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1:1-23 "부활하신 왕께서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다"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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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4-27 16:03 조회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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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8 주일예배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3-10

설교자 : 고노아 목사​
제목 : "부활하신 왕께서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다"
본문 : 요한복음21:1-23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 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240428 가스펠프로젝트신약3-10 한남제일교회 고노아목사

 

부활하신 왕께서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다(요한복음21:1-14)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의 부록 같은 말씀이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과 베드로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예수님 가장 사랑받고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과의 가장 강력했던 마지막 만남을 기록한다. 이것은 간증이자 이것이 사도의 정체성이다.

이미 20장 마지막을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로 요한복음의 목적인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는 복음을 기록하며 마친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평생 사명자이자 사도로 살아가는 베드로와 요한의 다시 부르심의 말씀을 들려준다.

우리가 어떠한 권리를 가지려 하면 확인하는 절차들이 있다. 며칠 전에 후배의 목사안수식에 갔다. 안수식 후 저녁 뷔페에 갔다. 동그란 스티커를 옷에 붙여 주며 입장 확인한다. 그러다가 식사 중 스티커가 떨어지고 없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하는데 혹시 스티커를 보여 달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될까? 걱정이 되었다. 스티커가 없어졌다고 속직히 말을 할까? 아니면 저 아까 봤잖아요? 제가 화장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잖아요? 라고 할까 할말을 준비했다. 그런데 묻지 않았다. 참 다행이었다.

우리는 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에도 그것을 다시 확인한다고 하면 불안하거나 움츠러들게도 된다. 이때 우리는 불안감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자격이 있나 갈등이 된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고 여러 직분을 받았기에 자격이 있다 말하기도,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반복된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직분을 맡기셨나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이렇게 까지 고생 했어라는 자기 희생을 먼저 드러내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의 마지막 이야기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말씀을 다시 확인하고 확신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한다.

 

1. 예수님은 능력과 예비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1-14)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자기가 누구인지 보여주시고 그 앞에 나타나신다. 그리고믿는자가 되라라고 수 없이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제자들은 실수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믿는자에게 구원이 주어지지만, 당장 믿는다고 변화되지 않는다.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함께 계시지 않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어떠한 일이든 스스로 감당해보지 못 해봤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지금 함께 있다. 베드로와 도마, 야고보,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들이 함께 있다. ‘함께는 힘이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한다면 그곳에는 힘이 있다. 그러나 함께 있다고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선거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전제가 있다. 이를 잘 살펴보면 다수결의 원칙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라 차악의 방법, 곧 최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제자들은 지금 함께 모여 있다. 그런데 그들의 리더격인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라고 말하니 다른제자들도 그를 따른다. 베드로는 원래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고, 물고기를 잡던 중에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 후 보이지 함께 하지 않자 다시 물고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 그저 할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이다. 베드로도 없는데 여기에 남아 뭘 하겠는가?

우리는 이 제자들의 모습과 같을 때가 많다. 할 수 있는것으로 나 스스로를 제한한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 목적을 기준삼지 않고 문제가 안나도록만 하려고 한다. 혼자하면 불안하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저희 셋째가 말을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엄마그리고 배운 것이 맘마그리고 세 번째가 나도이다. 누나들이 먹는 것은 무조건 나도 먹겠다는 것이다. 나만 빠지면 웬지 서운해 지고 불안해 지는 것과 같다.

제자들이 함께 물고기를 잡은 결과 아무것도 없었다.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갈릴리에서 제일 잘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뭉쳤는데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말씀하신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예수님은 좀 쉽게 말씀하시면 좋은데 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듣게 하신다. 한번 더 생각해봐야 그 의미를 찾게 숨겨 놓으신다. 제자들은 아무생각없이 물고기만 잡는다.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다. 어디서 본 장면같지 않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때와 같은 장면이다. 그렇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말씀을 들은 결과 그물에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들 수 없다. 이때 베드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야 대박이다. 이 물고기를 어떻게 끌어 올리지?’베드로는 여전히 눈치 채지 못한다. 이 장면을 생각하고 있으니 소름이 돋는다. 지금쯤 알 법도 한데 베드로는 정신이 팔려있다. 고개를 들 생각도 못한다. 그때 제자 요한은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외친다. 주님이시라

이때 베드로의 마음은 참 복합일 것이다. 반갑고, 놀랍고, 부끄럽고, 힘들었고,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다. 예수님임을 깨닫자 한걸음에 달려가 예수님을 맞이한다.

자기 스스로를 말해 주어야 알아보는 이 못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아침상을 차려주신다. 시편 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며 상차려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진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누구에게나 고난 중에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 누구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무엇을 먹는지 마시는지 무엇을 하는지 우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진짜로 제자들의 상을 차려주신다. 떡과 그들이 잡은 생선으로 그들을 먹여주신다. 한번의 질책도 없이 아무말 없이 베풀어 주신다. 할 말 없는 제자들은 그렇게 음식을 받아 먹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모든 잘못을 알고 계심에도 상 차려주시는 분입니다. 결코 우리 지금의 모습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 우리에게 상 차려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 어느곳에 있든지 찾아오셔 내가 너희들의 주님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이 부르시는 그 기회를 꼭 잡기를 축원한다.

 

2. 예수님은 회개하는 이들을 다시 인정해 주시고,
재위임해 주십니다.(15-19)

식사를 마치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 번 물으신다. 베드로의 주님 그러하나이다,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세번이나 동일하게 묻고 동일하게 대답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듣기 무서운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본인의 이름 석자입니다. “아들 이리와봐, 노아야 이리와봐그리고 다시 부릅니다. “고노아. 이리 와봐이렇게 이름이 불린다면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분명 서로 사랑하는 관계인데 이름을 한 자, 한 자 콕콕집어 부른다면 듣는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이름을 한자 한자 집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이름이 불리자 근심하며 대답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긴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먹이고 가르치시고 양육하셨듯이 예수님의 수 많은 양을 베드로에게 맡기신다.

사역은 자기의 일이 아니라 분명히 주님의 일이라 명시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그분의 자녀들을 기르고 양육하는 일이다. 말씀을 가르치고 주님을 위한 섬김의 일들을 맡기는 것이다. 교회는 자기의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나를 목적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의 일을 함께 하는 곳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는 분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능력과 은혜가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세 번 말씀하셨던 것처럼 베드로에게도 꼭 해줘야 하는 말을 전한다. 21: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하시니라고 예언하신다. 처음 나를 따르라라고 할 땐 예수님의 몸으로 따르며 시키는 일을 감당하면 된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책임지는 자로 다시 부름받고, 교회의 권위를 위임받게 된다. 예수님처럼 살다가 예수님처럼 죽을 것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다시 복음앞으로 부르신다. 거저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직분을 맡겨 모든 것을 감당하도록 보내신다. 우리에게 다시 그 직분을 위임하시니 예수님의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키워내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헌신도, 양육이란 말을 참 어렵게 받는다. 육으로 본다면 너무 고된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우리 교회에도 수많은 생명이 자라나고 차고 넘치게 되기를 축원한다.

 

3.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는 일에 다시 집중하라고 하십니다.(20-23)

베드로가 이렇게 나아가자 옆에서 한 제자가 따라온다. 바로 오늘의 이 복음의 말씀을 기록한 제자 요한이다. 그는 감히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못하고 자기 정체성을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표현한다. 그가 예수님과 베드로를 따라오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는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도 나와 같이 죽음까지 예언해주시고 사명을 맡겨 주시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날 일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각자의 삶은 주님께 달려있으니 다른 사람의 부르심에 연연해 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교회는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곳 이란 말이 있다. 예배는 함께 드리나, 각자의 사명에는 각각 부르심의 소명이 있다. 그것을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한다.

교회는 그렇기에 구제를 하여도 개인의 이름을 꼭 다 적지 않는다. 교회의 이름으로 함께 한다. 나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음의 고백을 담아 전하면 된다. 이번 실로암 안과 병원에 개안수술 돕기에도 개인이 충분히 할 수 있으나 교회가 그 이름을 대신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오히려 담대히 돕고 부담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이제 사명자로서 다른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축원한다. 다른 사람과 다른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일을 다시 잡아야 한다.

티비에 한 가정을 찾아가 정리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정에 쌓인 물건은 각각 사연을 지니고 있어 버리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그동안 추억이 너무 소중해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것들, 아까워서 보관하고 있던 것이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도우미가 분명한 기준을 갖고 대화하며 정리를 도와준다. 결국, 자기 생각을 버리고 전문가의 손을 의지하니 집은 변화된다.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생활이 바뀌게 된다. 능력도 있고 환경도 되는데 발전하지 않는다면, 동시에 여러일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라고 한다.

사명자로 살아가려면 간결하고 깔끔하게 그 마음을 정돈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라는 기준에서주와 함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전문가 되신 예수님의 기준으로 우리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

사명자로 살게 하시는 기회를 놓지지 맙시다. 주님이 주시는 믿음의 기회를 놓지지 말고 주님의 부르심을 붙잡고 나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회복되었습니까? 우리 마음이 회복되고, 주님의 부르심의 사명이 회복되고, 교회의 소망이 회복되었다. 우리가 모여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배우고 기도하였다면, 이제 주님의 사명을 받은 자로 이제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함께라서 좋은것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따르기에 삶에 능력이 나타난다. 벧전4: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말씀하신다.

우리는 여전히 자격없다. 우리의 행위와 능력으로 얻은 자격이 아니다. 우리의 직분도, 우리 상황도, 우리의 믿음도 내가 얻어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우리의 복잡한 것을 버리면 주님께서 일하신다. 주님의 일에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따라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내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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