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11-1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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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07-27 17:54 조회2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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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믿는 자의 본이 되라
#shorts설교 | 오창우 목사 | 경건으로 살 수 있는 힘
오늘은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를 가르친다. 유교시대를 살면서 상명하복이 연상이 되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에서는 예수님께서 섬기러 오신 것처럼 ‘서로 섬김’의 관계이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하고 모든 사람의 대속물이 되시겠다.”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모두 섬기는 관계로 하나 되는 것이다. 목사는 성도를 어떻게 섬겨야 하며 성도는 목사를 어떻게 섬기는가? 이다. 이처럼 목사는 어떻게 가르치고 성도들은 목사님의 가르침에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가 가스펠 프로젝트 디모데전서, 후서, 디도서 이 3개의 책을 중심으로 하는 말씀이다.
첫째, 목사는 자신의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깁니다.
디모데전서4:11-16절이다. “11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12절에 목사는 “ 믿는 자의 본이 되어”라는 말씀이 나온다. 베드로전서5:3에도 “양 무리의 본이 되어 ”라고 하셨다. 목사는 성도들의 본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목사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치리하고 축복하는 지도자가 아닌가? 그런데 사도바울이나 베드로 사도는 이런 직무나 일보다 앞서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닌‘삶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본이 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16절에 “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하셨다. 누구를 구원하는가? 너와 네게 듣는 자라고 하셨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이것은 목사에게만 주는 말씀인가? 먼저 믿은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도록 믿는 자의 본이 되고 있는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12) 5가지라고 했다. 행실 중에 첫 번째가 말이다. ‘더러운 말은 하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될 선한 말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고 (엡4:29)하셨다. 말이 얼마나 중요하면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는 경건은 헛것이라”(약1:26) 하셨는가? 말의 본을 보이는 것처럼 이 모든 일에 본을 보여야 한다. 2) 행실 3) 사랑 4) 믿음 5) 정절 하나하나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이다. 그뿐인가? 디모데전서 3:1-7에는 목사의 자격으로 “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하셨다. 목사나 그 가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아요! 디모데가 목회자가 30세에 목회자가 되었던 것처럼 저도 30초반에 담임목사가 되어 연소함으로 인하여 업신여김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아세요? 예를 들어 부활절 맥추감사절 등 절기가 되면 헌금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본이 될 것인가? 앞으로 예배당 건축을 하는데 있어서 헌금에 어떤 본을 보여야 할 것인가? 저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제가 책망을 했더니 제 아이가 하는 말이 “아버지, 제가 목사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하는 말에 하나님께 맡기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목사가 교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본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무엇으로 본이 되고 있는가?
믿는 자의 본이 되고 난 다음에 목사의 사역에 전념하라고 하셨다. 13절에 “(성경을)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는 것”이다. 전념이라는 말은 ‘모든 힘을 다하여’ 이다. 목사가 전념해야 할 일은 3가지이다. 1) 성경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일 2) 성경으로 권면하는 일 3)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래서 이일을 전념하기 위하여 3가지를 힘쓰라고 했다. 1) 14절에 “장로의 모임에서 안수 받은 때 예언으로 주신 은사를 사용하라” 2) 15절에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라”3) 16절에 “본인 자신과 본인이 가르친 가르침을 살핌으로 계속하라”이렇게 할 때에 본인 자신뿐 아니라 본인에게 들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목사는 지식만큼이나 삶의 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헌신하는 것에 힘을 써야 할 것이고 교인들도 이런 목사님의 수고나 헌신을 알아줄 때 하나님의 축복이 되는 것이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본을 보이기 위한 헌신수고를 했을 때 상처받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실 목사님에게 수고나 헌신을 알아주는 일을 하시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선지자를 대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하셨잖는가! 복을 받게 믿어야 한다. 본이 되는 목사와 수고를 알아주는 교인으로 축복받는 교회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둘째, 목사는 진리를 설교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깁니다.
디모데후서4:1-8절이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말씀 중에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3절에 “바른 교훈”4절에 “진리”전파하라”고 했다.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 목사가 할 일이다. 그런데 귀에 듣기 좋은 사리사욕을 채우게 하는 설교나 허탄한 신화 같은 설교를 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 전해야 할 것은 진리! 진리! 이다. 진리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파하기를 힘쓰고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고 하셨다. 목사는 진리를 설교함에 있어서 이렇게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고 헌신하고 시간을 내고 밤을 새우고 공부하고 교리에 맞는가? 이단사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의 정욕, 마귀의 유혹이 들어가지는 않았는가? 조심하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경계함으로 진리로 하나님의 백성을 섬겨야 하는 것이다.
당시 교회 안에는 진리 아닌 것을 따르는 두 가지 교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1) 3절에 “자기의 사욕,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이야기를 하는 스승을 두는 교인”이다. 요즘은 티비는 물론 유튜브 등으로 말씀영상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다. 내 호기심에 따라 나를 편하게 해 주느냐가 아니라 바른 말씀이나 건전한 말씀이 중요한 것이다. 2) 4절에 “허탄한 이야기나 있지도 않는 신화처럼 허구화된 이야기를 따르는 교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에서는 마지막 때에 불법한 자, 악한 자가 사탄의 활동으로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게 한다고 했다. 물론 망하는 것은 자기사욕과 신화를 따르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다. 지금 인터넷의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료를 검색하면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가 거의 80% 거짓 정보를 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평소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말씀대로 따라 살지 않으면 미혹되어 결국은 멸망으로 갈 것이다.
5절은 ‘그러나 너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가장 강조하는 단어는 ‘너는’,‘너 목사는’모든 면에서 진리를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총회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목사가 되려면 일반대학교의 학사학위를 소지한 자로 각 교회 당회장의 추천을 받아 노회고시를 거쳐 총회 직영 신학대학원 3년을 졸업해야 한다. 그리고 총회에서 목사고시를 합격해야 하고 교회에서 전도사로 2년 이상 교역경험을 가져야 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철저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바른 교훈과 진리를 전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 뿐만이 아니다.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에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6:10절에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이처럼 은혜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마땅히 들어야 할 말씀을 들었을 때’ 받는 것이다. 시대가 어두울 수 록 더욱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목사가 힘써야 할 것은 1) 모든 일에 신중하고 깨어 고난을 받아야 한다. 2) 전도자로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봉사를 다해야 한다. 고 했다. 사도바울은 진리를 전하는 자로 얼마나 수고하고 헌신하였다고 하였는지를 고백하기를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목사는 물론 성도된 우리 모두가 진리 안에서 마땅한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목사를 따릅니다.
디도서2:11-14절 말씀이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2절에 “우리를 양육하시되”14절에 “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시는 하나님이다. 어떻게? 예레미야3:15에 하나님께서 “내가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또 베드로전서5:2에도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의 양육을 위해 주의 종들을 세우신 것이다.
목사는 은혜 받은 공동체를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하여 13-14절에 교인들을 3가지로 양육해야 한다고 한다. 1) 버리게 하라-“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2) 살게 하라-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3) 기다리게 하라-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바로 이 3가지 버리고 살고 기다리는 것이야 말로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면 14절에 죄 사함 받아 깨끗하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한 때는 세상의 정욕과 쾌락의 종이 되어 죄를 섬기며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완전히 변화되어 주님께 열심을 내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열심을 낸다는 것은 적극적인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주님의 일, 교회의 일을 섬기게 되었을 때, 마지못해 억지로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라비아의 한 왕이 명마를 찾았다. 먼저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는 가장 뛰어난 100마리를 뽑았다. 마지막 테스트로 말들에게 하루 종일 물을 주지 않고 강가로 데려가 고삐를 풀어줬다. 몹시 목이 말랐던 말들은 맹렬히 강가로 달려갔다. 물가에 닿을 즈음 조련사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96마리는 강으로 달려갔고 4마리의 말만 신호대로 멈췄다. 이 4마리 아라비아말은 세계 최고의 품종이다. 유럽의 모든 명마들도 아라비아말의 씨를 받아 개량된 품종입니다. 가장 훌륭한 명마의 비결은 순종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기 위하여 세우신 목사님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이다. 목사님의 본이 되고자하는 삶을 배우고 그 목사님이 전하시는 진리 복음의 진리에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을 변화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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