿기 위해 오늘도 주님께 간구하시길 축원한다.

 

2. 예수님이 믿음을 명령하셨습니다(20:26-27)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8일 만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같은 말씀을 합니다.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그리고 이번에는 특별히 도마에게 말씀하신다. “손가락을 넣어보아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어라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도마에게 충격을 준다. ‘분명히 내가 이전에 말할 때는 예수님이 없었는데 내가 한 말을 어떻게 아시지?’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말에 분명하게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도마가 믿음의 조건을 걸었지만 이에 화를 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허용해 준다. “그 손가락 내밀어라. 그리고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누구보다 도마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의 의심을 다 품어 주신다. 지금의 의심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불확실함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알게 되고 더 확실해지는 단계가 됩니다. 더욱 잘 믿기 위해, 너무 잘 믿고 싶어서 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도마의 방식을 허락하셨다.

우리가 성화로 잘 알고 있는 의심하는 도마라는 그림이 있다. 여기에 보면 도마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는 장면으로 그렸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도마는 과연 손가락을 넣었을까? 넣지 않았을까? 넣었다는 구절은 없다. 이 성화의 그림같이 도마가 손가락을 넣어 확인해보고 믿은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신앙은 의심이 다 제거했기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미 나를 사랑하시고, 나 말에 귀 기울이시고, 나에게 찾아와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계신 데 의심들을 하나하나 다 확인해야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성경적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느끼고, 그분을 의지하고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믿음을 우리에게 갖기를 명령하셨다. 믿음을 위해 필요하면 다 확인해 줄 수도 있겠으니, 제발 믿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진실한 바람이 나타난다.

장신대 학생일 때 좋은 기회로 연극을 배운 적이 있다. ‘빈방 있습니까라는 성극을 쓴 최종률 장로님께서 지도하고 ‘He()’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다. 예수의 생애를 다룬 극이었다. 그때 제가 맡은 역할이 도마였다. 극 중 계속해서 예수님만 졸졸 따라다니다 단 두 마디 대사만 있었다. 6개월간 배워서 연습을 많이 하는데 내가 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사가 별로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다 공연 날이 되어 연극을 하려고 하니 점점 떨린다. 대사가 별로 없는데도 떨린다. 그 두 마디 말을 하려니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안 돼서 더 떨린다. 사실 연극을 다 마칠 때까지도 도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닌 도마의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주인공이 아닌 제자로, 확신을 갖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그런데 그 보다 예수님의 그를 향해 하신 이 사랑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도마는 그 말씀 때문에 평생을 살아갈 기준이 생겼을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믿는 자로 담대히 살아갔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인정받은 자로 평생을 헌신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신 것은 대단한 것이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누구나 해야 하는 것 바로 믿음이다.

 

3. 도마가 신앙고백을 했습니다(20:28-29)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믿음은 결국은 영혼 구원(벧전1:9)이다. 도마는 그간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며 들은 모든 것을 확신을 가지고 나아 갈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의심을 반복하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가 주 되심을 확실히 믿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구원하고자 하는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이제는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결단하였다.

미국에 새로운 골프 황제로 불리는 셰플러라는 선수가 있다. 세계랭킹 1위이자 19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최근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의 우승을 한 후 이렇게 우승 소감을 말하였다. "나는 이 재능의 선물을 받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골프를 하는 이유는 제 삶에서 하나님의 주신 모든 일을 영광스럽게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의 믿음은 승리할 수 있다는 결과의 믿음이 아닌, 예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존재의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기도하고 큐티하기 위해 신앙인 친구를 캐디로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고백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연애를 시작할 때나 고백했을까 어색한 행동이다. 어떤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백도 없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제는 늙어서 사랑 고백 한 번 받지 못했다는 설움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고백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배우자나 자녀에게도 날마다 사랑 고백을 할 수 있다. 익숙하다고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고백해야 알 수 있다. 그것도 그때 그때마다 고백해야 한다. 사람 간의 고백도 값진데 오늘 도마의 이 믿음의 고백은 차원이 다르다. 그간 수없이 예수님을 통해 사랑한다고 말씀하신 은혜에 도마는 믿음으로 고백한다. 늦지 않았다. 그 시간이 얼마가 걸렸든, 어떠한 방법으로 하게 되었든, 우리는 믿음을 고백함으로 변화를 받아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존재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도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을 찾아내는 믿음이 가득하길 축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을 따라 보지 못하고도 믿는 자이다. 예수님의 복된 생명이 있는 자이다. 예수님을 따라 어디를 가든지 담대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승리한 자이다. 그 자리가 어디이든지 제사장으로 주님을 고백하며 예배드리고, 선지자로 세상을 향해 주님을 증거하며 믿음을 고백하고, 왕으로 나의 모든 삶에 주님의 영광을 돌리며 주를 고백하자.

의심에는 생명이 없다. 그 걱정과 불안으로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부활체이다. 우리 생명은 믿음이 있으면 생명이고 믿음이 없으면 죽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더욱 알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주님께 날마다 기도하며 응답받는 우리 한남제일교회 생명공동체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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