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8:16-20 "부활하신 왕께서 명령하시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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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5-05 09:00 조회1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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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5 어린이 주일예배
240505 가스펠프로젝트신약3-11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부활하신 왕께서 명령하시다”(마태복음28:16-20)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어린이날!’하면 생각나시는 단어가 무엇이 있는가? ‘선물!’‘놀이동산’‘학원’ ‘미래’ ‘개고생’ 이젠 여러분의 자녀들 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무엇이 있나요? ‘미래’‘신앙교육’‘교회’‘직장’‘결혼’ 많은 생각을 하실 텐데 잘되고 있는가? 오늘 말씀은 부활의 예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 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해요?”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 명령이죠. 우리 같이 성경의 본문을 한 목소리로 읽겠다.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당연하지요.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에 경배하는 사람도 있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를 믿는 분들 중에 부활의 확신을 가진 분도 있고 가끔은 의심하는 분도 있어요. 여러분이 보실 때, 저는 어떨 것 같아요. 부활의 확신! 아니면 의심! 그런데 주님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세요. 이유는 사람은 변하니까요!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으시지만 사람은 변한단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세요! 예수만 믿으라는 것이지요. 의심하는 나를 보지 말고 오직 예수! 어떤 예수예요? 18절을 같이 봅니다.“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심으로 진정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셨다. 땅에서 승리하시고 하늘에서도 승리하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세상을 다시르시다가 심판 때에 재림주로 오실 것이다. 하늘과 땅의 권세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19-20절이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셨다.
부활의 주님의 명령은 “가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다.
가서 해야 할 3가지 일과 하나의 약속이다.
1)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모든 족속’은 누구든지 어떤 나라, 어떤 인종, 어떤 사람이든지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이예요. 여러분은 사람을 만나자 마자 제자를 삼을 수 있나요?
2) 제자를 삼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례를 준다는 것은 죄 씻음을 받는 표 잖아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에서 세례를 주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3)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예수님이 전하고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3가지 사역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부활의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이예요, 어떤 분은 유언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예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설교 제목도 부활의 왕께서 명령하시다! 예요. 명령하면 생각나는 직업이 있어요. 군인!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을 받아요. 전쟁터에서는 명령 불복종을 할 경우에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할 만큼 명령복종은 군인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예요. 그뿐인가요? 예수의 군병 된 우리들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요?
수도원 수도사들의 조크가 있어요. 수도원은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에서 하나님께만 소망으로 사는 분들이 모였어요. 그들이 하는 일 중에는 성경을 손으로 쓰는 성경필사가 있었지요. 그런데 사람이 쓰는 것이니까 실수도 있을 수 있죠. 성경필사를 하던 젊은 수도사가 원장님을 찾아 갔어요. “틀리면 어떻게 하지요? 한글자라도 틀리면 전혀 다른 뜻이 될 수 있잖아요?” 원장님께서는 ‘기도하면서 쓰기 때문에 그럴 이유는 없다’고 하시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오래된 성경을 찾아 읽으셨어요. 그리고는 우시는 것이지요. 이 한 글자 때문에 .우리가 잘못 살았구나! “그 한 글자가 원본에는 ‘Celebrate’‘축제를 거행하라’ ‘즐겁게 살라’는 것인데 성경을 필사하는 분이 ‘Celebate’ ‘독신’,‘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라’는 것이 아니었어.” 축제라는 의미의 Celebrate와 독신 혼자 살라는 Celebate는 ‘R’ 하나가 있고 없고 차이로 즐겁게 살거냐, 외롭게 살거냐?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물론 이 이야기는 fiction으로 지어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적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Celebrate’ 곧 세상 안에서의 축제인가? 아니면 ‘R’을 빼고 ‘Celebate’‘독신’ 곧 세상을 떠나 외롭게 지내야 하는 삶인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오늘 ‘가라!’고 주님의 명령 앞에 크게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첫째, ‘억지로 가는 것’이다.
‘억지로’ 라는 말은 이치나 조건에 맞지 않는데 강제로 하는 것이다. 억지로가 다 나쁜 것은 아닌데 우리 자녀들이 ‘억지로’라는 생각이 들 때 반항하는 경우를 보았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셨으니까 나도 십자가를 지는 것일 수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하셨다. 억지로 주의 일을 해도 능력도 있고 결과도 있는 경우를 성경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예수님 십자가 지시는 길에 구경을 나왔다가 붙잡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일부 대신 진 것이다. 이 일로 구레네 사람 시몬은 놀랍게도 예수를 믿었고 그 자녀들까지 예수를 잘 믿었다.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구레네 시몬의 부인을 ‘내 어머니’(롬16:13)라고 할 정도로 교회에 충성했고 칭찬도 받았다. 미국육상선수 칼 루이스 총알같이 빨랐던 선수도 억지로 해서 세계1등이 되었다. 칼 루이스가 교회에서 간증을 했다. 학교 가는 길이 멀어서 오토바이를 샀는데 기쁨도 잠시 도둑놈이 훔쳐갔다. 자전거를 샀는데 또 훔쳐갔다. 그래서 달리기는 아무도 훔쳐갈 수 없지 않은가? 12km 거리의 학교에 가기 위해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왕복24km를 달렸다. 아무도 달리기는 빼앗지 못했다고 웃는다. 그 억지로가 세계적인 육상선수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재주가 없는 나를 세계1등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우리도 살다보면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다. 지식의 한계, 의지의 한계 능력의 한계 등이다. 그때 억지로 라도 주의 일을 선택하는 것이 축복이 있다. 이것은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했다. 저 역시도 교회다니는 것에 절망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강권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잡았다 .억지로 부모의 손에 따라 시작된 신앙생활에 감사할 때가 많다. 억지로 하는 신앙생활의 축복도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억지로 보다 더 나은 신앙생활이 있다.
둘째, “즐겁게 가는 것”이다.
부활의 예수님을 보고 있지 않는가? 경배하는 자도 있고 의심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믿고 세상을 행해 힘차게 가라고 하신다.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다시 사신 부활의 왕이 되셔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분면한 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부활하신 왕이라는 천명이다. 십자가 지기 전의 예수가 아니다. 부활의 예수는 하늘과 땅의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다. 그래서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즐겁게 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제자삼고,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 목사님의 설교 중의 예화이다. 미국 티비 방송에도 소개된 미담이다. 어떤 마을에 부부가 함께 하는 팬케이크 가게 있었다. 밤새도록 팬케이크 반죽을 해서 새벽같이 문을 열어 온 동네 사람들의 양질의 아침을 책임지는 주민들이 너무 사랑하는 가게였다. 그런데 부인이 심한 병에 걸렸다. 남편이 병간호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주민들이 돈을 거두어 준다고 하는 것은 한사코 거절을 한다. 동네 주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팬케이크 가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이른 새벽부터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준비된 팬케이크 반죽은 오전에 다 팔려 버렸다. 주인은 아내 병간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주민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부터 팬케이크를 팔아주는 일을 계속했고 주인은 부인을 간병하여 병을 낫고 다시 장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동네주민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팬케이크를 사서 없는 이웃들과 나누었다. 서로 나누는 팬케이크 때문에 온 동네가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소문이 났다. 멋진 동네 아닌가? 이런 미담은 티비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전 세계로 알려 지게 되었다. 저도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 이야기 속에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제자 되는 일도 있고 새 사람이 되는 일도 있고 가르쳐 지키는 일도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자. 팬 케이트를 사주는 일에 그것도 새벽부터 함께 하는 것은 처음 시도한 사람의 제자가 들이 모인 것이다. 우리도 친구들 모임에서 밥을 몇 번 사보자. 그러면 그 친구의 제자가 금방 된다. 제 친구 중에도 만나면 밥을 사는 분이 있다. 누가 산다고 하면 계산대에 찾아가서 반이라도 내자고 하는 친구이다. 그렇게 배려를 하고 섬기려고 하니까 이 친구 말이라고 하면 다들 잘 듣는다. 우리나라가 유독히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선교사님들께서 우리나라에 오셔서 먹을 것도 주시는 구호소를 만들고 병원을 지어 병자들을 고쳐 주고 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쳐 주고 했다. 그 중에는 미국선교사들이 많다. 6.25전쟁에도 많은 미국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다른 여러 나라의 선교사, 군인들이 파병이 되었지만 미국이 우리가 어려울 때 살리는 일을 했기 때문에 미국을 가깝게 여기는 것이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말한 것처럼 두 벌 옷을 가진 사람은 한 벌 옷을 나누고 세리는 부과된 것만 받고 군인은 강탈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섬기고 배려하고 희생하신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다.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이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런 일에 제자가 된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처럼 살아야지 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살도록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미국 샤론의 집은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고 고난당하는 이들의 쉼과 회복과 새 사람의 사역을 잘 하고 있었다. 감사했고 한국교회에서 보내는 것이라고 하면서 위로금도 전했다. 샤론센터는 한국 이민자들의 아픔을 미국사회가 다 알 수 없는데 그래도 내 동족이 이국땅에서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사명으로 세워졌다. 기쁜 마음으로 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닉네임이 있다. 우리들의 친정집, 아이들의 외갓집, 성도들의 하나님의 집이다. 30년이 됐는데 매일같이 늦은 밤에도 할 것 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다. 저희들이 서울로 오는 길에도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샤론센터를 운영하는 경비나 일군들은 없다. 그 때 그 때 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다. 그러니 매일같이 기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정말 간절히 기도 또 기도한다. 하나님밖에는 믿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간절함이 오늘도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낡아 녹물이 나오는 수도관을 위해 기도할 때 전혀 생각지 못한 분이 찾아와 고쳐 주신 일, 담장이 스러져 위험한 일을 놓고 기도할 때 또 누가 와서 담장을 만들어 주시는 일. 한 형제가 재판문제로 어려움을 놓고 기도할 때 전혀 생각지 못한 변호사가 무료로 변호해 준일 샤론 센터에는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기적으로 살고 있다. 즐겁게 가라는 것에는 보내심을 받은 사명감이 있다. 힘이 들 때 마다 이런 말을 한다. “나 같은 사람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보내주심에 대한 감사로 사명에 충성을 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울사도의 진심어림 고백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즐겁게 사명을 감당하려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예수님의 대사요 하나님나라의 대사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20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대사들 뒤에는 그 나라의 대통령의 지원과 지지가 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대사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대사 이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대사된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축복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면 아벤! (아멘!)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학교로 가시고 직장으로 가시고 가정으로 가시고 교회로 가셔서 제자삼고, 세례주고, 가르쳐 살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라. 어떤 분이 과일가게를 가면 꼭 부족한 것만 골라 담는다고 한다. 주인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 아닌가? 대부분의 손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좋은 것을 담으려고 하는데 저 손님은 왜 흠 있고 못생긴 것만 골라서 가시는가? 그래서 물었데요. “손님은 왜 좋은 것은 놔두고 흠 있는 과일만 골라 가십니까?”그 분 대답이 이랬단다. “저는 예수를 믿거든요!” 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손해를 보고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복이 있는 사람은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 보니까 실로암 안과 병원의 개안수술헌금에 300만 원 이상의 헌금이 모였다. 진정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는 것이다. 복이 있게 믿어야 사명자이고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보내심을 받은 곳에서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영광스런 예배당이 건축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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