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7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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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남제일 작성일20-06-07 09:09 조회2,281회 댓글0건

본문

 

 

 

설교자 : 오창우 목사

제목 : 창자가 흔들려도 행복할 수 있다

본문 : 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 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설교문
200607 삼위일체주일
“창자가 흔들려도 행복할 수 있다”(하박국 3:16-19)

한남제일교회 오창우 목사


 
 행복은 인간의 힘에 있지 않습니다.
공지영 작가는「수도원 기행」에서 자신의 심경과 경험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소설가가 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 다음엔 유명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나는 유명해졌다. 그 다음엔 당연히 돈 걱정이 없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나서도 통장에 늘 100만 원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94년 여름, 내가 낸 세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니 돈도 생겼다. 이제 1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를 자고나면 통장으로 수천만 원의 인세가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한 고난 중에 있습니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영성학자인 존 C. 레녹스는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상으로부터 이기는 것은 성경에 기반을 둔 ‘오직 기독교 세계관만이’ 코로나바이러스 세상에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왜요? 행복은 인간의 힘에 있지 않고..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친 믿음인 예수 이름과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난 신앙도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죄 용서도, 영원한 생명도, 능력의 삶도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만 유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억하는 것. 코로나바이러스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고 믿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박국 선지자 역시 고난 중에..창자가 흔들리는 고난 중에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께만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지?..3가지입니다.
 
첫째, 16절, 인간의 힘으로는 행복은 없습니다.
16절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6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구절 마지막의 “나”“내 몸!”입니다. 내 창자가 흔들리고 내 몸이 떨린다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건강이 어떤가? 의 문제가 아니라..귀로 들은 소식 때문에 창자까지 흔들리고 몸이 떨린다는 말입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도 부패한 유다나라는 대항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전쟁에 지게 되고 나라는 멸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갈 것이라는 불안한 공포가 엄습해 오는 데에 대한 공포입니다. 그 공포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 바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처소인 집에 있어도 몸도 떨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코로나 19의 감염 위협에 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세계 2차 대전 당시, 본회퍼는 목사로서 그리고 신학자로서 독재자 히틀러의 악행을 막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결사대에 들어갔다가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협박에 짓눌리면서 목사이자 신학자인 그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앞서 말한 고통 받는 부모의 경우처럼,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상황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간은 존엄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 본회퍼가 내린 약한 인간인 결론은 이것입니다. “현대인은 이제 성숙했으니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영웅적으로 살아가라!” 본회퍼는 당당하게 살다가 죽기로 결단이라는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현대신학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런 본 훼퍼의 이론에 따라..코로나19 이후에는 전통적인 종교의 옷을 벗어버린 기독교의 시대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모임도, 예배도, 기도도, 전도까지 모든 종교적인 것들을 성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교회가 기꺼이 제의를 중단할 수 있는 것, 이웃을 위해 자신이 살 수 있는 마스크를 사지 않는 것, 재난당한 이웃에게 헌금을 보내는 것, 임대료를 깎아 주는 것, 손님 끊긴 단골 가게를 애써 찾아 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주일성수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 참 예배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기독교를 준비하는 태도가 아닐까”(뉴스앤조이) 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살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헤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그런 것일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신앙을 받아 주실까요? 정통신앙인 바리새인들처럼..최선을 다해서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실 복을 기대하고 물론 복이 없어도 여전히 신자의 길을 가는 것을 긍지로 여기며 사는 정통신앙인이 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인인가요? 두 경우..다 외형적으로는 참 신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살라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다른 신앙인들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신앙이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리 그렇게 해도 육신이 영적차원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수준의 완벽한 의는 꿈도 못 꿉니다. 삶의 문제와 고통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본회퍼의 무서운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 앞에 망해 가는 이스라엘인들, 각종 무서운 상황에 창자가 흔들이는 이들을 도울 길을 없습니다. 구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행복은 없습니다.
 
둘째, 17-18절, 하나님 안에서..행복입니다.
 17-18절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7-18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18절의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신자의 재산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초대형 재난입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함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탈취 당합니다. 사람들은 포로로 붙잡혀 가고 부녀자들이 죽고 약탈을 당했습니다. 백성들이 땀 흘려 쌓아 놓았던 농산물들을 탈취해 갔습니다. 집은 파괴되고 마을은 불에 타 없어졌습니다. 무화과 열매는 그들이 주로 먹었던 과일입니다. 포도에서 나오는 즙이나 포도주는 그들이 매일 마시던 음료수였습니다. 또 감람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기름은 그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했던 기본적인 기름이었습니다. 양과 소는 그들의 중요한 자산들입니다. 옷을 만들고 고기를 제공하는 자원입니다. 소는 농사를 지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필요들이 지금 사라졌다는 겁니다. 생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참혹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필요마저 다 사라져 버렸으니 그다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의 하나님..나의 하나님은 언제나 계십니다.
공 지영 작가는 수도원 기행에서 여러 가지 굴곡을 겪으면서 신앙을 회복하게 됩니다. 신앙의 회복을 통해 행복을 얻고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쩌면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8년이었다. 18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써 놓고 보니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항복과 행복, 획 하나 차이의 낱말이었다.” 공 지영 작가의 고백대로 획 하나가 그토록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할 때.. 인생의 모든 사슬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기뻐하겠다.”고 합니다. 하박국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처음 세상은 온통 흑암과 혼돈이었습니다. 이런 혼돈과 흑암의 세상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심으로 질서있고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 졌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생명이 나오고 기쁨과 행복 풍요와 능력 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서 오신 예수님..예수님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요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이신 예수님이시기에 해결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을 믿고 모시는 자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경이 말하는 신자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이기에 죽어도 삽니다. 요11: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추방합니다. 눅9: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과 한 몸이기에 예수 재림하실 때는 부활의 몸으로 바뀌고 고전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그리고 신이 되는 것입니다. 시82:6“내가 말하기는 너희는 다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무엇이든지 예수를 의지하고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얻습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하나님은 신자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두렵지 않게 하십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평생토록 인자하심이 반드시 따르게 해서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이런 영적현실은 믿어야 합니다. 믿고 의지할 때..인정하고 주장할 때..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성령사역에 관한 성결대 배 본철 교수는 필리핀의 어느 시골 마을의 아주 작은 교회에서 귀신을 내쫓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마침 그 교회 나오는 한 남자의 아내가 마을 최고의 무당이었습니다. 무당은 예언과 치유의 능력이 있어서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도를 받았답니다. 그리고 교회엔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하면서 늘 하나님과 크리스천들을 무당이 조롱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배 교수는 부흥회 강사로 가서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강사가 무당을 초청하자 참석했습니다. 성령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막1: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말씀을 의지하자..성령이 역사하시는데..기도 시간에 그 무당으로부터 악령들이 쫓겨나고..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 교수의 말입니다. “능력의 근원은 우리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능력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에 근거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승리는 ‘귀신 쫓는 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에 의한 것임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자는 골 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자신에 대한 새로워진 지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어색하고 잘 안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직 성경뿐입니다. 환상이나 음성을 기대하지 말고 객관적인 기준 말씀을 믿어야 합니라. 영적 삶의 법인 복음대로 따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신자의 훈련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이 안 와도 그대로 따라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셋째, 19절, 행복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19절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9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신다.” 입니다. 사슴의 발을 가진 자가 사는 곳이 높은 곳입니다. 사슴은 발에 힘이 있습니다. 사냥꾼이 잡으려고 하면 높은 곳으로 도망을 칩니다. 얼마나 발의 힘이 좋은지..웬만한 사냥꾼이 잡지를 못하는 이유는 사슴의 발이 가진 힘입니다. 우리 신자의 힘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높은 곳을 다닐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바벨론 침공이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온 신앙인 다니엘을 보세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하나님 안에서 삽니다. 기름진 왕의 음식을 가부하고 하나님의 양식만 먹자..하나님이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십니다. 적국이고 포로임에도 하나님께서 국무총리로 세우십니다. 대를 잇고 나라가 바뀌어도 국무총리를 합니다. 높은 곳을 다니는 다니엘입니다. 그 신앙의 힘이 사슴의 발 같습니다. 죽게 될 상황에도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사자의 굴에서 살려 주십니다. 높은 곳을 다니는 자는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어 유대백성들을 구해 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의 법을 이기고 하나님의 높은 곳을 다니는 은혜를 받습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높은 하늘에 앉았습니다. 엡2:5-6“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높은 하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의 영원한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보화가 있는 곳도 하늘이며, 우리의 소망도 하늘에 있고, 우리의 주님도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것은 다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곳을 헤매지 말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롬 8:18, 24-25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가이드포스트에 난 미국 어떤 노부부의 간증입니다. 아들이 고등학교부터 옆길로 나갔습니다. 술 담배 마약에 빠지더니 학교는 중퇴입니다.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합니다. 집안 물건 훔쳐다 판다. 결국 집을 나가 버립니다. 삶은 그대로 지옥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목사님의 지도대로 하나님께 아들 문제를 다 드리고 자신들부터 바로 서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 하나님의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기로 합니다. 창자가 흔들릴 때마다..“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아버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사슴의 발처럼 힘 있게 외치고 높은 곳을 다닙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하니 이상하게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이 솟아납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도 신비하게 평안이 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마음부터 제대로 합니다. 몇 달 후에 아들이 왔습니다. 아들도 자신들의 삶의 일부입니다. 모든 게 안정됩니다. 아들은 정상으로 되고 가정에 평화가 온 것 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사는 방법입니다. 사도바울도 선언대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주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 이처럼 신자는 하나님과 함께 상황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이 하셨으니 하나님이 칭찬 받으소서.” 높은 곳에 사는 자는 높은 곳에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렵습니다. 창자가 흔들릴 정도로 문제가 있습니까? 하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으로 기뻐하십시오. 인간의 힘으로는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고 마음에 불을 켜세요. 그러면 아무리 어두운 상황이라도 밝아집니다. 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면 즐거운 날이 오는 것입니다. 마음부터 밝게 하세요. 그럴 모든 능력이 속에 있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서.. 진정한 행복의 주인공..창자가 흔들려도 행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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