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16:12-17, 고린도전서11:23-26 "공감, 배려 그리고 감사"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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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11-02 17:24 조회1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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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배려 그리고 감사” (신16:12-17, 고전11:23-26)
오늘은 추수감사절 주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주님의 성찬을 나눕니다. 하나는 추수 감사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찬을 함께 감사함으로 받는 입니다. 이 둘의 의미를 공감과 배려 그리고 감사를 가지고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멋진 인생 축복받은 삶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는 뜻이 추수감사절과 성찬에 있습니다.
첫째, 공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추수감사절뿐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절기에는 모두 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와 싸워 승리함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이었던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그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종이 주인의 신분으로 바뀐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절기에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원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유월절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주님의 몸과 잔을 나누는 것으로 많은 사람에게 죄 사함을 주는 언약의 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위하여 하신 일들 중에 중요한 것은 귀신들린 자에게서 사탄을 내쫓으심으로 온전한 정신의 사람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게는 주님의 몸에서 능력을 주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성찬식은 예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을 공감하는 날이 바로 오늘 추수감사절이고 성찬을 나누는 것에 뜻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함께 하십시오. 그리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야 말로 믿음입니다.
둘째, 배려입니다.
배려는 나눌 ‘배’에 생각할 ‘려’입니다.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귀중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추수 절기에 초대할 사람들의 명단을 주셨어요. 네 아내-평생의 동반자 입니다. 네 자녀-대를 이어갈 다음세대입니다. 노비-생산에 참여한 일군입니다.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신앙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나그네-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인지 모릅니다. 고아와 과부-부모와 남편이 없는 그래서 도와야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주시는 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실 정도로 가난하고 천시받고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창기와 세리 등과도 함께 식사도 하셨습니다. 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서 이분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에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남녀 성차별도 없습니다. 위 아래 나이 차별도 없습니다. 주인과 종의 차별도 없습니다. 주의 종을 귀히 여깁니다. 나그네를 대접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책임집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무의탁자,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환자,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함께 즐거워하는 식탁은 주님의 식탁, 성찬식입니다. 함께 같은 빵과 잔을 나눕니다. 주님과 한 몸이 된 한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자매로 함께 해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배려하고 섬길 수 있을까? 어떤 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도시락을 싸온 사람과 싸오지 못한 사람을 짝지어 나누어 먹도록 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늘 함께 했습니다.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일러주거나,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직접 설득했던 일화들은 유명합니다. 장 박사님 이런 배려로 세워진 청십자의료조합운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전국민의료보험제도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배려가 필요합니다. 어느 건물에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항상 뒤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뒤를 따라 오는 분을 위해 문을 열고 있습니다. 들어오시는 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죠! 나도 문을 잡으면서 감사합니다. 해야지요. 그리고 뒤에 들어오는 분을 위해 문을 잡아드리고요. 인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는 분도 안녕하세요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안녕하세요 하는데 네! 대답만하는 분들이 있어요. 인사를 나눌 준비가 안된 것이지요. 항상 인사준비를 할 줄 알아야 해요. 따라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심방을 갔다오는데 심방대원 중에 한 분은 자꾸 밥을 산다는 겁니다. 괜찮다니까 커피를 산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수입은 무엇이냐고 물었죠. 복권이라도 맞았나 해서 아니랍니다. 노령연금과 자녀들이 주는 돈이랍니다. 겨우 살지도 못할 정도예요. 그런데 늘 산다고 해요. 자녀들에게 목돈을 주기도 한답니다. 정말 잘 사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괜찮은 사람이예요. 제가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예요. 친구들은 늘 산다고 하죠. 실제로는 많이 사는 것도 아닌데 부자소리듣잖아요. 여러분도 자꾸 산다고 하며 사세요. 그렇다고 늘 사라고 할 분들이 어디 있어요. 서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분위기도 좋고 만나고도 싶어요. 불평하면 다음은 없습니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것도 배려입니다. 항상 늦는 분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는 없지만 그럼 신뢰를 받지 못해요. 배려하는 행동과 마음가짐이 요. 주님의 배려를 체감하게 해 주세요. 행동으로 주님은 십자가까지 지셨잖아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십자가지는 모습을 보일 때 존중받습니다. 귀히 여김을 받아요. 높임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입니다.
감사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나 인사입니다. 감사에는 동물과 다른 인간의 존엄성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감사를 할 줄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번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어떤 분이 전기요금고지서를 받아보고 너무 많이 나와서 놀랐답니다. 그리고는 이내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전기의 몇 억배나 밝고 한번도 고장이 없이 매일 대지를 비추는 태양을 지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하나님은 한 번도 태양료를 내라고 고지서도 독촉장도 인류에게 보내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일년의 전기요금의 10배를 감사헌금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감사를 하십니까? 스펄전목사님은 “우리에게 별빛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 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 우리에게 햇빛이 필요없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거기는 하나님의 영원한 빛이 밤낮으로 비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 감사헌금은 두 가지로 하는 것인데, 하나는 ‘보이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는 헌금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헌금은 인격과 믿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받은 복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보셨습니까? 감사일기를 쓰는 분들이 있어요. 매일매일 감사하는 것이지요. 모아보니까 감사로 차고 넘쳐요. 돈은 없어도 부자가 되었어요. 지난 금요일 운전하는데 사고날뻔 했어요. 여전도회원11명이 탔는데 제가 운전했어요. 교회에 큰 일이 났으면 어떻해요. 하루하루가 감사예요. 추수 감사의 헌금을 얼마나 준비하셨습니까? 복음성가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라는 곡이 있습니다. 셋방살이하는 가난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자매입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는데 벌써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얼마나 활동적인지 신발이 닳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옷은 왜 그렇게 더럽혀 오는지 빨래를 감당할 수 없어서 중고 세탁기를 하나 장만 했습니다. 세탁기를 설치하려는데 주인집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하도 옷을 더럽혀서 세탁기를 단다고 했더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울면서 들어 가더랍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주인집 남편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인께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6살 난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껏 걷지도 못해요. 이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 보는 게 저희들 소원입니다.”가난한 뇌성마비 집사님은 몇 번이나 죄송합니다. 말한 다음에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아이들의 신발을 빨리 닳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을 불평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감사는 우리로 하여금 환경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고, 그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게 해서 나만 겪는 고난이라는 복음송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제 이야기에요. 하나님을 믿었지만 어려서는 고난이 올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었습니다. 원망은 불평이 되고 제 얼굴이 새까맣게 되었습니다. 병도 많았죠. 죽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왜 기도하지 않냐고 하셨습니다. 놀라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런데 축복을 받는 분들을 보니까 감사예물을 드리는 습관이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새벽마다 감사에물을 드리던 권사님은 딸을 통해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하게 하셨습니다. 그대서 저도 적은 것지만 감사의 에물을 드리는 습관을 갖게 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감사의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감사하자 기도의 응답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잖아요. 얼굴도 밝아졌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하는 바울과 실라에게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죄와 벌을 쓴 토스엡스키도 죽음의 포로수용소를 쓴 빅터프랭클도 감사할 때 살아났습니다. 감사라는 글씨를 써서 병이 나은 분도 있습니다. 감사일기를 써서 우울증은 물론 병을 낫는 의학보고서도 있습니다. 성경은“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했습니다. 감사는 믿음이고 축복이고 기적의 문입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하나님이 우리를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죽음이나 배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고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저주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메튜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더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 까지도 빼았기고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삶의 변화를 주십니다. 축복을 주십니다. 감사는 인격이고 믿음을 가지세요. 공감의 마음으로, 배려의 행동으로 그리고 감사의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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