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2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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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04-12 09:02 조회2,256회 댓글0건

본문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갈릴리로 가라

본문 : 마태복음 28:1-10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설교문

200412 부활주일

“갈릴리로 가라!”(마태복음 28:1-10) 한남제일교회 오창우 목사

 

오늘은 부활절이고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고 해서 주일이고 주의 날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고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본 말씀은 예수님 부활의 날에 일어났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부활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중요합니다. 본문말씀처럼 두 여인이 부활의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보리라” 하신 말씀을 따라 “갈릴리로 가라!” 입니다.

 

먼저 예수님 부활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함께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부활의 현장입니다.(1-4)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1-4절은 부활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부활의 시간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입니다.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안식일 후 첫날새벽이니까..그 사이의 시간은..3일인 72시간이 아니라 삼일 째인 40시간 정도입니다. 두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유대인의 장례에는 시신이 상하지 않게 하는 향품을 놓았습니다. 자연히 고민은 무덤 문을 막고 있는 커더런 돌문을 옮기는 것입니다. 수백 킬로가 되는 돌이기에 장정 대 여섯 명이 있어야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여인이 무덤으로 다가 갔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났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왔습니다. 주의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는 커다란 돌..을 굴리는 것입니다.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주의 천사는 굴려진 돌 위에 앉았습니다. 부활절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절대 잊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두 여인은 두 눈으로 주의 천사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번개 같습니다. 번개를 칠 때 불이 번쩍하는 것처럼 천사의 형상과 모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옷은 눈같이 희었습니다. 두 여인이 놀란 것은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들의 마음을 아시고 주의 천사들을 보내셨나? 입니다. 두려움도 있지만 놀라움의 기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주의 천사들을 보고 무서워하여 떠는 데..죽은 사람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현장입니다. 부활의 현장에는 전혀 다른 상반 된 반응을 하는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두렵지만 기쁜 사람과 무서워 죽은 자가 된 사람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우리도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의 현장에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처럼 되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부활의 증거입니다.(5-6)

“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5-6절에는 천사가 부활의 증거를 보라고 하십니다. 빈 무덤입니다. 주의 천사가 두 여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찾고 있지? 그리고는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열려 있는 무덤의 안을 들여다보라고 했습니다. 두 여인이 보았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봤는지는 모릅니다. 그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습니다. 없어졌을까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시신을 싼 세마포가 그대로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이 개어져 있습니다. 유대의 장례법에서 시신은 기다란 천으로 붕대를 감듯이 몸을 둘둘 감습니다. 그러니 부활의 주님이 빠져나간 둘둘 감은 붕대수의는 마치 고치가 허물을 벗어 진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싼 수건을 개어 있다는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밖에는 하실 분이 없습니다. 주의 천사의 말합니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났느니라!” “그 누우셨던 곳을 보라!” 두 여인은 빈 무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예수님을 싸고 있던 세마포가 고치가 허물을 벗은 모습처럼 되어 있는 것과 개어진 수건을 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신기해하며 주의 천사가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입니다. 무덤 문을 열 때..예수님이 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은 무덤을 빠져 나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있는 집으로 쑥 들어오셨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부활의 몸은 이미 육신의 몸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부활의 몸은 영혼에 신령한 몸을 덧입는 것으로 변화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의 몸의 부활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이신 부활의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빈 무덤과 시신을 싼 세마포, 무덤에서 보지 못한 예수님입니다. 빈 무덤을 바라보세요! 예수의 부활을 믿으세요! 산 믿음..승리하는 믿음입니다.

 

3. 부활의 증언입니다.(7-8)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7-8절에는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두 여인은 주의 천사가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믿는 자만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시니 거기서 뵐 것입니다!” 두 여인은..마음속에 무서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빨리 무덤을 떠났고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두 여인은 부활의 목격자로 이제는 부활을 증언하러 가는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죽고 대신 사도로 세운 맛디아는 부활의 증인이기에 사도로 뽑힘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4. 부활의 주님입니다.(9-10)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9-10절에는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부활을 믿고 증언하러 가는 두 여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에 가서 볼 것이라고 해서 달려가는 도중에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하냐?” 물어 주셨습니다. 두 여인은 평안하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관심은 “평안하냐?” 입니다. 어느 젊은이는 미래를 위하여 관심을 갖고 원하는 것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건강, 사랑, 재물, 아름다움, 재능, 권력, 명예 등.. 그리고도 젊은이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다 들은 지혜자의 말합니다. “젊은이여 마음의 평화가 없이는 이 모든 것을 즐길 수가 없다네.” (조수아 립브맨의 ‘마음의 평화’에서) 정말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이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즐길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하여 불안하니까..평안도 없고..벚꽃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평안하지 않습니다. 지금 두 여인은 평안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해도..그 부활이 주는 은혜를 알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주님께서 “평안하나?”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오여 있는 자리에도 오셔서 “너희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눅24:36,요20:19,21) 하십니다. 부활이 주는 축복은 평안입니다.

돌을 캐는 채석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커다란 바위 돌을 폭파하기 위해 인부들이 다이너마이트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습니다. 모든 인부들이 대피했습니다. 이제 다이너마이트가 폭파될 것입니다..그런데 폭파현장으로 3살짜리 어린아이가 아장 아장 웃으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곧 다이나마이트가 터질 텐데..누구도 나서지 못합니다. 아이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3살 아이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하니까..아기는 깔깔 거리며 웃기만 하지 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아이를 구하러 나가지 못하는 그때 아기의 엄마가 아이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아이도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도망칩니다. 참으로 큰일입니다. 곧 다이너마이트가 터집니다. 그 순간 엄마의 마음에 스치는 지혜가 나왔습니다. 엄마는 갑자기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아기를 향하여 두 팔을 크게 벌렸습니다. 환한 미소를 띠고 부드럽고 분명하게 말했지요. “아가야! 이리 온!” 그러자 아기는 엄마에게로..달려왔습니다. 품에 안기는 아기를 잡자마자 엄마는 대피소에 뛰어들었고, 그 순간 동시에 다이너마이트는 굉음과 함께 폭발했습니다. 아기와 엄마, 모두 무사히 살아났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선교지에서 부모 잃은 아이가 선교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답니다. “엄마라고 해도 되요?” “그럼 엄마야, 나는 너의 엄마란다!” 부모 잃은 아이는 엄마라는 말에 금방 평안해 졌다고 합니다. (케이티 데이비드 / ‘엄마라고 해도 되요’에서) ‘엄마’라는 말은 ‘당신을 믿어요!’‘당신은 나를 보호해 줄 꺼 예요!’의 뜻이라고 합니다. 부활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엄마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 능력을 주십니다. 하바드의대 정신과의 로버트 콜리스 교수는 소위 흙수저들의 성공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흙수저는 배경이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 흙수저가 성공하는 이유는 강한 내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 강한 힘은..현재에의 불만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소망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에..나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주님이 평강을 주실 때에..지금, 절망이나 낙심, 공포와 불안, 걱정과 근심이..되는 일이 있을 지라도.. 오로지 부활의 희망만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부활을 믿으시면 평안을 주십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의주인공으로 발탁된 크리스챤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빛을 못 보는 것은 쌍꺼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서울 유명한 의사에게 예약을 다 해놓았답니다. 그리고 주일에 예배당에 가서 설교말씀을 듣는데..목사님 말씀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왜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왜 여성분들은 쌍꺼풀 수술을 하느냐?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 가서 하나님이 못 알아보시면 어떻게 하느냐?” 쌍꺼풀 수술을 취소하고 그냥 응시를 했는데 주인공으로 발탁이 됐어요. 이유는 쌍거풀이 없는 동양적인 눈이라서 랍니다. 빌4:6-7에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평안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안해합니다.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귀와 친하면 불안, 걱정, 염려를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근심이나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행이 일어날 것으로 확신하는 것이고 믿음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행복이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16) 평안의 샬롬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입니다. 하나님만이 온전하십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평안입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도 감사하면 우리의 부족을 채워서 온전하게 하시는 그 평안을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내적인 힘은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평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다시 보았습니다. 부활을 믿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믿으면..평안을 주십니다. 갈릴리로 가서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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