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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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03-08 10:21 조회2,327회 댓글0건

본문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고난 속에서 피는 꽃
본문 : 욥기 42:1-6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200308 사순절2주 “고난 속에 피는 꽃”(욥기 42:1-6)
 오늘은 욥기입니다. 욥기서는 욥의 고난이야기예요. 고난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욥도 의인이지만 고난이 왔을 때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3친구와 고난에 대하여 논쟁을 했는데..친구들의 말이 211절인데 비해 욥은 457절을 말했어요. 두 배가 넘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고난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욥입니다.
 욥은 한 때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① 의인 이예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② 부자예요 가축 등 재산이 아주 많은 사람이지요. 자녀들도 10명이나 많았어요. ③ 건강 했지요..어느 것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시기해요. 사탄은 이름 그대로 참소하고 헐 뜯는 자입니다. 타락한 천사로 남을 못되게 만드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하나님. 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이유는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거지를 만들어 보세요!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겁니다.” 이유없는 경건은 없다! 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에 대한 고난의 시험을 허락하셨어요. 단 욥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 사탄은 욥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3가지를 다 빼앗는 겁니다. ①부자를 완전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없습니다. ②건강을 몸의 부스럼을 기왓장으로 긁어야 하는 정도의 병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③신앙을 빼앗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신앙만은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친구들이 욥의 신앙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나선 겁니다. “욥아, 세상에 이유 없는 고난은 없다!” 사탄이 이유 없는 경건은 없다는 식으로 친구들이 욥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분명히..아주 확실하게..죄를 지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고난이 없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욥이 아니라고..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해도 믿어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도 합세해서 하는 말이..“에이 이 교만한 사람아! 아니 하나님 네 죄를 보셨으니까 너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지..” 어떤 친구는 교리를 들추면서 하는 말이 “죄를 짓지 않으면 고난도 없다”고 회개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탄의 말처럼.. 이유 없는 경건은 없다!
친구들의 말처럼.. 이유 없는 고난은 없다! 이런 이론들이 맞는 말입니까?
 고난의 과정에서 욥은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생겼습니다. 사탄의 시험이나 친구들의 책망을 이겨낸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않으셨는고?”(24:1)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 받을 때..차별을 받을 때..열심히 충성했는데 대가가 없을 때..그런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앙이 있어도..심사가 뒤틀리고 속이 상할 때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는 욥에게 나타나셨어요.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 할지니라”(40:2) 트집 잡는 자..하나님을 탓하는 자! 가 욥이고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눈앞에 나타나실 때.. 욥이 할 말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이사야처럼..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처럼..“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욥도 영광의 하나님 앞에 ..자신의 부족을 발견합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4).
 한껏 낮아진 욥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세상 만물의 섭리를 아느냐?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이 세상 만물의 이치도 모르면서 너의 인생에 일어난 일을 함부로 판단하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커다란 하마와 큰 악어를 예로 드시면서.. 이런 동물하나도 통제하지 못하면서 이런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이유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에수님도 이유없는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적인 사실 앞에 시험을 받고 떠나갔습니다. 가룟 유다가 떠나갔고 바울사도가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 순수하게..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난이나..부함이 없이도 하나님을 잘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순수한 신앙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2:1-6은 욥기의 요절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장에 중요 구절이 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과정에의 결론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순수한 하나님 신앙은 무엇인가?
첫째 1-3절입니다.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의 하나님께 드리는 대답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① 하나님이 하신다! ② 인간이 할 수 있다! 에 대하여 대답입니다.
 ①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하는 말입니다. 욥이 세상은 이러저러해야 하고 하나님도 어떠한 분이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의 희망사항일 뿐이고..내가 아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수준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나를 향하신 구원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입니다.
 ②인간이 할 수 있다고 하는 이론에 대하여는..3절에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사람들의 이론은 그냥 이론일 뿐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믿음인지..논쟁인지를 잘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원추’라는 새 의 이야기입니다. 원추 새는 남해에서 출발해서 북해까지 아주 먼 길을 오가는 철새입니다. 이 원추 새는 날아가는 도중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습니다.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습니다. 가려서 쉬고 가려서 먹는 다는 것입니다. 말 못하는 새도 가려서 행동을 합니다.
 신자는 어느 가지에 앉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하신다는 가지인가?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가지인가? 사람이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다 못합니다. AI가 이세돌을 이겼어요!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면 차가 스스로 움직입니다. 인간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전분가들에 의하면 전통적인 직업은 없어지지만 더 많은 일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무리 인공지능이 대단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가지에 앉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신자는 하나님이 하신다의 가지에 앉아야 됩니다. 이것이 욥의 결론이고 순수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욥의 슬픔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고난의 현장을 회복시켜야 하는 일입니다. 지금 욥은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일을 말하였다’ 자책하고 있지만, 그 말 속에는 고난의 현실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고통을 잡기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일에 동참하는 감내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았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신천지와 같은 사회문제해결하고..병역체계에 대한 관리문제..바로 잡아야 합니다. 교회도 영적인 분위기를 찾아야 하는 숙제가 큽니다. 이제 욥이 당한 고난에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4-6절입니다.

둘째, 4-6절입니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4절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3절에서 무지한 자라고 했던 욥이 하나님께 묻는 다는 것이..문맥에 맞지 않아요! 성경은 번역과정에서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문맥에 맞게 다시 번역한 말씀이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나온 새번역 성경입니다.
  “4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 하여라!" 하셨습니다.”
 욥은 이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의 말씀을 듣는 것에 신앙이 있고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듣고 대답을 하는 것이..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 선생의 말입니다.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성서(말씀)에서 온다'는 말씀을 보고 지금까지 내가 성서를 덮어놓고 믿음을 위하여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성서를 공부하는 동안 내 믿음이 줄곧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을 듣는 것이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솔로몬 임금에게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뜻도..듣는 귀입니다. 들을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5절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듣기만 하였사오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①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②눈으로 주를 뵈옵는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간증이 있는데..시각장애인 윤일수목사님의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윤일수 목사님은 시각장애인으로 그 일대기가 기독교방송의 드리마로 나와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너무 가난해..그리고 갑자기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꼼작을 못하게 되자 어린 나이에 구두닦이, 신문팔이..안 해 본 것이 없이 힘들게 던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벌은 돈을 가져다 드리자..어머니는 십일조라고 하시면서 십분의 일을 떼는 것입니다. 어린 윤일수는 어머니의 십일조를 드리는 행동에 화가 났습니다. “십일조는 무슨 놈의 십일조인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 이 때..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목을 꼬옥 쥐고는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 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어머니의 신앙의 가르침으로 윤일수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고 시각장애인이라는 불행한 환경에도 능력 있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넘어서서..그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진정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의 믿음 장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은 다 체험에서 나오는 믿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충성 헌신할 때..비로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고난이 와도..하나님까지 잃어버리지 마세요. 하나님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극복하게 해주시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것을 갈망하는 욥은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한다는 말은 나는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먼지 같은 존재인데 영원하시고 존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고 판단했던 것이 죄였습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십시오!” 수많은 경험과 생각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세요! 교회 오래 다녔다고..직분이 있다고..성경 공부 많이 했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의롭게 보일 뿐이며 괜찮아 보일 뿐이지 우리는 모두가 먼지와 티끌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매일같이 회개하고 티끌과 먼지인 존재 근원을 자각함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하더라도 /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임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넓은 믿음을 가진 자는 필히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순수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되 나는 티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대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게 하시고 하늘로 오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욥도 죄가 없는데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고 하나님 앞에 티끌로 엎드리자..축복하십니다. 친구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시고 친구들을 용서ㅓ할 때..이전 보다 배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140년을 사는 장수의 복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만가지 걱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예수님의 길을 가고 욥의 길을 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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