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3-5:11 "교회여, 소망을 잃지 말라"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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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10-26 14:36 조회1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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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전주일-
오늘은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주 잘 사는 교회였습니다. 돈이 많아서 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환란과 박해가 심했어요. 당장 죽고 사는 것이 문제였어요. 특히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 가 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 잘 먹고 출세하고 높아졌느냐?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웠습니다. 왜요? 우리나라가 일본사람들에게 식민지 생활을 할 때에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제의 앞잡이가 되든지 일본에 순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당시도 마찬가지예요. 환난과 핍박 없이 살려면 믿음을 버리면 됩니다. 믿음을 버리면 환란도 핍박도 없어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예수처럼 살고 싶었어요. 신분의 차별이나 직업의 귀천이 없이 남자여자차별이나 피부색이 하야냐 검으냐 상관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도와주고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교회를 살고 싶었던 것이지요. 주님이 오실 때 칭찬받을 교회공동체 말 이예요. 그만큼 종말에 대한 신앙으로 가득했던 것이거든요. 초기 예루살렘교회처럼 사는 것이 희망이고 비전인 사람들이예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들 간에 기도로 친교하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나누는 것 이예요. 그리고 누가 어려운 사람들이 없나 찾아보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세상이 좋은 것이에요.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니까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오신다는 천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살아있었거든요. 아버지어머니에게 그 주님이 하늘로 오르신 것을 생생하게 보았던 것을 들었던 자녀들도 있고요. 그러니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런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사는 교회공동체를 사는 것이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편지 서문에서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이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이는 복음이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1:3-7)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당시 로마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살고 노에를 부리고 사치하며 술에 취해 사는 것’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이 도저히 따라 살 수 없는 제3의 종족이라고 불릴 만큼 금욕주의적이고 술에 취하지 않고 매우 도덕적인 사람들 평등하고 새로운 세상을 추구했기 때문에 환란과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처럼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처럼 사랑의 공동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환란과 핍박을 기꺼이 받았고 죽임까지도 당했던 것입니다. 이후 로마는 이런 기독교를 두려워하고 핍박이 심해졌지만 결국은 기독교의 가치와 신앙으로 승리하여 로마는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결국 기독교국가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로 하여금 세상의 핍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신앙은 위해 어떤 소망을 가지라고 하셨는가? 3가지 소망으로 승리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첫째, “부활의 소망”입니다. (4:13-14)
13-14절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부활의 소망을 다시 살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을 믿으라고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이고 반드시 깨어날 것이니 소망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몰트만은 “인간의 삶은 변화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는 과정일 뿐이지 삶을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에서 다시 깨어나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잠든 것뿐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처럼 먼저 간 성도들을 슬퍼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예수를 믿는 우리도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 것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영생 영원히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구원의 계획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구원 그 자체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로마서6:22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죽은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님이 오시는 날 부활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하여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계시록20:4에서 예수를 증언하고 하나님말씀대로 살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음으로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슬픔에 빠질 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세요. 죽으면 끝이 아니라 영원한 불 못의 고통 속에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슬퍼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 선생은 죽을 때, “오늘은 제가 면류관을 받는 날입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살지 마세요. 부활의 소망,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재림의 소망”입니다.(4:15-18)
15-18절“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재림의 소망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15:51-52에도 재림의 비밀을 말하는데 “보라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변화하여 함께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신 다는 것의 중요한 의미는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으로 함께 하지만 재림의 날에는 부활의 몸, 변화의 몸으로 주님을 하늘에서 영접하고 만날 것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부로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구원 죄를 용서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성도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구원의 비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주안에서는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나, 모두는 마지막 날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 일세/ 영광 일세 영광 일세 내가 누릴 영광 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 일세-610장> 주님을 다시 만날 재림의 소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주의 날”의 소망입니다. (5:1-11)
5:1-11절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주의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런데 주의 날은 은밀하게 임할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밤에 도둑의 오고 임신한 여자의 해산처럼‘알 수 없는 때에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주의 날입니다. 그 날과 시를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이단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관심을 두어야 할까요? 왜 주의 날을 감추셨을까요? 영적긴장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가 되면 벼락치기로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나십니까? 웃으시는 분이 있어요. 그 날을 알면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 날을 알면 신앙생활에도 유익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재림의 시기를 감추어 두시고 늘 영적인 긴장감속에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날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술 취하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주의 날에도 음주단속이 있을 것입니다.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들을 만나시나요? 어떻게 합니까? 술에 취한 분들은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경찰이 두렵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날도 세상의 평안과 쾌락에 취해 잠들어 있는 자에게는 두려움의 날이고 도망치고자 하는 날이지만 주님의 사람으로 맑은 정신으로 깨어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무장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날은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사도는“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어떻게요? 데살로니가전서5:16-18에서 사도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1. 항상 기뻐하는 것 2.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3.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살 수 있습니까? 그것도 환난과 핍박 속에 있을 때에 죽고 사는 위기의 순간에 말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기적이 아닙니다. 일상의 감사입니다. 저는 항상 기뻐할 수 있음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할 때, 주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기도할 때 감정입니다. 범사에 감사 하루하루가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이 제일 젊다는 말이 좋습니다. 오늘에 살아있다는 것 이 너무 좋습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오늘 자동차가 8바퀴나 굴렀는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그러자 아버지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수십 년을 운전하는 중에도 한 바퀴도 구르지 않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교회에 처음 나온 분이 묻기를 “과거에는 하나님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셨는데 지금은 왜 기적이 없나요? 기적이 있으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올 텐데요” 목사님은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매일같이 행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쁘게 살다보니 그걸 볼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길 위에 핀 꽃 한 송이 자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기적인데 ”대답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간증들을 들으면서 기적만을 바랄 뿐 감동과 감사가 사라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의 축복받은 이야기를 들을 때, 감동은 받지만 정작 내 일상에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범사에 감사는 기적만이 아닙니다. 일상의 감사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에 감사와 기쁨이고 기도할 때 함께 하시는 것에 감사인 살아있음에 공부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살림할 수 있음에 교회를 다닐 수 있음에 물건을 살 수 있음에 지하철을 탈 수 있음에 감사감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돈 사랑할 뿐 감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감사해야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부활합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주의 날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려울수록 감사하고 사는 것 기뻐하고 기도하고 사는 것 축복이고 승리입니다. 이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광주에 있는 신학교에 강의를 갔습니다. 점심을 하자고 해서 교수님이 아는 식당을 갔습니다. 주인은 권사님이셨는데 목사님을 모시고 온다고 했더니 한우 중에 제일 좋은 부위라고 하면서 대접을 하신다고 합니다. 놀랐지요. 처음 보는데 자기 어머니가 전도사님으로 목사님을 잘 섬겼데요. 그래서 자기도 엄마 따라서 하는 것이라나요. 같은 그리스도인이기에 할 수 있는 섬김입니다. 그렇게 밝고 기쁜 얼굴을 처음 봤습니다. 기쁨으로 대접해요. 사장하는 딸까지도 인사를 시키면서 놀랐습니다. 장사도 잘 된데요. 나이는 저보다 10살밑에 인가? 생각했더니 일흔다섯이랍니다. 그런데 도 아주 젊어요.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보고 교회충성하고 하루하루가 감사래요. 자녀들도 감사 손주들도 감사 식당도 감사 감사하는 그 모습에 은혜 받았어요.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 주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합시다. 재림신앙으로 감사합시다. 최고의 감사를 준비하여 드림으로 부활과 재림 그리고 주의 날에 소망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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