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9-20 "요한이 예수님에게서 계시를 받다" 한남제일교회 오창우목사 2411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4-11-23 15:46 조회8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241124 주일예배 안내
* 차량 통제 안내
서울 YMCA 마라톤으로 인해 청계천로를 통제 합니다.
1) 시간 : 9시 10분 - 11시 40분
2) 통제 : 광화문 - 용두역 청계천로 양방향
3) 우회로 : 서쪽- 서대문 / 동쪽 - 용두역
* 차량운행이 어렵습니다.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부 11:30>
<1부 10:00>
가스펠프로젝트 신약 6 - 10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오늘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성경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책이죠. 사도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어요. 그 계시의 내용은 그 당시만 해도 주님이 언제 오시냐는 문제로, 주님이 오시는 재림에 대해서 많이 시험에도 들고 이단도 생기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하셔서 주님이 오시는 날의 그 광경에 대해서 계시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말씀을 하는데, 그 첫 번째 시간에는 사도 요한이 어떻게 계시를 받게 되었는가 하는 그 상황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만났어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는지 기도하는 중이었는지 성령의 감동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게 되면 기도 중에 성령 충만을 받은 것처럼, 어쨌든 주님의 날에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큰 나팔 소리 같은 소리가 들려서 이렇게 쳐다봤더니, 거기에는 일곱 교회, 일곱 촛대를 거느리시는 예수님을 봤습니다.
그래서 "보고"라고 하는 제목이 처음에 나오고, 또 그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래서 "듣고"라는 것이고요. 그다음에 이제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내가 보여준 계시의 내용들을 기록하여 전하라" 이렇게 했어요. 그래서 "전하라"가 된 거죠.
그래서 보고, 듣고, 그리고 전하라. 이런 설교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하나하나 말씀을 드릴게요.
첫 번째는 보고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중에 큰 나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보았을 때, 거기에 보이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모습은 그냥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고 긴 옷을 끌리는 옷을 입은, 대제사장의 옷을 입으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제사장 예수를 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의 옷을 입으신 예수님이 가슴에는 금띠를 띠었다 그랬어요. 그리고 머리는 백발이요, 양털과 같이 희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눈을 보니까 불꽃 같은 눈이라 그랬어요. 얼마나 그 눈이 번쩍번쩍 빛나는지 불꽃 같다 그랬어요. 그리고 발을 봤더니 그 발은 쇠를 단련하고 달려는 주석 같은 단단한 발의 모습을 하고 계셨고, 말씀하시는 소리는 많은 폭포물 소리 같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입에서는 날선 검 같은 것이 나오고요. 얼굴은 해처럼 밝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찬 얼굴이었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봤더니 그 모습이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사장 앞에 선 나는 어떤 나입니까?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에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죄사함 받게 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했다는 이유로 로마 황제에게 붙잡혀 에베소에서 바다로 90km나 떨어진 밧모라고 하는 외딴 섬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섬은 화산으로 된 섬이기 때문에 로마의 돌로 만든 건축에 필요한 석재를 공급하는 곳입니다. 많은 죄수들이 거기에 모여 돌을 깨고 있어요. 나이 90이 된 사도 요한도 죄수의 몸으로 돌을 깨고 있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마음이 어떨까요? 장시간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성도들과 격리된 정신적인 고통, 외로움이 상당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주의 제자의 마지막이 이렇게 비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자괴감도 들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 주님이 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야.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넌 천국 백성이야."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여기 죄수의 몸으로 붙잡혀 고생하는 줄 알았더니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어떤 분이 꿈에 바닥과 모래사장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지나온 삶의 여정에 발자국을 돌아보니 모래 사장에는 좋을 때는 발자국이 네 개가 있고, 어려울 때는 두 개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내가 가만히 보니까 내가 좋을 때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발이 네 개인데, 내가 어렵고 힘들때에는 발이 두 개밖에 없습니다. 주님, 내가 힘들때에는 어디 가셨습니까?"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예야,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가 너를 업고 다녔단다."
주님이 나를 업고 다녔다는 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 물 가운데로 지난다고 해도 침몰치 아니하고, 불 가운데로 지난다고 해도 사르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 그 주님이 나를 업어주시고 도와주셨다는 말입니다.
복음 성가도 있잖아요.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신실하신 주. 오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할렐루야.
사도 요한은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체성,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요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고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부르는 나의 이름, 부자나 빈자나 남자나 여자나 강자나 약자나 차별하는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와 함께 하시면서 다시 한번 사도 요한을 그리고 우리들을 세워 주고 있으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는 듣고, 사도 요한은 제사장으로 오신 그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요. 죽은 것처럼 모든 걸 다 내려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른손으로, 강한 손이요 능력의 손이요 치유의 손이요 위로의 손이요 다시 살게 하시는 그 손으로 몸에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에게 두려운 곳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의 90이 된 노인이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저 이제 은퇴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제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하는 친구가 있어요. "오목사, 나는 암도 걸렸다가 낫고 했는데 그냥 오늘 밤 탁 죽으면 좋겠어." 여러분, 나이 들면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에요. 그럼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렵다는 말입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오른손으로 그의 몸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곧 나 살아 있는 자다. 내가 전에 죽었었나 볼지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권세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세토록 영원히 살아 있어서 그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죽음과 음부의 권세도 내가 가졌노라. 우리 주님은 천국에 힘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까지도 다 책임지신다고 하는 거예요. 사도 요한이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요한에게 들리는 소리는 돌 깨는 소리. 하루 종일 듣고 살아야 됩니다.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무슨 말씀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정치를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속이 시원합니까? 편안합니까?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정말 사도 요한이 두려운데 듣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러한 거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다가 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90의 나이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에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 아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혹시라도 말이에요. 혹시라도 평생 동안 주를 위해 살다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이렇게 헌신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부끄러운 죽음 할까 봐. 그러니까 주님 말씀하시잖아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난 죽었다가 살아나서 영세토록 살아가지고 내가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가졌노라." 함께하시는데 끝까지 함께하시고 끝까지 축복하시고 끝까지 은혜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끝까지 충성할 때 주님은 끝까지 감당할 만한 힘과 능력 또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2서, 3서에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해라, 사랑해라. 뭐 이렇게도 사랑해라. 본래 사도 요한이 별명이 우레의 아들이에요. 하도 성질이 있어서요. 그가 정말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걸 너그럽게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내려놓고 하는데 두려운 게 있어요. 혹시라도 이 안에서 인간적인 게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 가려울까 봐 두려웠던 거예요.
두렵습니다 저 역시 안 그렇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전화 왔더라고요. 목사님, 정확히 한남제일교회 부임한 나이가 몇 살이에요? 만으로 서른 하나예요. 39년, 40년을 여기 목회하면서 마무리하는 저에게 두려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딱 하나예요. 제가 목회하면서 항상 화나고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거예요. 물론 교회가 비난받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또 목사가 있잖아요. 또 은퇴하면서 뭐 이랬다 저랬다, 뭐 교회하고 다퉜다. 그게 사실은 두려운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은혜롭게 정말 감사하게 서로 웃으면서 이렇게 헤어질 수 있을까. 바로 그러한 것들이 두려웠던 겁니다. 인간이 인간적인 어떤 욕심이나 욕정 같은 게 사도 요한에게 나올까 봐 두려웠던 거 예요.
그때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이고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영세토록 내가 너와 함께 할뿐 아니라 내가 죽음과 음부의 권세도 내가 다 열쇠까지 내가 다 가졌노라. 끝까지 주님 의지하고 주님 안에 살아가려는 거예요.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믿음의 근원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도록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주님이 함께하시니까 딴 길로 가지 말고 늘 주님 안에 승리하는 여러분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세 번째는 전하라 하는 겁니다. 따라 하십시다. 전하라!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전하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전하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름받는 그 시간까지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통해 인간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마세요.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마세요. 얼마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연세가 90 넘으신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세가 많기도 하지만 몸이 아파서 거동이 많이 힘드시다고 해요. 그런데요, 이 어머니 때문에 그렇게 은혜를 받는다 그러더라고요. 이 어머니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억력이 자꾸 나빠진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쁜 일은 기억하지 않고 나쁜 일은 말하지 않고 섭섭한 얘기도 하지 않고 오로지 점점점점 많아지는 게 뭐냐? 좋은 일, 기쁜 일, 감사한 일을 되내이더라는 거야. 태어나서 정말 버림받았다고 하는 그 순간에 한 열 살쯤 됐는데 교회를 갔대요. 저녁이 됐습니다. 어떤 분이 손을 잡고 "너 집 어디냐?" 가고 데리고 가면서 그러더래요. "예야, 너는 하나님이 점점 잘되게 하실 거야. 너는 하나님이 점점 잘되게 하실 거야." 가정적으로 불행하고 개인적으로 의지할 것이 없었던 이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이 말씀이 바꿔졌어요. 그래 하나님이 나를 점점점 더 잘되게 하실 거야. 잘되게 하실 거야. 그 후로 이 분은 성장해 갔고 그 인생 속에서 부르신 일마다 그냥 하나님은 하나님이 내 삶을 이끄시더라. 그 사랑 안에 살아가니까 많은 일들이 축복이 되고 하나님이 잘 되게 하셨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잘 되게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었던 저도 믿음 안에 교회 공동체가 다 되어야 할 거니까 함께 나눠야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소망 바라보고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을 살아낼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그 사명은 하나님의 때마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두 번째는, 듣고 사도 요한은 제사장으로 오신 그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요. 죽은 것처럼 모든 걸 다 내려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른손이요, 왼손이 아닙니다. 오른손이요, 강한 손이요, 능력의 손이요, 치유의 손이요, 위로의 손이요, 다시 살게 하시는 그 손으로 몸에 얹으시고 말씀하시죠. "두려워하지 말아라." 여러분, 사도 요한에게 두려운 곳이 뭐가 있겠습니까? 나의 0이 된 노인이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저 이제 은퇴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제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얘기하는 친구가 있어요. "오, 목사! 나는 암도 걸렸다가 낳고 했는데 그냥 오늘 밤에 그냥 탁 죽으면 좋겠어." 여러분, 나이 들면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에요. 그럼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두렵다는 말입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른손으로 그의 몸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곧 나 살아 있는 자다. 내가 전에 죽었었나 볼지어다. 내가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권세,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세세토록 영원히 살아 있어서 그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죽음과 음부의 권세도 내가 가졌노라.
우리 주님은 천국에 힘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자리까지도 다 책임지신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도 요한이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요한에게 들리는 소리는 돌깨는 소리처럼 하루 종일 듣고 살아야 합니다. 환청이 들릴 정도로 힘든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무슨 말씀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정치를 다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속이 시원합니까? 편안합니까?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임영웅 씨가 그렇게 인기가 있더라고요. 들으면 그렇게 좋다 해요. 편안하십니까? 정말 사도 요한이 두려운데 듣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런 거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다가 이 감옥에 왔습니다. 그리고 나의 90대, 나이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에요.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 아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혹시라도 말이에요. 혹시라도 평생 동안 주를 위해 살다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이렇게 헌신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부끄러운 죽음을 할까 봐. 그러니까 주님 말씀하시잖아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난 죽었다가 살아나서 영세토록 살아가지고 내가 죽음과 음부의 권세가 가졌노라." 함께하시는데 끝까지 함께하시고 끝까지 축복하시고 끝까지 은혜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끝까지 충성할 때 주님은 끝까지 감당할 만한 힘과 능력, 또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2서, 3서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해라, 사랑해라 뭐 이렇게도 말했죠. 본래 사도 요한이 별명이 우의 아들이었어요. 성격이 싸나웠다고 하는데, 그가 정말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걸 너그럽게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내려놓고 하는데 두려운 게 있어요. 혹시라도 이 안에서 인간적인 게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 가려울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 역시 안 그렇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전화 왔더라고요. "목사님, 정확히 한남제일교회 부임한 나이가 몇 살이에요?" "둘이에요, 하나예요?" "만으로 하나입니다." 39년, 근 40년을 여기 목회하면서 마무리하는 저에게 두려운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딱 하나예요. 제가 목회하면서 항상 화나고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 거예요. 물론 교회가 비난받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또 목사가 있잖아요. 또 은퇴하면서 뭐 이랬다 저랬다, 뭐 교회하고 다았다. 그게 사실은 두려운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은혜롭게 정말 감사하게 서로 웃으면서 이렇게 헤어질 수 있을까. 바로 그러한 것들이 두려웠던 겁니다.
인간이 인간적인 어떤 욕심이나 욕정 같은 게 사도 요한에게 나올까 봐 두려웠던 거예요. 그때 주님이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이고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영세토록 내가 너와 함께 할 뿐 아니라 내가 죽음과 음부의 권세도 내가 다 열쇠까지 내가 다 가졌노라." 끝까지 주님 의지하고 주님 안에 살아가려는 거예요.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없네. 믿음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도록,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주님이 함께하시니까 딴 길로 가지 말고 늘 주님 안에 승리하는 여러분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세 번째는 전하라 하는 겁니다. 따라 하십시다. 전하라!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전하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전하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름받는 그 시간까지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통해 인간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마세요. 얼마 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연세가 90 넘으신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세가 많기도 하지만 몸이 아파서 거동이 많이 힘드시다고 해요. 그런데요, 이 어머니 덕분에 그렇게 은혜를 받는다고 해요. 이 어머니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기억력이 자꾸 나빠진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쁜 일은 기억하지 않고, 나쁜 일은 말하지 않고, 섭섭한 얘기도 하지 않고, 오로지 좋은 일, 기쁜 일, 감사한 일을 되내이더라는 거예요.
태어나서 정말 버림받았다고 하는 그 순간에 한 열 살쯤 됐는데 교회를 갔대요. 저녁이 됐습니다. 어떤 분이 손을 잡고, "너 집 어디냐?" 하고 데리고 가면서 그러더래요. "예야, 너는 하나님이 점점 잘되게 하실 거야. 너는 하나님이 점점 잘되게 하실 거야." 가정적으로 불행하고, 개인적으로 의지할 것이 없었던 이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이 말씀이 바꿔줬어요. "그래, 하나님이 나를 점점 더 잘되게 하실 거야." 지금 그 어른이 자녀들에게 이 얘기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점점 점점 더 잘되게 하셨어."
여러분, 사명 감당 이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 쓸모없다고 하면서 원망 불평하고 지나지 마세요.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어요. 사명으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살았고, 여러분 지금 사명자로 살고 있습니까? 하루를 살아도, 순간을 살아도, 식당에 가서 사명자입니까? 버스 타고 사명 자입니까? 지하철타고 사명자입니까? 물건을 사면서도 사명자입니까? 길을 걸으면서도 사명자입니까? 잊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 내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사명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 말씀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일 때문에 감옥에 갇혔는데, 지금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기록하라. 그 사명 계속하게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제사장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그 은혜로 변화된 나 그리고 나와 함께하시는 나를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하심을 믿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승리하라 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의 주신 사명을 따라 죽기까지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주일날 예배 중에 기도 중에 성령 감동을 받아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배 때마다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보고 듣고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나온 모든 세월들을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신실하신 주, 오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할렐루야. 한 주간도 이 말씀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